[병상포교일기] ‘마지막’이 준 깨달음
전국비구니회CPE센터를 개원하고 드디어 CPE봄학기 기본과정을 들어갔다. 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을 비롯하여 비구니회 교육부 등 많은 스님들의 도움으로 첫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둘째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스님들의 CASE STUDY 등 적극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한 스님께서 호스피스 환자를 만나고 온 사례를 가져오셨는데, 사례 속의 환자는 자신의 임종을 받아들이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교육생들에게 “아무리 임종이 가깝다는 것을 알아도 모든 호스피스 환자가 자신의 임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는 설명을 하던 중 5년 전, 정말 당황스러웠던 환자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호스피스병원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임종을 앞둔 30대 젊은 여성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성격이 좀 예민하고 특히 너무 젊은 나이의 말기암 환자여서 본인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걱정스러움을 안고 환자를 찾아 인사를 나누었다. 환자의 호기심어린 눈빛에 다소 안도감을 느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나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가 좀 방심했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 중에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갑자기 환자가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하여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펑펑 울기 시작하는 환자를 보며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그 후 정말 병원의 지도법사 소임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에 시달리며 며칠을 보내야 했다. 환자는 며칠 후 이생의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나 역시 고통의 감정에 허우적거리다 결국 환자와는 화해를 하지 못한 채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수치스러움을 직면하며 수퍼바이져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였고 수퍼비젼을 청했다. 수퍼바이져는 “스님, 우리 모두는 실수를 통해서 배웁니다. 스님은 그 환자를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죠. 무엇을 배우셨습니까”하고 질문했다. 나는 순간 수치스러움과 공포와 자괴감 등 나를 감싸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의 옷을 벗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배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자가 ‘마지막’을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를 나는 그 환자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받아들임의 속도에 맞춘 단어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