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선물과 부처님
설날 합동차례를 지낸 후 떡과 과일 등을 포장해서 병동 간호사들에게 전달하였다. 작년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병실은 텅텅 비어서 어느 병동은 환자보다 간호사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작년 이맘때 만났던 환자가 생각났다. 어느 병실에서 한 환자가 나의 모습을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이웃 종교의 신자인가 싶어 고개 인사를 하자, 환자는 “스님”하고 나를 불러세웠다. “아, 혹시 불자님이세요”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다가가자 반가움인지 모를 눈물을 떨구는 환자를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스님 제가 부처님을 정말 까마득하게 잊었어요”라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만 몇 번을 반복했다.
환자는 30년 이상을 신심있는 불자로 살았다고 한다. 사찰에서 거의 살다시피 할 정도로 기도와 봉사로 자신의 삶을 꾸리는 신심을 자신하는 보살이었다. 가족과 사찰의 스님, 신도들도 인정하는 신심이었고,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이만하면 부처님 앞에 떳떳할 수 있겠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석 달 전 말기암 판정을 받고 여기저기 병원을 떠돌며 좋은 병원과 좋은 의사를 찾고, 수술을 앞두게 되는 등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석달동안 부처님을 잊고 오로지 ‘병’에 매달렸다고 말하며 망연자실해 하였다.
“제가 어떻게 부처님을 잊을 수가 있었을까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를 바라보는 보살에게 나는 어깨를 토닥이며 “보살님이 너무 놀래고 당황하셨던 것 같아요”라고 위로하였다.
“부처님께서 스님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제가 30년을 했던 염불이 공염불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왜 절을 다니다 말다하나,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러고 있었네요.”
자꾸 자신의 신심에 대해 자책하는 보살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참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보살님, 공염불이 아니었으니 저를 보고 얼른 부처님을 기억하셨죠. 이제 새해 첫날 부처님을 기억하게 되셨으니 이제 해야 할 염불이 많으실 것 같아요.”
보살은 그제서야 얼굴에 자신감이 돌며 그동안 자신이 해온 기도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강경〉을 하루에 3독하고 〈천수경〉을 읽었고, 〈법화경〉 사경을 세 번해서 탑 속에 넣었다고.
신이 나서 설명하는 환자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새해 첫날 부처님께 올렸던 떡과 과일이 든 봉송을 받고 ‘새해선물’이라며 기뻐하던 모습이 병동을 도는 내내 선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