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향하여

93. 깨침의 길 8

2020-12-11     이일야

공부나 운동, 음악을 비롯하여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음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 귀의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발심(發心)이라 한다. 불교에서 발심은 깨치겠다는 마음(菩提心)을 내는 것이다. 깨침은 불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부의 마음을 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보리심을 향한 여정에서도 이러한 예비 과정이 필요하다.

발심을 위한 환경 조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향(指向)과 지양(止揚)의 대상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이는 곧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정하고 낡고 오래된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먼저 지향해야 할 일은 붓다(佛)와 가르침(法), 승가(僧)에 귀의하는 것이다. 삼보를 믿고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은 보리심을 향한 첫 걸음이다.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삼귀의(三歸依)가 제일 앞에 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히 신심(信心)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붓다의 아들(佛子)이 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신심 없이 행하는 모든 수행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아서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보리심을 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쌓인 좋지 않은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마음에 쌓인 탐욕(貪)과 성냄(瞋), 어리석음(痴)이라는 세 가지 독한 기운(三毒)을 버리는 일이다.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이런 독 기운을 짊어지고 가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마땅히 모두 버려야 몸과 마음이 가벼울 수 있다. 그러나 삼독을 버리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습기(習氣)로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실천이 바로 참회와 발원이다. ‘참으로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욕심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과 실천은 깨침의 길을 가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초등학교 3,4학년 시절로 기억된다. 우리 집 화장실엔 유독 귀뚜라미가 많았다. 당시에는 화장실에 전등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에는 초와 성냥을 가지고 가야만 했다. 그런데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켜면 여기저기서 귀뚜라미가 뛰어다녔고 손으로 잡으면 어느새 다리 한 쪽이 떨어져나가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손에 잡힌 귀뚜라미를 촛불에 태우면서 볼 일을 마쳤다.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그런 일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귀뚜라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나만의 참회의식을 치렀다. 그것은 촛불을 켠 다음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일이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지만 손가락을 불 위에 올려놓고 떼기를 반복하였다. 손가락 하나도 이렇게 뜨거운데, 귀뚜라미는 온몸이 태워질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아픈 손가락을 움켜쥐고 울고 또 울었다. 방으로 돌아왔지만 손가락이 너무 아려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귀뚜라미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그 이후 귀뚜라미를 태우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원각경〉에는 참회를 하면 마음의 경안(輕安)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동안 쌓인 악업이 씻겨나가기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이다. 마치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108참회를 마치고 명상에 들면 집중이 훨씬 더 잘 되는데, 이 역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함으로써 명상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발심을 위해서는 삼귀의를 지향하고 삼독을 지양해야 한다. 참회발원은 이를 실천하는 좋은 수행이다. 이는 곧 보리심을 향한 예비단계라 할 수 있는데,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 몸을 만드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걷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법이다. 진리를 향한 첫 걸음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