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아!
소년아!
네가 주인이다
네가 태양이다
맑게 자라다오
밝게 자라다오
욕망에 눈이 흐린 어른들이
너의 맑은 눈을 보는 것만으로
너의 밝은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부끄러움을 알게 하여라
우리의 희망, 태양 소년아,
너는 우리의 주인공
바양울기, 바가오이고르
바가오이고르 지역으로 들어가면, 갈 때마다 신세를 지는 유목민 가족이 있다. 전체 가족 수가 십여 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그곳에 두 번을 갔는데, 모두 겨울이었다. 평소에도 ‘여기가 도로다’라고 도로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눈이 덮여 있어서 길을 찾아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언덕 바로 위에 암각화들이 있다. 그날도 눈이 살짝 쌓여 있어서 장갑으로 눈을 훑어가며 암각화를 찾았는데, 꼬마가 따라와서 여기저기 눈 속에 있는 그림들을 찾아 주었다. 나는 추워서 오리털 점퍼를 입고 두툼한 장갑을 꼈는데, 꼬마는 옷도 대충 입고 장갑도 끼지 않았다. 이리저리 나를 안내하면서 암각화를 찾아 주는데, 추운 기색은 하나도 없고 따뜻하고 밝은 미소만 가득하였다. 미안해서 내 장갑을 아이의 손에 껴 주면서 작고 귀여운 손을 감싸 보니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워낙에 외진 곳이라서 외지인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특히 암각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말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 살고 있는 유목민들의 힘만으로 이 암각화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방 정부나 학술 단체 등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암각화 보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이곳의 암각화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욕심 같아서는 저 어린 소년이 이곳의 암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잘 지켜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두 팔을 벌린 자세를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욕망으로부터 이 암각화를 ‘네가 잘 지켜 줬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었다.
연재를 마치며…
암각화를 통해, 불교 이전의 불교를 찾아보고 싶었고, 불교 이후의 불교를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곳은 너무 많이 벗어난 부분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중도 정견의 혜안으로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졸고를 지면에 실어주신 현대불교신문사와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내내 청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