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는 눈(眼), 수행은 발(足)

이란보살의 인과이야기

2014-06-01     이란〈여여원 원장〉

탄탄한 이론 뒷받침 될 때
실천도 제대로 할 수 있어
암진단… 수행의 힘으로 극복
쓴 건 쓴 대로, 단건 단 대로
좋은 마음 내면 좋은 기운 와

역경계에서 배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로 이를 헹구고 나서 자그마한 찻잔에다 물을 따라 부처님 전에 올린다. 나름대로 고뇌가 있을 때에는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아 다기물을 올린다.
“저는 불보살과 함께 합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저는 행운이 옵니다.”
나는 그것을 “공덕잔”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잔을 올리면서 그때그때 염원하는 것을 기도했다.
아이들이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도록 권하고 늘 “관세음보살”을 부르게 했다. 아이들은 염불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신심을 더해갔다.
큰아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기도도 많이 했다. 엄마들이 한 평생 아이들 입시 때 기도를 가장 많이 한다는 얘기가 있듯, 나도 그때 기도를 정성껏 많이 했고, 스님들의 조언도 받았다.
지방에 있는 교육대학을 보내야 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으나 아들의 성정으로 보아 교육자가 어울릴 것 같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는 지방 교육대학을 택한 것인데, 처음에는 불만을 드러내던 아들도 커서는 “엄마의 권유가 정말 현명하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해주어서 기뻤다. 작은 아들이 의대를 갈 때도 몇몇 스님들과 지인 몇 분에게 조언을 구하며 고심을 했는데, 이 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은 역시 기도였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기도해주고 전심전력해서 헌신했으나 그 이후 그들의 인생에 대해선 의논해오는 것 말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지냈다. 아들들은 각자 전공에 맞게 인생을 개척하며 잘 살아왔고 좋은 아들,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제 길을 찾아가는 동안 나도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가는 한편, 이론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등록을 했다.
“교리는 눈이며 수행은 발”이라는 말이 있듯이, 탄탄한 이론이 뒷받침되어질 때 실천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해서 불교 이론을 공부했고, 서울 불교전문강원에도 들어가 경전을 공부했다.
월암 스님이 벽송사 선원장으로 있으면서 선회(禪會)를 열었을 때도 절에 머물면서 법문을 들었고, 강진 백련사에서 재가불자들에게 무문관(無門關)을 처음 개방했을 때도 입방해서 열심히 정진했다.
동국대에 다닐 때 시험을 보는데 모르는 한문이 나왔다. 옆자리에 있는 거사님에게 “이게 무슨 자죠?” 하고 물었더니 “적당히 쓰고 나오세요.” 해서 무안을 당했다. 집에 돌아와 무안한 심정을 담아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아니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가르쳐주고 가야지!” 하면서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물론 아이들도 엄마가 대학에 다닌 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적극 후원해주었다.
그렇게 가정법회를 운영하고, 한편으로 불교공부에 한창일 때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명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오십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함으로 깨어있을 수 있는 수행의 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일하는 남편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파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봉양했기 때문에 여한이 없었다.
가정 법회를 해오는 동안 이사를 세 번 하고 큰 수술을 했어도 회원들은 물론 법사 스님도 모르게 조용히 치렀다. 수술을 해서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그날만큼은 반드시 참석했고, 항암주사를 맞는 날과 겹쳐도 병원에서 나와 참석했다.
나중에 스님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어찌 보살이 웬만한 스님들보다 낫다”고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큰 수술을 받으면서 하늘은 참을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웃 종교에서는 역경계를 쓴 은혜로, 순경계를 단 은혜로 표현했는데, 쓴 것은 쓴 것대로 단 것은 단 것 대로 우리들을 성장하게 하니, 달게 받아들이는 것으로써 고통이 소멸된다. 나는 어쩌면 인생의 최대 위기일지 모르는 암 진단 앞에서 “주세요!” 하고 달게 받았다.
큰 아들의 군입대를 앞두고 암진단을 받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작은 아이가 고3이었다.
“너희들이 엄마 복이 있으면 내가 살아날 것이고 복이 없으면 죽을 것이다.”
간단히 그렇게 생각했다.
큰아들이 군입대를 하는 날까지 가족 누구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큰 아들 입대 후 수술날짜가 잡혀져서 남편에게 “잘하고 올께요. 다행이 초기라서 큰 문제를 없을 것 같다고 하는군요.” 하고 병원으로 갔다.
큰아들이 군대에 가는 날, 군대를 보내놓고 느닷없이 난소암이라고 입원을 했으니, 남편으로선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수술이 잘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주차장에 가니까 차에 암에 대한 안내 책자가 꽂혀 있었다고 한다. 둘러봐도 다른 차에는 안내책자가 없는데 남편의 차에만 있어서, 순간 “부처님이 도우시나보다” 하고 믿을 만한 대기업 식품회사고 해서 즉시 주문하여 나에게 가져왔다.
“부처님이 도와주신 것 같아. 정성껏 먹어봐요.”
남편은 지금도 그 일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종종 말한다. 공부방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수술한 사실을 알고는 모두들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정장을 하고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아니 수술하러 오시는 분이 이렇게 차려입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라고 하길래, 속으로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어야 아름답게 산 것이고 충실하게 산 것이지요.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몰라서 예쁘게 꾸미고 왔답니다.”고 답했다.
좋은 마음을 내면 좋은 기운이 온다. 이렇게 좋은 보물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수술실을 오가며 떠올린 선종의 초조 달마 스님의 가르침 한 마디가 있다.

“어떤 일에도 원망함이 없이 참고 견디며
순리대로 인연에 따르며
아무 것도 구하지 않으며(남에게 덕을 구하는 것이 없으며)
진리에 맞게 살면서 도를 실천한다.”

역경계를 선연으로 여기며 인욕과 보시바라밀로 나를 단련시켰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가 시시각각 고통과 역경이 다가올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큰 원력을 세우고 그에 맞춰 끊임없이 정진하다 보면 그것이 힘이 되어 인연이 닿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스스로 원력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바로 원력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