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은 모든 경전 중 ‘왕’

2013-10-25     김호성 교수

말도 안 되는 소리?

▲ 그림 박구원
〈금광명경〉이라는 경전은 대단히 생소한 경전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전문적으로 불교공부를 하신 스님들이나 불교학자를 제외하면 이 경전 이름을 처음 듣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전문적으로 불교공부를 하신 분이라면, 이 〈금광명경〉은 〈금고경(金鼓經)〉으로도 불리우는 경전이며, 우리나라의 원효 스님께서 좋아하셨던 경전이고, 〈인왕경〉과 함께 호국(護國)의 경전으로 떠받들어 왔다는 것, 일본에서는 스님이 되려면 〈법화경〉과 함께 이 경전을 외우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는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정도이다.

한마디로 여전히 생소한 경전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중요하고 유명하다면, 어찌하여 오늘날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적은가?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경전 중에서 왕이다”라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같다.

뿐만 아니다. 〈화엄경〉이 모든 경전 중에서 왕이라 생각하시는 분들, 아니 〈법화경〉이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아니 〈금강경〉이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무슨 소리인가 〈아함경〉이야말로 부처님의 원음(原音)이자 육성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어찌 가만 있겠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라고 하면서, 항변을 하시는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만약 그런 말을 내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나는 큰 봉변을 당할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참으로 다행히도 내겐 탈출로가 없지 않다. “경전에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 바로 〈금광명경〉이라는 경전의 제일 앞머리, 즉 서품(序品)의 게송에서 첫 구절이 그렇다.

 

〈금광명경〉은 〈금광명경〉이 왕이다

그렇다. 모든 경전은 그 경전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지 않겠는가. 만약 〈금광명경〉을 설하시면서 〈법화경〉이 제일이라 칭찬하고, 〈법화경〉을 설하시면서는 〈법화경〉이 〈화엄경〉보다 좀 못한 경전이라고 설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진실로 〈금강경〉보다 〈천수경〉이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부처님은 〈천수경〉을 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강경〉만 계속 설하고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천수경〉을 설할 때에는 〈천수경〉이야말로 “위없이 높고 매우 깊은 미묘한 법”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경전을 듣는(읽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서, 그 경전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설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경전이든 그 경전을 설할 때에는 그 경전이 제일이라, 경전 중에서 왕이라고 스스로를 높이고 찬탄해 가면서 경전을 설하시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내내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전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태도를, 경허 스님은 ‘편찬(偏讚)’, 즉 치우쳐서 찬탄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편찬한다는 사실을 경허 스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그 경전만이 제일이라고 설하는 경전만을 읽지 않고, 많은 다양한 경전들을 읽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역대 강사스님들 중에서 가장 폭넓은 독서를 하신 분이 경허 스님이 아닐까 싶다. 강원의 이력과정에는 없는 유식이나 인명(因明, 불교논리학) 책까지 읽으셨기 때문이다.

맞다. 지금 읽는 그 경전이 최고의 경전이다. 다만, 그 최고의 경전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에서 ‘무슨무슨 최우수대학’에 선정되었다고 홍보하는데, 사실은 ‘최우수대학’이 단 하나만이 아닌 것처럼 최우수 경전도 단 하나만은 아니다.

하나의 경전을 최우수로 믿고 읽는 마음과 그렇게 최우수의 경전이 또 존재한다는 열린 마음의 공존, 그것이야말로 경전 읽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마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