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여, 여래가 그대에게 허락하므로 사양하지 말고 설해보도록 하소서
〈승만경〉
우리와 〈승만경〉
다만 다행스럽게도, 일본스님들의 저서 중에 원효 스님의 〈승만경소〉를 인용한 것이 더러 있다. 그 인용구절들을 일일이 조사해서 모아놓는 작업을 하신 분이, 얼마 전 불의에 작고하신 김상현 교수님이셨다.
일본의 스님들은 우리 스님의 저서인 〈승만경소〉를 읽고, 무언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를 통해서, 우리 스님의 저서를 그 편린(片鱗)이나마 만날 수 있으니 역시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과연 〈승만경〉이 우리들에게 읽혀온 역사가 그것뿐일까? 어찌하여 우리는 이렇게 〈승만경〉을 잘 안 읽었던 것일까? 원효 스님의 경우에서 그 해답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같다.
원효 스님은 〈승만경소〉만 저술한 것이 아니라, 〈유마경소〉 역시 저술했다. 마찬가지로 전하지 않는다. 〈승만경〉 〈유마경〉은 공히 재가불자가 그 설법자로서 활약한 경전이다. 특히 〈유마경〉은, 유마거사로부터 출가한 스님들인 부처님의 10대제자들이 다 ‘한수’ 배우는 장면이 실려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그 많은 사찰의 법회나 불교교양대학 등에서 〈승만경〉이나 〈유마경〉은 별로 강의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유마경〉은 백봉 거사님이나 불연 선생님과 같은 재가자들이 강의한 적이 있고, 〈승만경〉은 근래 이인자 선생님의 발원으로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읽기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재가자가 설법한 경전, 이라는 형식을 벽(壁)으로 인식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벽 앞에 막혀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원효 스님 같은 큰스님이, “재가와 출가는 둘이 아니라”는 대승의 불이(不二)사상에 철저했던 것이리라.
일본의 〈승만경〉
우리에게 〈승만경〉이나 〈유마경〉이 그다지 널리 읽히지 못한 것은, 그만큼 우리 불교가 출가주의 불교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달랐다.
〈승만경〉 〈유마경〉 그리고 〈법화경〉은 그 역사의 첫걸음에서부터 밑바탕에 놓이게 된다. 한 사람의 거사에 의해서, 그 세 가지 경전이 강술(講述)되고 강찬(講讚)되었기 때문이다. 쇼토쿠(聖德)태자가 바로 그분이다.
고모가 스이코(推古)천황이었는데, 태자에게 정치를 맡겼다. 섭정(攝政)이 된 것이다. 이 쇼토쿠태자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초를 쌓은 분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17조 헌법’을 제정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황제가 불교를 강의한 일이 있지만, 쇼토쿠 태자 역시 정무를 보는 한편으로 대신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다. 〈승만경〉 〈유마경〉 그리고 〈법화경〉이다. 이들 세 경전에 대해서 각기 주석서를 지었으며, 강의를 했다 한다.
물론 현재의 학문적인 연구로는 다른 이야기 역시 있다. 예컨대 〈승만경〉에 대한 주석서는 돈황문서라는 이야기 등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든, 이들 경전을 강의한 쇼토쿠태자에 대한 신앙(태자신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사찰의 법당에서 쇼토쿠태자를 모시고 예배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일본불교의 한 특징으로 재가불교를 들고 있는데, 그 원류로 신란(親鸞)스님이 말해지기도 하지만 그 신란 스님 역시 쇼토쿠태자를 깊이 신앙했다. 그러니까 그 원류에 쇼토쿠태자가 있는 것이고, 바로 〈승만경〉 〈유마경〉 그리고 〈법화경〉과 같은 경전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