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람’의 가풍 천년 세월 머금고 세상을 향기롭게!

세상에 빛 보내는 백양사 - 부도밭 기행 69

2012-02-20     임연태 논설위원
▲ 백양사 부도밭

고려 말 각진국사에서 현대 서옹스님까지
법등 꺼뜨리지 않은 투철한 수행전신 계승

소요태능 등 조선 선승들의 부도 즐비
‘고불총림’ 수행가풍 고스란히 전해


백양사 계곡으로 접어들면 문득 눈앞을 가리는 백학봉의 결 고운 기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흰 바위 병풍이 시린 하늘을 이고 선 겨울 아침, 꽁꽁 얼어붙은 계곡과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이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하늘도 길도 산봉우리도 다 얼어 있는 정월 초순의 백양사 가는 길, 성보박물관을 지나 100여 미터를 걷다가 오른쪽에 서 있는 키 낮은 안내판을 만납니다. 부도밭을 알리는 안내판인데, 조계종 종정과 고불총림 방장을 지낸 서옹(西翁 1912~2003) 스님의 ‘열반송’이 적혀 있습니다.

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고
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백학이 한 번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솔솔 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 구나.

안내판 위쪽을 바라보니 아담한 배알문이 서 있습니다. 눈이 덮여 있어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지 않습니다. 백양사 부도밭은 온통 눈으로 덮여 겨울 아침나절의 고요를 머금고 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올라갑니다. 경내의 대웅전과 극락보전 등을 먼저 다녀오기로 합니다.  

쌍계루(雙溪樓). 근래 말끔하게 중건된 이 누각의 뒤는 백학봉이고 앞은 연못입니다. 못은 얼어 있고 산은 눈으로 덮였으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말이 없습니다. 문득, 혼자여서 고요하고 편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홀로 가는 길이지만, 수많은 반연(絆緣)이 있어 혼자일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대끼는 삶의 한 순간 이렇게 고요한 공간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삽살개 눈썹에 검은 누더기의 한 어리석은 중이
지팡이에 의지하여 시내를 따라 걸음이 스스로 능숙하도다.
운연(雲煙)을 관망하니 깨고 또 취하고
신변을 놀려 희롱하니 어긋남이 도리어 더하도다.
금풍(金風)이 가만히 단풍을 처음 붉음으로 바꾸고
가을달이 바야흐로 밝으니 물이 더욱 맑도다.
범(凡 )과 성(聖 )을 모두 잊어버리고 한가히 젓대를 불며
거꾸로 수미산을 타고 자유자재히 오르도다.

쌍계루 앞에 세워진 기다란 비석에 서옹 스님의 시 ‘쌍계루차운’이 한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 번역은 <서옹선사법어집> 제1권에서 수록되어 있습니다. 경내에 이르는 길에서 만나는 서옹 스님의 임종게와 시 한 편이 백양사의 역사와 수행가풍을 짐작하게 하고 남습니다. 임제종의 선풍을 누구보다 역력하게 선양시킨 서옹 스님의 ‘참사람 결사’ 운동은 해를 거듭하며 그 자양분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만암 스님과 서옹 스님의 유지(有志)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사람다운 사람, 수행자다운 수행자를 배출하고자 했던 그 간절한 심정입니다.

▲ 백양사 부도밭

대웅전과 극락보전에서 조용히 삼배를 하고 난 뒤 진영각으로 들어섭니다. 사방 벽에 역대 조사들의 진영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정면에는 개산주인 여환 조사와 중창주 중연 선사, 각진 국사의 진영이 걸려 있고, 좌우로 여러 선지식들의 진영이 서로의 가풍을 머금고 자리했습니다. 이렇게 즐비한 액자 속의 인물들이야 말로 한국불교와 백양사의 법맥(法脈)을 끊임없이 이어 온 인맥(人脈)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진영을 살피는데, 발이 빠져나갈 듯이 시려 견딜 수 없습니다. 마룻바닥의 냉기는 발바닥에 그대로 전달되는데 조사들의 법열(法悅)은 가슴을 덥혀주지 못합니다. 엉거주춤 살아온 미욱한 중생의 가슴에는 아직도 번뇌뿐인 탓이겠습니다.

눈 쌓인 마당을 나와 다시 부도밭으로 향합니다. 백설이 곱게도 덮인 부도밭. 아직 누구도 발자국을 내지 않은 그 말끔한 눈밭에는 부도와 비들이 머리에 눈을 덮어쓴 채 서 있습니다. 배알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대종정만암대종사사리탑비명’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이 탑비는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고 만암 스님의 부도는 부도밭 뒤쪽에 서 있습니다.

만암(曼庵, 1876~1956) 스님의 법명은 종헌(宗憲)이며 만암은 법호입니다. 조계종 종정과 백양사의 제 48대와 50대 주지를 역임했으며 오늘날 백양사의 사격(寺格)을 일군 장본인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11세에 백양사 취운도진(翠雲道珍)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환응 스님과 영호 스님 등에게 교학을 배우고 운문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하며 장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만암 스님의 시대는 일제의 검은 구름이 한반도를 덮는 때였습니다. 스님은 백양사에 스님들의 교육기관이 광성의숙(廣成義熟)과 일반인을 위한 보통교육 기관인 ‘심상학교’를 세워 교육 불사에 나섰습니다. 나라는 잃었어도 출가자로서의 본질과 민족혼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스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이었기에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종무원 설립, 불교전수학교(동국대학교 전신) 초대교장, 정광중학교 설립, 전남여객, 전남 베어링공장, 동광유지회사 설립, 청량원 설립, 호남고불총림결성 등 동분서주한 삶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백양사 진영각에 모셔진 여환, 중연, 각진 스님의 진영

20여 기의 비와 40여 기의 부도가 즐비한 백양사 부도밭에서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큰스님들의 부도를 배알 할 수 있습니다. 서산대사 청허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 소요태능 선사를 비롯한 선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산과 사명 대사가 백양사에 주석했던 것은 아닌 듯하지만, 소요태능 선사는 서산대사의 선맥을 이은 대표적인 스님입니다. 따라서 백양사는 서산의 법맥이 흐르는 선종사찰의 면모를 간직한 것입니다. 서산대사와 소요태능 선사의 만남은 <동사열전>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태능은 또 휴정이 묘향산에서 선풍을 크게 진작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조사서래의’를 묻는다. 휴정은 한 번 보매 태능을 법기라 여기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태능은 휴정의 회상에서 3년여 선을 참구한 끝에 스승의 명에 따라 당을 열고 법화를 편다. 이때의 나이가 20이었다. 태능은 어느 날 휴정에게 받은 게송을 가지고 제방의 종장들을 찾아다니며 물었으나 아무도 그 뜻을 모르자 다시 휴정을 찾아가 물어 비로소 무생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휴정이 태능에게 내려준 게송은 다음과 같다.

그림자 없는 나무를 패다가
물거품을 태우나니
어허, 우습도다. 소를 탄 사람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눈 덮인 백양사 부도밭에서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사람’이라는 구절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찾아도 찾아도 찾을 것이 많은 게 중생계를 살아가는 중생의 하루하루입니다. 그렇게 집착하고 번민하는 시간 속에서 미혹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면서 자유를 말하고 행복을 갈망합니다. 그 자가당착의 터널 안에서 밝은 빛이 쏟아지는 출구로 뛰쳐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자유와 절대행복을 품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소요태능 선사의 임종게는 열반도 고향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으니 그 부정을 넘어선 긍정의 자리가 어떤 곳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해탈이 해탈 아니어니
열반을 어찌 고향이라 하랴.
취모검 서슬 푸르른데
입으로 칼날을 부딪침이여.

근래에 새로 조성한 듯한 비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각진 국사(覺眞國師) 복구(復丘, 1270~1355) 스님의 비입니다.  각진 국사는 고려 말의 스님으로 당시의 수선사, 오늘날의 송광사로 출가하여 제13세 조사가 된 분입니다. 이는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13번째 국사라는 의미입니다.

각진 국사는 송광사와 백양사 불갑사 등지를 다니며 수행했으며 현재 백양사에는 그의 진영이 남아 있습니다. 각진국사진영(전남도유형문화재 제290호)은 1825년(순조 25) 선운사 내원암에서 조성하여 백양사로 옮겨졌는데 그림을 그린 화승은 장유입니다. 공민왕의 왕사였던 각진 국사의 생애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양사에는 그가 꽂아 둔 지팡이가 움을 틔워 자랐다는 아팝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팝나무인 이 나무는 백양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고려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들의 자취가 서려 있는 백양사 부도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결같이 지켜온 진리의 등불은 오늘도 그 밝고 따뜻한 빛을 세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장화 신은 발이 다시 꽁꽁 얼었습니다. 나그네는 서둘러 부도밭을 나와 세상으로 향합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그 꼬락서니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