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4)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신나서 소리를 질러대던 데비는 난다의 품에 아슬아슬하게 안겨 조는 중이었다. 무니와 난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칸타카가 제일 걱정이었다. 어서 내릴 곳을 찾아야 했다.
“저게 뭐지?”
무니의 말에 난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거대한 산이라고 불러야할 거 같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긴 차크라발라 산이야.”
“차크라발라?”
“응. 철의 산이라고도 부른다더라.”
“아무튼 우리 그럼 저기에서 잠시 쉬었다가 출발할까.”
난다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딱히 적당한 곳도 없을 거 같았다. 무니가 고삐 쥔 손에 힘을 주며 칸타카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말과 함께 그들의 몸이 조금씩 아래로 기울기 시작했다. 무니의 눈에 산의 정경이 좀 더 뚜렷이 보였다. 회갈색의 봉우리들은 깎아놓은 듯 가파르고, 그 위에 채 녹지 않은 눈이 드문드문 쌓여있었다. 무니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득 아까부터 데비가 아무 기척이 없다는 게 떠올랐지만 칸타카가 속도를 더 높이는 바람에 뒤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보려는 순간, 무니는 자신의 허리춤을 꼭 붙드는 데비의 손을 느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난다는 칸타카가 고도를 낮추며 차크라발라산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망설임이 불길한 예감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사르나트를 꺼내 보고 싶었지만 역시 하강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난다가 그렇게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고민하는 사이 이미 칸타카는 차크라발라에 착지하기 위해 다리를 내딛고 있었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착륙이었다. 발을 땅에 디딜 시점을 찾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다. 깎아지른 절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이 앞으로 쏠려서 낙마할 뻔한 위기를 몇 번 겪고 나서야 일행들은 드디어 착지에 성공했다.
“속이 울렁거려.”
난다가 휘청하며 말했다. 무니 역시 그랬다. 칸타카도 몹시 지쳐보였다. 멀쩡해 보이는 건 데비 뿐이었다. 그녀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씩씩한 발걸음으로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목마르다고 칭얼거릴 때는 언제고. 정말 쟨 뭐냐.”
무니는 그런 데비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역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착륙한 곳은 거대한 산봉우리 중 하나로, 그 중턱 쯤 되는 위치인 듯했다. 주위는 우중충한 색깔의 암석과 드문드문 보이는 잡풀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황량했다.
“여기 이름이 뭐라고?”
“차크라발라. 지도를 보면 옆에 자그만 글씨로 철의 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표기돼 있 어.”
“철의 산이라……. 이름 한번 제대로 붙였네. 그럼 여기 진짜 다 철로 돼 있는 건가?”
칸타카를 돌보던 무니는 바닥을 발로 툭툭 쳐보며 말했다. 확실히 일반적인 땅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다. 깊은 울림이 발밑에서 느껴졌다
“여기 사람이 살기는 살아?”
그때 어디선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다는 불길한 예감에 드문드문 풀이 보이는 쪽을 쳐다봤다. 그런 모습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무니도 숨을 죽였다. 이번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니는 입 모양으로 “왜?”라고 물었다. 난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는데, 잘 못 들었나봐. 책에 보면 여기 사람이 산 흔적이 발 견 되었다는 내용은 있었어. 하지만 실제 거주 지역을 발견하지는 못했대. 그러니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지.”
“어째. 으스스한데? 너도 봤지? 높은 데서 봐도 한 눈에 안 들어올 만큼 큰 산이라고. 그 런데 이런 곳에 우리 밖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러다 무니는 갑자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 이거 좀 멋지다! 여기 우리 사람이 우리 둘, 아니 데비까지 합쳐서 세 명 뿐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아! 그런데 데비는 어디 갔지?”
그제야 생각난 듯 난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니도 깜짝 놀라 데비를 찾기 시작했다.
“또 어디로 간 거야! 여기서 사라지면 어떻게 하냐고.”
“어쩌면 마실 걸 찾으러 갔을 지도 몰라!”
난다가 말했다. 그러나 이곳엔 암석과 자갈 천지였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감을 잡기 가 힘들었다. 게다가 조금만 멀리 나가도 절벽이었다. 난다는 그제야 생각난 듯 사르나트를 꺼냈다. 나무 바퀴가 무겁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이제까지는 전혀 다른,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움직임이었다. 난다는 그걸 해석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그 움직임을 봤지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해석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뭐지? 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돌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무니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이리 와 봐. 저 녀석 저긴 도대체 어떻게 내려갔지?”
무니는 어느 새 거의 산길의 끝까지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다도 뛰어갔다. 정말 절벽 밑에 데비가 보였다. 데비는 폭이 아주 좁은 물줄기가 흘러가는 강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봤지만 들리지 않는 거 같았다. 가파른 비탈엔 크고 작은 자갈들뿐이라 걸어 내려가기란 무리였다. 미끄러져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칸타카에 올라탔다. 칸타카는 그들이 타자마자 알겠다는 듯 자갈 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데비는 칸타카가 바로 자기 옆에 착지하고 있는 데도 별 반응 없이 강물만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무니는 씩씩 거리며 그런 데비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데비는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뒤돌아 무니를 쳐다봤다.
“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잔뜩 화가 나 있던 무니가 그 표정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물 아니야. 나 목 마른데.”
강물을 바라보던 난다가 무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데비 말이 맞아. 이건 수은이야.”
난다는 표면의 광택 때문에 흐리게나마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잠시 후, 자신의 얼굴 옆으로 무니의 얼굴이 보였다.
“너 이거 뭔가를 만들 때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난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잘 된 일인데, 물은 어디서 구하냐. 저 녀석도 저 녀석이지만, 우리 다 물을 좀 마 셔야 하잖아?”
무니가 말했다. 난다는 다시 허리춤의 사르나트를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다시 꺼내 들여다보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당장 차크라발라산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뭔가 무거운 힘이 발목을 붙드는 거 같기도 했다. 단지 물 때문은 아니었다. 난다는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그래. 일단 물부터 찾아보자.”
여전히 “목말라, 목말라.”라며 칭얼대는 데비를 보고 있던 무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니 자신도 너무 목이 말랐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서 물을 찾지?”
무니는 바닥에 있는 조그만 자갈을 발로 툭 쳤다. 확실히 일반적인 돌하고는 차이가 느껴지는 중량감이었다. 그는 발밑에 있는 자갈 하나는 주웠다.
“철의 산이라더니 이거 다 철인가. 알 수가 있어야지. 자석만 있으면 금방 알 수 있을 텐 데 말이야.”
무니와 난다는 할아버지의 오두막에서 자석을 처음 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그 자석이 예언자가 마을에 남기고 간 물건 중의 하나라고 했었다.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이었던 터라 희귀한 물건이긴 했지만, 무니와 난다에겐 단지 장난감이었다. 쇠로 만든 단추라던가 못을 자석에 붙였다 떼며 몰래 놀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난다는 그냥 그런 자석이 할아버지에겐 과연 무슨 소용인가, 궁금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쓸모는 꼭 정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란다. 그걸 무엇에, 어떻게 쓰느냐에 달라지기도 하지.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렇다. 이제 난다에게도 자석은 장난감의 용도로 쓰일 물건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야.’ 난다는 마음을 다잡는 듯 어깨에 한번 힘을 주고는 다시 사르나트를 꺼냈다. 그때 “꺅!”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니와 난다는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데비였다. 그녀는 커다란 동물과 마주한 채 꼼짝도 못하고 멈춰서 있었다. 무니는 칸타카의 고삐를 더욱 꼭 쥐었다. 칸타카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그 동물은 생김새가 소나 염소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 둘하고 확실히 다른 종류로 보였다. 머리 양 쪽으로 세차게 뻗어 나온 검은 뿔 아래로 보여야할 눈빛은 보글보글한 검은 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뭔가를 씹는 듯 계속해서 우물거리는 입은 불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불룩 튀어나온 어깨에서부터 등까지 흐르는 그다지 길지 않은 검은 털은 매끄러워 보였지만, 배 아래로 늘어진 털은 흰색으로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고 풍성했다. 그 털 때문에 더 커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은 계속 입을 우물거리며 데비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