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3)

2011-10-18     고지연

그럼 칸타카가 날 수 있게 됐는지 알려면 절벽 밑으로 떠밀기라도 해봐야 한다는 거야?” 무니가 칸타카의 등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난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칸타카가 알아서 혼자 날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살펴본 결과 하는 짓이 망아지 때랑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럼 그렇지. 뭐 쉬운 게 하나도 없다니까.”

무니는 툴툴거렸다.

그런데 그대로 절벽 밑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난다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

그때 , 저기! 저기 좀 봐!”라는 외침이 들렸다. 두 사람은 데비가 가리키고 있는 쪽을 쳐다봤다. 꽤 높은 절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절벽과 푸른 바다가 이루는 경계 위로 붉은 태양이 점점 솟아오르고 있었다.

절벽이 저기 있다고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는 건가봐.”

무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데비를 바라봤다. 난다도 마찬가지였다. 데비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아이였다. 무니와 난다의 행동이나 말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오곤 하는 것이었다.

데비는 어느 새 칸타카의 등에 올라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제 칸타카도 데비를 자기 등에 태우는 걸 익숙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무니는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방향이 좀 이상해보였다. 데비가 칸타카를 끌고 가는 곳은 분명 절벽 쪽이었다. 그제야 무니는 데비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 너 거기서 안 내려와!”

무니가 쫓아오기 시작하자 데비는 깔깔 웃으며 오히려 속도를 냈다. 조금만 더 가면 정말 절벽이었다. 불안해진 난다도 남카에 올라타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세 사람과 두 마리의 말이 절벽 끌에 아슬아슬 멈춰 섰다. 정면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자 무니와 난다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데비만이 아랑곳없이 신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뛰자, 칸타카! 뛰어 내리자!”

금방이라도 정말 뛰어내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눈을 뜬 무니는 데비의 발목을 재빨리 붙잡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좋은 말 할 때 얼른 못 내려와!”

데비는 잡힌 발목을 빼내려 요동을 쳤다.

난다 네가 얘 좀 말려 봐.”

그래. 데비. 일단 내려와. 뛰어내리는 건 좀 있다가 하자.”

난다의 그 말 한 마디에 데비는 칸타카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너무 순순한 그 반응에 어이없는 표정이던 무니가 난다에게 말했다.

. 그런데 정말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아니. 일단 저기 평지에서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 봐야지.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써야겠지만.”

난다는 칸타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친구의 말에 무니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까마득한 저 아래 바다가 무서울 정도로 깊어 보였다.

 

어느 새 해가 하늘 저 높이까지 올라가있는 한낮이 되었다.

괜찮겠어?”

남카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난다가 무니의 뒷모습을 향해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 준비 완료야.”

무니의 말투는 비장했다. 눈앞엔 바다와 아득한 수평선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내내 칸타카를 날게 해보려 했으나 계속 실패였다. 이제는 정말 절벽 위에서 운명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난다는 또 다시 불안해졌다. 아무리 봐도 칸타카는 자신이 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니 역시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오로지 데비만이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거릴 뿐이었다.

무니가 칸타카에게 뭐라고 속삭이더니, 뒤돌아서 난다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런 다음 난다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절벽 끝을 향해 뛰어갔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아래로 사라진 그들은 다시 비상하지 않았고, 바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난다는 깜짝 놀라 남카의 등에서 떨어지듯 내려왔다. 절벽 저 아래에도 무니와 칸타카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찔해졌다. 왜 자신은 아래쪽을 내려다본 것일까. 난다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저기 봐. 칸타카야! 칸타카가 날고 있어!”

데비의 외침이 들려왔다. 난다는 데비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갔다. 바다와 수평선 사이에 걸려 있는 건, 분명 무니와 칸타카였다. 희미하게 무니의 으하하!” 하는 웃음소리도 들리는 거 같았다. 난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행의 흥분이 사그라지자 그들은 부지런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둘은 어쩌지?”

자신의 책과 도구 가방을 칸타카의 등에 싣는데 여념이 없는 난다를 보며 무니가 말했다. 훌쩍 커버린 칸타카의 덩치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낑낑대던 난다는 대답 대신 남카와 남카에게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는 데비를 쳐다봤다.

데비를 여기 혼자 둘 순 없지. 하지만 남카는 어차피 데리고 갈 수 없는 형편이잖아. 아 쉽지만 말이야.”

역시 두고 갈 수 밖에 없는 건가.”

난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카의 검고 순한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난다는 처음에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을 사막에 보내기 위해 말 위에 태울 때나 남카네 아빠가 말을 가지고 가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어쩐지 남카가 원래 그들 소유가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말을 다루는 게 능숙치 않아 보였고, 두려워하고 있는 거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을 기다리며 이 책 저 책에서 그들이 남카라고 이름 붙인 말에 대해서 찾아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용이 변하여 말이 되었다는 의마가 가장 들어맞는 듯 했지만, ‘의마역시 칸타카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흰색이며 드물게 검은 색이 있는 정도라고 했다. 남카는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말이었다.

그럼 이제 안녕이로구나.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남카의 얼굴을 쓰다듬는 무니의 말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비데하까지 해 안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칸타카가 일행과 짐까지 싣고 얼마나 빨리 날 수 있을 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칸타카 위에 가장 먼저 올라탄 건 데비였다.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남카가 칸타카 옆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비 옆에 섰다. 그렇게 말과 소녀가 작별 인사를 눈빛으로 나누는 사이, 무니와 난다도 말에 올랐다. 세 사람 모두 꽤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책에서 고도가 높을수록 기온이 떨어진다고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칸타카, 괜찮겠어? 무겁지 않아?”

자신 다음으로 난다까지 칸타카에 올라타자 무니가 걱정스럽다는 듯 갈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칸타카는 걱정 말라는 듯 꼬리를 흔들어 보였다. 무니는 마지막으로 옆에 얌전히 서 있던 남카도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이윽고 잠부주를 떠날 시간이었다. 무니가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달아놓은 고삐에 힘을 주며 말했다.

, 가자. 칸타카.”

칸타카가 힘차게 발돋움하기 시작하자, 그들 일행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심장이 부웅하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현기증을 느낀 난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남카가 콩이 됐어.”

무니와 난다 사이에 끼어 가고 있던 데비가 목을 쭉 빼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더 작은 콩이 됐네!”

데비. 위험하니까 고개 내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난다가 데비의 몸을 자신의 팔로 고정시키며 주의를 줬다.

. 이러고 몇 시간을 날아갈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꿈쩍도 안할 수가 있냐. 너야말로 아래 좀 내려다 봐. 정말 멋지다구!”

고삐를 쥐고 있는 무니가 외치듯이 말했다. 그제야 난다는 실눈을 뜨고 슬쩍 아래를 슬쩍 내려다봤다. 자신들이 서있던 절벽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데비의 눈에 콩 크기로 보였다던 남카는 티끌 만하게 보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이제 그들 발밑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바다뿐이었다. 아찔한 광경이었다. 난다는 또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이런 이동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편 남카는 자신을 쳐다보던 일행이 저 멀리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인간이 어깨를 으쓱하듯 몸을 살짝 뒤틀었다. 갈기가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털 색깔이 갈색에서 흰색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흰 말로 완전히 변한 남카는 앞발을 들어 허공에 대고 힘차게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