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Ⅳ. 철의 산 차크라발라 (1)
공중에 우뚝 솟아있는 카일라사산 정상, 테드모는 루드라가 명상하곤 하는 자리 앞에 서있었다. 그곳엔 여전히 아그니 나무가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다만 신이 없을 뿐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신의 거처가 있는 공중정원 쪽을 다시 한 번 올려다봤다. 루드라가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 채 사라지는 일은 간혹 있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떠나 있거나 명상을 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테드모는 루드라가 부르기만 하면 그곳이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이 어디에 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 때문에 테드모는 보고할 사항이 생길 때마다 난감해 하며 이곳으로 올라와보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신이 언제 돌아와 있을 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테드모는 돌아섰다.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구름 위로 뛰어내리듯 몸을 날렸다.
한편 카일라사산 산의 북쪽, 우윳빛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혼돈의 대양에는 아난타라는 뱀이 커다란 똬리를 튼 채 마치 섬처럼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평소보다 긴 수면기를 보내는 중인 크리슈나가 누워있었다. 아난타의 생김새는 거대한 코브라와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머리를 천 개나 달고 있어서 매우 기이하게 보였다. 아난타는 자신의 그 수많은 머리들을 지붕처럼 만들어 수면기를 보내는 크리슈나를 보호했다. 흔들림 없는 천 쌍의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눈이 드물게 흔들릴 때는 거대한 독수리 모양의 새 가루다가 출현할 때였다. 역시 크리슈나의 새인 그는 아난타를 제외한 모든 뱀의 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천 쌍의 눈이 동시에 흔들린 이유는 가루다 때문이 아니었다. 주인의 머리맡에서 멈춰있던 금색의 수레바퀴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미소를 짓는 듯 살포시 올라가 있던 크리슈나의 입꼬리가 스르르 내려갔다.
같은 시각, 난다의 허리춤에 들어가 있는 사르나트의 바퀴에도 그와 같은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무니 일행이 모래 바람을 뚫고 잠부의 동쪽 끝 바다에 도착한 참이었다. 석양빛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시간이었다.
“벌써 해가 지잖아. 데비, 이 자식! 너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낭비되는 줄 알아! 왜 자꾸 사람을 찾아다니게 해?”
그러나 데비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말들과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기가 찬 무니가 난다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아무튼 저 자식을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 저번에는 열흘이나 사라졌었잖아! 쟤 때 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 완전 애물단지라니까.”
“왜 그래! 이름까지 자기가 예쁘게 지어줘 놓곤. 불쌍한 아이잖아. 게다가 기억까지 잃었 는데. 아직 완전히 회복했다고도 볼 수 없다구.”
친구의 말에 다시 데비를 쳐다보던 무니가 말했다.
“그리고 보면 신기해. 다른 건 몰라도, 꼭 자기가 사라졌던 자리에 다시 나타나잖아.”
난다 역시 “응.”하면서 데비 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말이야. 데비 처음에 봤을 때하고 비교해서 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달라졌어. 처음에 봤을 때는 한 여섯 살 쯤으로 보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한 두 어 살은 훌쩍 큰 거 같다구.”
“원래 애들은 빨리 자라잖아.”
무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난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너도 애잖아. 왜 넌 그대로냐?”
무니보다 목 하나는 더 큰 난다가 괜히 그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며 놀리듯 말했다. 무니는 “이 자식이!” 하며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숨이 막힌다는 듯 바다를 쳐다봤다. 아주 멀리, 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수평선 아래로 천천히 잠겨가던 태양이 이제 막 완전히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깔깔거리는 데비의 웃음소리도 더 이상 그들의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밤이 찾아왔다. 난다가 조그만 주머니에서 종이버터를 꺼내 불을 붙이자, 무니가 가방에서 조그만 빵 세 개와 물병을 꺼냈다. 낮에 실컷 풀을 뜯은 칸타카와 남카라고 이름 붙인 또 한 마리의 말, 그리고 팔짝팔짝 뛰며 돌아다니던 데비도 불 옆에 와 앉았다. 무니가 난다에게 물었다.
“종이버터는 아직 많이 남아있어?”
“응, 아직 걱정 없어. 다만 이 근처에선 재료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아껴야겠지. 오늘은 이것만 쓰고 그냥 자자.”
그들은 종이버터가 타닥타닥 타면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주위엔 파도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무니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소리였다. 언젠가 방향을 잘 못 잡아 남쪽 끝 바다에 다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지금 같은 밤이었다. 주위가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오늘 저녁과 같은 광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파도소리와 바다 냄새만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음의 성에 갇혀 있을 때는 연못을 바다라고 착각했었지.’ 언제까지고 생생할 거 같은 그 밤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 일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일 같기도 했다. 그때 그의 몸 쪽으로 무거운 뭔가가 툭하고 쓰려져 왔다. 어느 새 잠이 든 데비였다. 그 모습을 본 난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널 좋아하는 게 확실해. 그래도 늘 네 옆에 가서 자잖아. 살아나서 처음 눈을 마주친 사람이 너이기 때문일까.”
“그냥 내가 만만한 거야. 아무튼 귀찮은 녀석이라니까.”
“그래도 데비 때문에 검 조각은 물론 아루나검까지 찾았잖아.”
“뭐, 이렇게 눈에 띄는 건데. 얘가 아니었더라도 분명히 찾았을 거야.”
무니는 옆에 놓아둔 짐 꾸러미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일곱 마리의 말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칼날이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무니는 그 말들의 머리 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어 갔다. 그 하나하나마다에는 각각 다른 모양의 홈이 패여 있었고 마지막으로 태양을 새긴 검의 자루 부분에는 다른 것들보다 좀 더 큰 홈이 하나 더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 홈에서부터 칼자루 끝까지는 마치 빛을 이끌어나가는 듯한 느낌의 여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검은 수리아의 검을 완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물론 나머지 검 조각들을 모두 모은 후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세상에 단 한 명 뿐인 진정한 연금술사도 찾는 일도 남아있었다. 그 주정뱅이에 도둑질까지 한 나쁜 사기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칼을 도로 집어넣고 있는 무니에는 언제나처럼 뭔가를 읽고 있던 난다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이제 남쪽 끝인데, 비데하는 어디 있는 거야?”
“저번에 말했잖아. 바다 건너라고.”
“뭐? 바다 건너? 네가 언제 이야기했어?”
“우리가 쿠샹의 도서관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난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무니를 쳐다봤다.
“넌 도대체 내 이야길 듣는 거야, 마는 거야?”
그랬던가. 무니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긴 그때 자신은 얼음의 성 후유증을 심하게 앓던 중이였으니까.
“그럼? 그럼 비데하는 어떻게 가? 배라도 타고 가나…….”
무니는 뭔가 떠오르는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 도둑놈이 그래서 그런 말을 했었구나.”
무니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슨 말이냐는 듯 난다가 그를 쳐다봤다.
“아니. 그 가짜 연금술사가 그랬거든.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지 아냐고 말이야. 그리고는.”
“그리고는?”
“아니 뜬금없이 너하고 내 나이랑 생일을 물어보잖아.”
그 말에 난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알려줬어?”
“아니! 그런 이상한 놈한테 그런 걸 왜 알려줘? 하여간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아무튼 잡히 기만 해봐, 내 가만 두나.”
무니는 생각만 해도 또 화가 나는 지 씩씩댔다. 그러나 난다는 연금술사가 그들의 생일을 물어봤다는 사실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그때 네가 가방을 바꿔놓았기에 망정이지. 유리 영감의 공책도 분명 그 녀석이 가지고 있을 거야.”
무니가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하지만 난다는 다시금 스스로를 연금술사라고 부르던 그 자의 정체가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사기꾼이긴 했지만, 리시의 예언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걸 훔쳐가려 했다는 것은 그가 예사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매우 낮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는 정말 연금술사일 지도 몰랐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불 꺼지겠다. 왜 또 한숨이야? 혹시 바다를 건너는 일 때문에 그래? 아까 우리 그 이야 기하다 말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