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Ⅲ. 사막의 세 머리 용 (12)

2011-10-18     고지연

남카네 집을 나온 무니와 난다는 칸타카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던 참이었고, 남카도 걱정되었지만 더 이상 이 마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카는 새벽에 있었던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촌장은 그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난다가 자신들을 태우고 갔던 말을 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 말이야. 우리가 용을 해치웠다는 걸 믿긴 믿는 거겠지. 우릴 다시 안 잡아가둔걸 보면 말이야.”

무니가 물었다.

우리를 보낸 곳에 불이 나는 걸 봤을 테니까. 거기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믿든 안 믿든 다시 붙잡아둘 생각은 안 들걸.”

그런가. 그런데 말이야. 너 남카에게 준 거, 약효 확실한 거야?”

또 의심한다. 내가 해독에 약해서 그렇지 그런 건 전문이라고!”

난다가 발끈하며 말했다. 무니는 그런 난다의 모습을 어쩐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히죽 웃었다.

뭐야. 너 왜 웃어?”

아니야. 아니야. 그나저나 남카가 그걸 정말 마을 사람들에게 쓰게 될 지 아닐 지 궁금 하다. 모두가 두려움의 시간을 잊고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녀석만은 그렇지 못하 다면 그거 좀 너무하잖아.”

무니는 아마 그게 더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난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무니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그건 난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망각제인 것을 알고 먹는 사람에게 망각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약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남카에게 자신이 제조한 약을 건네면서도 분명히 말해두었다. 선택은 남카 몫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런 것을 주지 말았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잘한 일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난다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 하더니 무니에게 말했다.

그 꼬마는? 아까까지 옆에서 걷고 있었잖아?”

뒤에. 자고 있어.”

무니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소녀는 잠 든 채 말 위에 엎어져 있었다. 달빛이 비친 투명한 얼굴은 정말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언제 말에 탔지?”

무니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난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렇게 자면 떨어지지 않을까?”

완전 붙었어. 나중에 안 떨어질까 걱정될 정도야. 그런데 쟤 계속 데리고 다닐 거야?”

당분간은 어쩔 수 없잖아. 저렇게 지쳐있는 걸.”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오늘도 먹은 것 없이 힘만 썼잖아. 그런데 우리 이제 어디로 가냐?”

가서 지도책 좀 보고.”

무니는 또 책이냐?’라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래도 연금술사가 맘에 걸려. 집에도 없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사람이 연금술사라고? 주정뱅이에 거짓말쟁이 같다며?”

그렇긴 하지만.”

난다는 어쩐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무니가 갑자기 칸타카!”라고 외치며 뛰어가기 시작하자, 찜찜함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저 멀리서 칸타카 역시 그들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난다는 환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칸타카와 만나기로 한 곳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누구지?’ 마치 긴 그림자 같이 서 있는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난다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야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큰 키와 진동하는 술 냄새, 바로 연금술사였다. 그는 자기 집에서 가져간 책들을 돌려받기 위해 그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난다는 그 자리에서 책을 꺼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의 책보다 아이들의 다른 물건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등불을 들고 내려다보고 있는 연금술사의 표정에는 분명 어떤 욕심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던 난다는 연금술사의 눈이 그들이 사막에서 주웠던 검에 가서 멈추는 듯하자 주의를 돌릴 목적으로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연금술사. 우리 집에도 들어와 봤잖아? 그러는 너흰 이름이 뭐냐?”

전 난다고, 쟨 무니예요.”

저기 말 위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여자애는?”

그냥 지나가다 주운 꼬마예요. 그나저나 아저씨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요?”

연금술사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이야기했잖아. 연금술사라고 말이야.”

그럼 연금술사가 이름이라는 건가요?”

이 세상에 연금술사는 나 하나뿐이야. 굳이 다른 이름이 필요하겠니?”

여전히 미소를 띤 연금술사가 반문했다. 그 순간 난다는 또 헷갈렸다. 그의 집에서 보았던 태양과 달 문양은 분명 할아버지의 공책이나 화덕에 있었던 연금술사의 상징이 맞았다. 다만 지하에 꽂혀있던 책의 절반 이상이 수준 떨어지는 화학과 물리학 책으로, 딱 봐도 사람을 속이는 데나 도움이 될 법한 것들이었으며, 그의 실험실 어디를 봐도 그가 금을 만들어내려 시도하고 있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세상에 한 명 뿐인 연금술사이겠는가. 하지만 당당히 자신이 연금술사라고 말하는 지금 그의 태도는 또 전혀 거짓 같지가 않다. 아직은 어린 난다였다. 여러 일들을 겪었지만, 이런저런 사실을 판단하는 데는 여전히 서툰 구석이 있었다. 난다는 복잡해진 머리로 다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공책이 보이지 않았다! 난다는 큰 목소리로 무니를 불렀다.

?”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칸타카를 부둥켜안고 놀고 있던 무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너 할아버지 공책 못 봤어?”

못 봤는데? 없어졌어?”

그제야 무니가 난다를 향해 달려왔다. 난다는 망연한 표정으로 그런 무니를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의심스러운 듯 연금술사에게 물었다.

혹시 아저씨가 가지고 간 거 아니에요?”

맞아. 당신이 가지고 갔지? 당신이 계속 우리 가방을 가지고 있었잖아.”

무니와 난다가 동시에 연금술사를 추궁하듯 쳐다봤다. 연금술사는 아이들의 시선에 잠시 멈칫하는 듯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직접 보지 않았니? 너희 짐들은 그대로 고스란히 있었다는 걸.”

그 말에 난다는 다시 멍해졌다. 무니는 여전히 연금술사에게서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난다, 너 그 공책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사흘 전 쯤. 하지만 분명히 가방 제일 깊숙한 곳에 넣어뒀는데…… 이제 어쩌지?”

거의 울먹이는 말투의 친구를 무니는 걱정스레 쳐다봤다. 물론 무니는 난다가 그 공책을 읽고 또 읽어서 내용을 거의 다 외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걸 떠나서 난다네 할아버지가 남긴 소중한 유품이었다.

당신, 정말 그 책 본 적 없어? 그럼 몸을 한 번 뒤져봐도 될까?”

!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줄은 알았지만, 확실히 맹랑한 꼬마로군.”

꼬마라고 하지 마!”

아무튼 그래, 좋다. 뒤져보려무나.”

연금술사는 팔까지 올리며 말했다. 무니는 그의 손에서 등불을 빼앗아 들고는 온 몸을 뒤져봤지만, 그의 말대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조그만 술병만이 양 주머니에 하나씩 들어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난다의 양어깨가 다시 축 늘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동하기 힘들겠는걸.’ 무니는 생각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연금술사는 난다에게 자신의 책을 모두 챙겨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현재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어차피 그곳을 떠나야 하므로 무니와 난다가 가는 데까지 길을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간밤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난다는 많은 곳들이 사막처럼 되어버려 지도가 있어도 방향을 잡기 힘들 것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일단 여정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 그들은 일단 바다를 향해 가야만 했다.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가 의심스러워 반발하려던 무니도 힘이 빠져있는 난다를 생각해 이번만은 친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사기꾼이이며 도둑이었다. 일행이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 첫날밤부터, 잠자리에 든 난다의 허리춤에서 사르나트의 바퀴를 몰래 꺼내려다 무니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는 그저 구경만 하려했다는 뻔한 거짓말을 늘어놨다. 물론 두 사람은 믿지 않았지만 한번 그냥 넘어가주었다. 사막이 얼마나 길을 잃기 쉬운 곳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방향을 제시하고, 어디가 야영지로 가장 적당한 곳인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막 횡단의 사흘 째 날 아침 결국 그는 사라지고 말았다. 난다가 늘 옆에 두고 자는 책가방과 함께, 그들을 비웃듯 자신의 짐은 그대로 남겨두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바로 몇 시간 후에 그가 제대로 된 길잡이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사막의 끝에 바다 대신 크고 높은 산이 우뚝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