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Ⅲ. 사막의 세 머리 용 (6)
그 순간, 무니는 말을 멈췄다.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난다는 용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이다. 정말 용이 그런 횡포를 부리고 있다면 한 번 피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마을 노인들은 난다가 유리 영감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말들을 하고는 했었다. 두 사람 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외면하지 못했다. 특히 그게 낯선 종류의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늘 자신보다 이성적인 난다지만, 이럴 때면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난 것처럼 굴었다. 무니가 다시 난다를 다그쳤다.
“야. 내 말 안 들려?”
그러나 난다는 정말 들리지 않는다는 듯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남카는 그런 난다를 너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무니에게 물었다.
“쟤 책 읽고 있는 거야? 지금 여기서?”
무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다도 원래는 무니와 비슷해서 책 읽는 것보단 노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달라지더니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점점 더 책에 매달리게 되었다. 오죽하면 무니가 ‘얼음의 성’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내내 ‘쿠샹의 도서관’에만 있었을까. 난다는 어차피 그들의 목적지가 도서관이었으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무니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책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 난다는 분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무니는 난다가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연금술사가 사르나트의 바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수레바퀴 중 은빛 바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그걸 눈치 채기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퀴의 속도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 빨라지고 있었다. 유리 영감의 비망록에는 은빛 바퀴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으며, 한 바퀴를 완전히 돌기 전에 수리아의 검 조각을 다 모아야만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은빛 바퀴의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를뿐더러,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각이라고는 달랑 두 개뿐이었다. 유리 영감이 남긴 책과 리시의 예언서 한 권만 가지고서는 수리아의 검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난다는 어디서든 책이 있는 곳엔 꼭 들렸다. 그러다 결국 가장 방대하다는 ‘쿠샹의 도서관’에서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책들을 찾아낸 것이다. 난다는 그 중 몇 권을 그곳에서 몰래 가지고 나오기까지 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그 고대의 문서들을 일일이 다 해독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무니는 난다가 가끔 사르나트의 바퀴를 쳐다보며 한숨 쉬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니 자신은 이상할 정도로 바퀴의 속도가 전혀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 조각을 모두 모아 수리아의 검을 완성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렇게 하기 전에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다 돌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야, 근데 저거 무슨 소리지?”
그때였다. 남카가 낮은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각자의 생각에 골몰해 있던 무니와 난다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봤다. 정말 어렴풋이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풀피리와 비슷한 소리였다.
“칸타카다! 분명 그 술주정뱅이가 집 쪽으로 오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야! 난다, 이 자식. 너 때문에 또 이게 뭐야!”
무니의 추측은 맞았다. 연금술사의 발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 아침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손에는 작은 책 한 권을 들고 있었고, 취한 것처럼 멍해있던 눈동자는 어떤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을 점점 더 빨리했다. 소년들에게 신호를 보낸 후 몸을 숨기기 위해 우왕좌왕하고 있던 칸타카는 연금술사가 바로 자기 옆을 스쳐지나가자 얼어버린 듯 멈춰 섰다. 그렇지만 다행히 온통 들고 있던 책에 정신이 팔려있던 연금술사는 멀뚱히 서 있는 칸타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가 ‘탁!’하는 소리를 내면서 뭔가를 건드리자 등불이 켜지면서 집 안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병들을 대충 밀어낸 후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촌장이 이걸 어떻게 알고 빼뒀을까.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자일지도 모르겠어.”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기념으로 술이 빠질 수 없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방구석에 가득 쌓여있는 술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집 안이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자신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방문객이 하나도 없던 집이었다. 지독한 유황 냄새 때문에 집 근처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에게만 익숙한 이 공간에서 어쩐지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집 안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화덕 아궁이에서 멈췄다.
한편 지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년들의 귀에 ‘달칵!’하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다! 들어왔나 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난다가 말했다.
“뭐야. 그럼 이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또 갇힌 거야?”
정말 싫다는 투로 무니가 말했다.
“조용히 좀 말 해. 위에 다 들리잖아.”
이미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남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남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그럼 이제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이젠 니네 둘만 문제가 아니라, 나까지 큰일이 잖아.”
세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난다는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때 희미하게 콧노래가 들려왔다. 아침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그런데 무니가 어쩐지 불길하다며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콧노래 소리가 뚝 끊겼다. 무니와 남카의 시선이 마주쳤다.
“확실히 불안한데?”
위기감을 느낀 건 남카도 마찬가지였다. 무니는 난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다는 아랑곳없다는 듯 이제는 책장의 책까지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남카는 그런 난다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난 책 읽는 사람도 별로 본 적 없지만, 저렇게 책만 보는 애는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 어.”
“앞으로도 다시 못 볼 거다, 아마.”
“근데 저 녀석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 책이 눈에 들어오냐고.”
무니는 난다를 흘낏 쳐다보고는 말했다.
“어쩌겠어? 어차피 들키거나 이렇게 갇혀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야,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무니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난다에게 다가가 읽고 있던 책을 뺏으며 말했다.
“자, 이제 방법을 내놔 봐.”
난다가 놀라서 무니를 쳐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난다가 뭐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 위에서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세 사람은 또다시 숨을 죽였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 같았다.
“정말 둘 중 하나네.”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남카가 한숨을 쉬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역시 위쪽을 바라보고 있던 무니가 남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려 난다를 쳐다봤다.
“그래. 차라리 들키는 게 낫겠다.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고. 아까 거긴 창문이라도 있었 잖아.”
그때 그들 앞으로 흙덩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아궁이 쪽이었다. 이건 지금 정말 누군가 화덕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 소원대로 되겠는데?”
남카가 무니의 말에 또 뒤 늦은 장단을 맞췄다. 마치 다 포기한 듯한 말투였다. 무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남카 쪽을 쳐다보는데 또 다시 ‘후두둑!’하고 소리가 났다.
연금술사는 누군가 이 집에 침입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지?’ 문득 촌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의 생각은 지하 공간까지 미쳤다. ‘어떻게 알고?’ 그러나 그가 화덕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집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연금술사는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가더니, 갑자기 문을 확하고 밀었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등불을 들고는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등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칸타카의 흰 꼬리를 발견했다.
“네 녀석이었구나.”
그는 웃으며 칸타카에게 다가갔다. 칸타카는 순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무니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여길 왔지? 네 주인이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닌데 말이야.”
연금술사는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주 예전에 내게도 너와 같은 종류의 말이 있었지. 그래서 널 보자마자 탐이 났지만 말 이야. 너희 종들은 정해진 주인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제 주인의 운명도 알 수 없 는 길로 접어들었으니 말이야. 후후. 그런데 도대체 여기엔 어떻게 온 거지? 혼자 온 것 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