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의 검 -Ⅲ. 사막의 세 머리 용 (6)

2011-10-18     고지연

그 순간, 무니는 말을 멈췄다.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난다는 용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이다. 정말 용이 그런 횡포를 부리고 있다면 한 번 피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마을 노인들은 난다가 유리 영감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말들을 하고는 했었다. 두 사람 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외면하지 못했다. 특히 그게 낯선 종류의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늘 자신보다 이성적인 난다지만, 이럴 때면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난 것처럼 굴었다. 무니가 다시 난다를 다그쳤다.

. 내 말 안 들려?”

그러나 난다는 정말 들리지 않는다는 듯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남카는 그런 난다를 너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무니에게 물었다.

쟤 책 읽고 있는 거야? 지금 여기서?”

무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다도 원래는 무니와 비슷해서 책 읽는 것보단 노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달라지더니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점점 더 책에 매달리게 되었다. 오죽하면 무니가 얼음의 성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내내 쿠샹의 도서관에만 있었을까. 난다는 어차피 그들의 목적지가 도서관이었으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무니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책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 난다는 분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무니는 난다가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연금술사가 사르나트의 바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수레바퀴 중 은빛 바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그걸 눈치 채기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퀴의 속도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 빨라지고 있었다. 유리 영감의 비망록에는 은빛 바퀴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으며, 한 바퀴를 완전히 돌기 전에 수리아의 검 조각을 다 모아야만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은빛 바퀴의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를뿐더러,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각이라고는 달랑 두 개뿐이었다. 유리 영감이 남긴 책과 리시의 예언서 한 권만 가지고서는 수리아의 검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난다는 어디서든 책이 있는 곳엔 꼭 들렸다. 그러다 결국 가장 방대하다는 쿠샹의 도서관에서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책들을 찾아낸 것이다. 난다는 그 중 몇 권을 그곳에서 몰래 가지고 나오기까지 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그 고대의 문서들을 일일이 다 해독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무니는 난다가 가끔 사르나트의 바퀴를 쳐다보며 한숨 쉬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니 자신은 이상할 정도로 바퀴의 속도가 전혀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 조각을 모두 모아 수리아의 검을 완성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렇게 하기 전에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다 돌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 근데 저거 무슨 소리지?”

그때였다. 남카가 낮은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각자의 생각에 골몰해 있던 무니와 난다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봤다. 정말 어렴풋이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풀피리와 비슷한 소리였다.

칸타카다! 분명 그 술주정뱅이가 집 쪽으로 오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야! 난다, 이 자식. 너 때문에 또 이게 뭐야!”

 

무니의 추측은 맞았다. 연금술사의 발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 아침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손에는 작은 책 한 권을 들고 있었고, 취한 것처럼 멍해있던 눈동자는 어떤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을 점점 더 빨리했다. 소년들에게 신호를 보낸 후 몸을 숨기기 위해 우왕좌왕하고 있던 칸타카는 연금술사가 바로 자기 옆을 스쳐지나가자 얼어버린 듯 멈춰 섰다. 그렇지만 다행히 온통 들고 있던 책에 정신이 팔려있던 연금술사는 멀뚱히 서 있는 칸타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가 !’하는 소리를 내면서 뭔가를 건드리자 등불이 켜지면서 집 안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병들을 대충 밀어낸 후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촌장이 이걸 어떻게 알고 빼뒀을까.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자일지도 모르겠어.”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기념으로 술이 빠질 수 없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방구석에 가득 쌓여있는 술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집 안이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자신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방문객이 하나도 없던 집이었다. 지독한 유황 냄새 때문에 집 근처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에게만 익숙한 이 공간에서 어쩐지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집 안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화덕 아궁이에서 멈췄다.

 

한편 지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년들의 귀에 달칵!’하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다! 들어왔나 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난다가 말했다.

뭐야. 그럼 이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또 갇힌 거야?”

정말 싫다는 투로 무니가 말했다.

조용히 좀 말 해. 위에 다 들리잖아.”

이미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남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남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그럼 이제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이젠 니네 둘만 문제가 아니라, 나까지 큰일이 잖아.”

세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난다는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때 희미하게 콧노래가 들려왔다. 아침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그런데 무니가 어쩐지 불길하다며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콧노래 소리가 뚝 끊겼다. 무니와 남카의 시선이 마주쳤다.

확실히 불안한데?”

위기감을 느낀 건 남카도 마찬가지였다. 무니는 난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다는 아랑곳없다는 듯 이제는 책장의 책까지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남카는 그런 난다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난 책 읽는 사람도 별로 본 적 없지만, 저렇게 책만 보는 애는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 어.”

앞으로도 다시 못 볼 거다, 아마.”

근데 저 녀석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 책이 눈에 들어오냐고.”

무니는 난다를 흘낏 쳐다보고는 말했다.

어쩌겠어? 어차피 들키거나 이렇게 갇혀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무니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난다에게 다가가 읽고 있던 책을 뺏으며 말했다.

, 이제 방법을 내놔 봐.”

난다가 놀라서 무니를 쳐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난다가 뭐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 위에서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세 사람은 또다시 숨을 죽였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 같았다.

정말 둘 중 하나네.”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남카가 한숨을 쉬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역시 위쪽을 바라보고 있던 무니가 남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려 난다를 쳐다봤다.

그래. 차라리 들키는 게 낫겠다.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고. 아까 거긴 창문이라도 있었 잖아.”

그때 그들 앞으로 흙덩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아궁이 쪽이었다. 이건 지금 정말 누군가 화덕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 소원대로 되겠는데?”

남카가 무니의 말에 또 뒤 늦은 장단을 맞췄다. 마치 다 포기한 듯한 말투였다. 무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남카 쪽을 쳐다보는데 또 다시 후두둑!’하고 소리가 났다.

 

연금술사는 누군가 이 집에 침입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지?’ 문득 촌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의 생각은 지하 공간까지 미쳤다. ‘어떻게 알고?’ 그러나 그가 화덕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집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연금술사는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가더니, 갑자기 문을 확하고 밀었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등불을 들고는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등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칸타카의 흰 꼬리를 발견했다.

네 녀석이었구나.”

그는 웃으며 칸타카에게 다가갔다. 칸타카는 순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무니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여길 왔지? 네 주인이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닌데 말이야.”

연금술사는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주 예전에 내게도 너와 같은 종류의 말이 있었지. 그래서 널 보자마자 탐이 났지만 말 이야. 너희 종들은 정해진 주인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제 주인의 운명도 알 수 없 는 길로 접어들었으니 말이야. 후후. 그런데 도대체 여기엔 어떻게 온 거지? 혼자 온 것 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