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변호사들을 구원하다

미국변호사협회서 적극 도입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심리에
마음챙김 명상 효과 발휘해
한국 법조계에서도 관심 증대

▶한줄요약

갈수록 치열해지는 현대사회에서 마음챙김 효과에 주목하는 직군이 증가하고 있다.

일류 기업 간의 법적 분쟁은 그야말로 돈 싸움이다. 경영권이든 특허권이든,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을 두고 공방을 벌인다. 그리고 세계적인 법률 회사들이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다. 글로벌 로펌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능한 변호사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들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이고 일반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얼핏 하늘 위를 걷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마음속은 지옥에 가깝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엄청난 부와 명성만큼이나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갖고 사는 경우가 많다. 최근 법조계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도입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변호사 중 상당수가 알코올이나 마약에 의존하고 있다. 수면장애는 물론 대인관계에서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가 부지기수다. 1990년 워싱턴과 애리조나에 있는 1,148명의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우울증 환자가 일반인 평균인 3~9%를 훨씬 상회하는 19%로 나타났다. 또한 18%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2016년에는 미국 내 12,000명의 변호사를 상대로 스트레스, 불안, 우울, 약물 남용의 정도 등을 조사했는데, 이들 중 20%가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수치를 기록했다. 의뢰인에게 수조 원의 돈을 벌어다 주려면 응당 수조 원짜리 스트레스를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변호사들의 아픔은 변호사들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동병상련이다. 뉴욕,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메사추세츠, 콜로라도, 덴버, 플로리다 등 미국 10여 개 주(州) 지역 변호사 협회에서는 소속 변호사들의 스트레스 감소와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마음을 치유해줄 강연회도 자주 개최한다. 또한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변호사 명상 그룹(Contemplative Lawyers Group)도 활동 중이다. 협회의 산하 단체 또는 비공식적 모임 형태로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는 그룹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명상을 하거나 명상 수련회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서는 변호사를 위해 명상의 가치와 방법을 소개하는 책자를 출판하고 있기도 하다. 정신건강과 사고력 증진, 의뢰인에 대한 친절, 공동체에 대한 관심 등을 위한 실용적인 수단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명상을 장려하는 협회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일과 삶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보다 넓은 시야와 열린 가슴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마이애미대학교 법대에서 법조인을 위한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개발한 스콧 로저스(Scott L. Rogers) 교수는 마음챙김 프로그램이 법조인에게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챙김은 인지능력, 정서지능, 건강과 웰빙을 증진시키는 멘탈 훈련 프로그램이다.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고객 중심 자문 역량, 심도 깊은 사고력,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창의적인 법률 해석과 문제 해결력을 강화시킨다.” 마음챙김 훈련은 우리의 생각, 느낌, 몸의 감각 등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재판 현장이든 고객의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든,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집중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즉 편견을 가지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얻는 것이다.

최근에는 변호사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추세다. 변호사 출신인 카렌 기포드(Karen Gifford)와 지나 조(Jeena Cho)는 〈불안한 변호사(The Anxious Lawyer)〉라는 자신들의 저서를 통해 변호사들을 위한 8주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는 이른바 ‘법조형’ 마음챙김 명상이다. 이 프로그램은 바디스캔, 호흡 집중 명상, 자신과 타인을 위한 연민, 만트라 명상, 감사 명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을 기본 교재로 하며 웨비나(Webinar), 페이스북 커뮤니티, 동영상 학습 자료, 인사이트 타이머(무료 명상 앱) 등을 가미해 학습 커뮤니티로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영국계 허버트 스미스와 호주계 프리힐즈가 합병되면서 탄생한 다국적 로펌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HSF, Herbert Smith Freehills)도 주목받고 있다. 국제 중재와 자원 개발 분야가 강점인 이 로펌은 서울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17개 국가에 24개 사무소를 가지고 있으며 소속 변호사 수만 약 2,800명에 이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로펌이다. HSF 호주 사무소에서 새로 합병된 조직과의 글로벌 차원의 협력과 연결성을 확보하고, 업무 전반에 걸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써 구성원들의 집중력과 명확성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위해 호주 법조계 최초로 기업 기반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Corporate Based Mindfulness Training Program)을 내부 지도자 육성 방식을 통해 도입했다. 마음챙김 명상을 지속적으로 훈련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내외부 고객의 니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조직의 성장과 번영을 리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믿음은 현실이 됐다. 프로그램 실행 후 구성원의 집중력이 45%, 몰입도는 17%, 일과 삶의 균형은 34%, 업무 효율성은 35% 상승했다. 반면에 업무 중에 받는 스트레스는 35%, 멀티태스킹은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참가자 전원이 자신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을 동료들에게 추천했다. 고객이 직면한 독특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해결하는 데 마음챙김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식품회사 제너럴 밀스의 변호사겸 법무 책임자에서 현재 마음챙김 리더십 전문가로 변신한 제니스 마투라노(Janice Marturano)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직장과 개인사에서 전쟁과 같은 어려움을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극복을 했다. 그녀는 매일 명상을 했고, 현재에 머물러 있는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결과를 바탕으로 필자가 공동 번역한 <생각의 판을 뒤집어라>라는 책을 통해 마음챙김 명상의 통해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효과 네 가지 강조했다.

가장 먼저 집중력(Focus)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마음챙김 훈련을 통해 마음이 현재를 떠나 다른 곳으로 배회하는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쓸데없는 잡념과 고민으로 방황하는 마음이 현재로 되돌아온다. 목표를 명확하게 세울 수 있게 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꾸준히 집중하는 힘이 길러진다. 둘째, 명료성(Clarity)이 증가된다. 마음챙김 훈련은 현재의 문제를 또렷이 직시하는 능력과 기존의 습관적 시각에서 벗어난 혁신과 도전적 관점을 길러준다. 셋째는 창의성(Creativity)이 잘 발현된다. 마음챙김 훈련은 기존의 통념과 관성으로부터 의식을 해방시킨다. 과거의 생각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훈련을 지소가면 창의성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연민심(Compassion)이 드러난다. 마음챙김 훈련의 가장 큰 의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한편, 변호사들을 양성하는 로스쿨에서도 마음챙김은 인기다. 2000년 중반 이후 미국 내 10여 개 로스쿨에서는 마음챙김 명상 수업을 정식 교과 과정으로 신설했다. 기존 교과 과정과 통합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이 분야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로스쿨의 론다 메기(Rhonda V. Magee) 교수가 선두주자다. 그녀는 과거에는 법학이 외부 관찰과 추론에 전적으로 근거했다면, 미래는 과거 모델에서 벗어나 내적 관찰과 성찰을 포함하는 새로운 모델로 패러다임을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쿨 학생들과 법률가들에게 단순히 사고가 아니라, 사고 그 자체를 사고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래야만 더욱 명징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명상을 법학 교육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미국의 로스쿨 중에서는 마이애미 로스쿨이 가장 적극적으로 마음챙김을 활용하고 있다. <법에서의 마음챙김(Mindfulness in Law)>, <마음챙김과 전문가 책임(Mindful Ethics: Professional Responsibility for Lawyers in the Digital Age)>, <마음챙김과 리더십(Mindfulness & Leadership)> 등이 정식 교과목으로 운영 중이다.

이제는 국내 법조인들도 명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서울변호사협회에 따르면,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현재와 같은 1,500명으로 가정하고 변호사의 은퇴 시점을 75세로 잡았을 때 2050년에 변호사 수가 7만 2,952명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변호사 1인당 연간 수임 건수와 연간 수익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고수익 전문직을 대표했던 변호사라는 직업의 매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법률 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 로펌의 국내시장 진출까지 감안하면, 국내 법률 시장은 그야말로 제 살 깎아 먹기의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아직은 법조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전문 직업군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 위상이 점차 낮아지고 경쟁 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보다 훨씬 힘들어졌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이제 국내 법률 시장에서도 명상이 필요해 보인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판단력 등 업무 능력 강화를 위해,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위해, 법조인으로서 윤리 강화를 위해, 전문가로서 자존감 회복을 위해, 로스쿨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로펌의 조직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변호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경쟁력은 ‘멘탈’을 잡는 것이다. 멘탈을 잡는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삶에 대한 긍정이 선행될 때 노동의 긍정이 가능해진다. 스스로를 부처라 여기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부처의 일로 여길 때, 비로소 깨달음을 이룰 수 있고 참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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