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환경 관심 높아지며
MZ세대 윤리적 소비 관심
‘비건’, 문화 트렌드로 소비
사찰음식은 유행도 좋지만
불교콘텐츠로도 이어져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사찰음식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사찰음식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천연비누 공방을 운영 중인 조민영(33세) 씨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비건(Vegan) 빵집 단골이다.

민영 씨가 우유, 계란, 버터 등과 같은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곡물가루와 식물성 오일 등을 기본재료로 사용해 만든 비건빵을 선호하게 된 것은 천연비누 공방을 운영하며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부터다. 최근에는 이와 함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면서 식습관에도 변화가 일었다. 평소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는 민영 씨는 “식습관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채식은 미래를 위해 가치로운 부분을 실천하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라며 “나의 건강을 살리고 동물을 죽이지 않으며, 하나뿐인 우리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의식하고 꾸준히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식’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고기 없는 식단이 외면받았던 것과 달리 건강과 환경 등을 이유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사이에서 코로나19와 이상기후 등으로 윤리적 소비와 비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른 가치 소비를 중시하게 된 것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08년 15만 명이었던 국내 채식 인구는 2018년 150만 명으로 10년 만에 10배가 늘었다. 2020년 200만 명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250만 명을 돌파하며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채식 트렌드에는 20·30대가 주축인 MZ세대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지난해 4월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중 95.6%가 환경을 위해 식습관을 바꿨다고 답했다. 그중 27.4%는 채식과 육식을 병행하는 간헐적 채식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MZ세대 사이에서 ‘비건’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비건(Vegan)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Vegetarian) 중에서도 육류와 생선은 물론 우유·계란·꿀 등 동물에서 나오는 식품을 일절 거부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빠르게 증가하는 채식 인구 중 채식만 엄격하게 하는 이들은 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제외한 상당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인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으로 분류된다.

‘비건’ 트렌드가 이어가면서 최근에는 한국고유의 비건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찰음식 또한 최신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스님들 건강을 생각해 고안된 사찰음식이 이제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음식이 된 것이다. 사찰음식점이 20·30 세대들이 붐비는 서울 종로나 강남 인기 거리인 일명 ‘핫플레이스’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만 봐도 MZ세대들에게 사찰음식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실제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서울 종로구에서 운영하는 ‘발우공양’은 코로나19 이후 최근 1~2년 사이, 20~30대 이용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발우공양에 따르면 최근 평균 이용객의 40% 정도가 20~30대다. 예약 건수도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통한 예약이 전체의 약 50%에 이르는 데, 이는 젊은 층들의 이용이 반수 이상이라는 증거다. 

박준규 발우공양 매니저는 “최근 젊은 커플들이 기념일에 맞춰 예약하고 케이크를 들고 방문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면서 “사찰음식이라는 희소성, 유니크한 다이닝이라는 점이 한몫한다는 점과 더불어 채식에 대한 관심이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에 발우공양은 MZ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SNS활용과 다양한 메뉴개발 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발우공양에는 특히 젊은 서양인들도 자주 눈에 띄는 데 “외국 손님들은 파·마늘·부추·달래·무릇 등 오신채(五辛菜)를 사용하지 않는 사찰음식이 양념이 강한 일반 한식보다 오히려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게 발우공양 측의 설명이다. 비건 문화가 자리 잡힌 서양인들 눈에 그동안 한국은 삼겹살과 치맥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20·30 세대에 인기 좋은 배냉면. 제철배를 사용, 다양한 맛과 질감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제공=마지
20·30 세대에 인기 좋은 배냉면. 제철배를 사용, 다양한 맛과 질감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제공=마지

사찰음식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라고 말한다. 사찰음식점 ‘마지’ 김현지 대표는 “채식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고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지면서 비건 음식으로 대표되는 사찰음식에도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마지의 경우 이 빠진 그릇이나 잔을 버리지 않고 다듬어 음식을 내고 물티슈도 사용하지 않는다. 자투리 야채와 껍질까지 모두 사용해 야채수를 만든다. 음식물 쓰레기를 내지 않고 일회용품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때문에 환경문제와 같은 문화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MZ세대들이 스스로 사찰음식을 찾아온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마지’의 단골 또한 중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약 80% 정도가 20·30세대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부모가 예약해 가족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자녀가 예약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러 오는 형태로 변했다”면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로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채식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찰음식이 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지만 단순한 채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채식은 오계를 일상의 음식선택을 통해 실천하는 것으로, 발우공양 정신을 현대에 맞게 대중화한 삶의 방식이기에 불교 그 자체이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불교는 사라지고 채식만 남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찰음식을 통해 채식의 가치뿐 아니라 본연의 의미도 접할 수 있게 된다면 불교를 좀 더 친근하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단순한 사찰음식 체험을 넘어 이를 배우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국불교문화콘텐츠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 사찰음식 전문가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수년 전 ‘비건의 해’를 통해 동물윤리, 생태계보호, 윤리적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비건채식을 실천하는 20·30세대들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망했다”면서 “훌륭한 잠재적 불자들을 불교계가 모범을 보임으로써 적극적으로 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사찰음식 시그니처 메뉴 나물구절판과 연밥. 사진제공=마지
사찰음식 시그니처 메뉴 나물구절판과 연밥. 사진제공=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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