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컴패션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리더스웨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티베트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티베트인들의 믿음이 어찌나 강한지 나도 놀랄 정도이다. 수많은 티베티인들이 티베트 바깥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믿음과 쾌활함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어넣을 때 리더는 그것이 바른 믿음이 되도록 신중해야 한다.”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바른 믿음’이다. 믿음은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강력하고 무한한 힘을 준다.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바른 믿음이란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티베트인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태앙과 같이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그 잠재력은 바로 모든 인간의 온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을 가리고 있는 구름 때문에 잠시 보이지 않을 뿐 태양 자체를 의심하면 안 된다. 자신의 온전성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언젠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찬란한 태양을 마주할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함께 한다. 성철 스님께서 백일 법문에서 “수행은 자기 호주머니 속에 이미 있는 보석을 찾는 일”이라고 한 말씀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자신의 태양을 맞이하려면 밖으로만 치닫는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가만히 살피고 돌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자신의 온전성을 신뢰하기는커녕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에게는 기꺼이 친절을 베풀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 우리는 보통 자기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나는 왜 되는 일이 없을까?”, “왜 하필이면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등.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익숙함을 넘어서 자동화(autopilot)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자기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실제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일이다. 만약 손가락이 베이면 상처부위를 소독한 후 약을 바르고, 밴드나 붕대로 보호하면서 치료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상처가 나면 따뜻한 주의로 돌보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친절은 이기심이 아니다.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친절이나 사랑을 베풀기 어렵다고 한다. 먼저 자신을 사랑할 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배가 된다. 먼저 나에게 친절해야 한다. 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너그러운 반면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혹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고 오래 가지도 못한다. 언젠가 힘들고 지쳐서 상처만 입고 쓰러지기 십상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셀프 컴패션 (Self-Compassion)’다. 셀프컴패션은 새롭고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삶의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이것이 바로 셀프 컴패션이며 행복의 근본이다.

자기 비난은 자신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가치는 자기 비난이 아니라 자기 친절이다. 자기 친절이 없으면 내적 자원이 빨리 소진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온전히 발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내면의 태양이 어둠 속에 갇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때 발휘되어야 할 핵심 덕목이 바로 셀프 컴패션이다.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현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있는 그대로 완전하고 소중한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친절할 때 숨겨진 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이다. 따스하고 친절한 마음씨는 우선 자기 자신을 위해 쓰여야 한다. 나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 수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진정성 있는 사랑과 친절을 베풀 수 없다. 항상 조그만 부분이라도 자신을 칭찬해주고, 과거의 잘못도 흔쾌히 용서해주고,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간단한 실습을 해보자.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놓고 다음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당신의 친한 친구가 어떤 불행이나 실패, 부적절한 상황 등으로 괴로워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 당신은 그런 상황에 처한 친구를 보통 어떻게 대하는가? 어떤 말을 해주는가? 말할 때 어떤 어조를 사용하는가? 말할 때 자세는 어떠한지도 생각해보라.”

그동안 친구에게 어떻게 해왔는지 종이에 있는 그대로 적어보기 바란다. 이제 상황을 바꾸어보자.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순간들, 불행・실패・괴로움 또는 수치스러웠던 상황들을 떠올려 보라.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가? 어떤 말투를 사용하는가? 자세는 어떠한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왔는지 가감 없이 적어본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대응과 자신에 대한 대응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이 질문은 MSC 프로그램 1회차에 나오는 핵심 실습이다. MSC 프로그램 개발자인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가 그의 동료와 진행한 한 조사에 의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중 78%가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친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기에게 더 친절했던 사람은 겨우 6%에 불과했다. 나머지 16%는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비슷비슷하게 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보다 자신에게 가혹하고 비판적이다. 셀프 컴패션은 일이 잘못되고 있을 때, 친구를 대하듯 자신에게도 똑같이 친절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친구나 가족을 대하듯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셀프 컴패션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치고 힘들 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소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신에 대한 친절의 햇빛이 고통의 눈물과 만나면 연민의 무지개가 피어난다. 연민의 무지개가 피어날 때 자신에게 내재된 지혜와 능력이 무지갯빛으로 뿜어져 나온다. 셀프 컴패션은 온전하고 조화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굳건한 토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능력이 아니라 숨겨진 능력이고, 본인 스스로가 억누르고 있는 능력이다

크리스틴 네프에 의하면 셀프 컴패션에는 세 가지 주요 구성 요소가 있다. 첫째, 자기 판단이나 자기 비판이 아니라 자기 친절이다.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만큼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일이 행복의 시작이다. 셀프 컴패션과 함께할 때 우리가 애정을 갖는 친구를 대하듯 친절, 돌봄, 이해, 지지로 자신을 대할 수 있다.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고 자기 자신과의 공감을 시도하는 셀프 컴패션은 고통을 완화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고통의 완화를 위해 스스로 뭔가를 하게끔 만든다. 고통스러울 때 적극적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는 것과 힘겨울 때 나에게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고통이 우리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셀프 컴패션과 함께할 때, 나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인간 실존의 보편성을 깨달을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관되어 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경험한다. 내가 아플 때 다른 사람도 어떤 식으로든 아프다. 이러한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자각할 때 혼자라거나 고립됐다는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괴롭고 걱정하며 산다는 것에 대한 통찰. 간단히 말하면 나만 그렇지는 않다는 것. 이것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셋째, 셀프 컴패션은 마음챙김과 함께한다.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음챙김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느낌에 주의를 향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 그것과 함께하도록 한다. 마음챙김이란 균형을 유지하는 자각의 상태이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방식을 일컫는다. 셀프 컴패션은 내가 가진 고통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든 연인이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는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에게 맞추어간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셀프 컴패션의 또 다른 표현은 이른바 ‘사랑에 연결된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챙김을 통한 자각은 우리가 언제 고통 속에 있는지, 언제 스스로를 비난하는지, 언제 고립을 자초하는지 인식하도록 도움으로써 우리가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제시해준다. 마음챙김과 함께하는 셀프 컴패션은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힘을 준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법구경> 157편에 “자기를 사랑할 줄 안다면 자신을 지켜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밤의 세 때 중 한번쯤은 깨어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처럼 지면이지만 부드러운 태도로 아래 내용을 3번씩 소리내어 읽어보자.

“스스로 미워한 자신을 용서하기를

“누군가를 미워한 자신을 용서하기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번민에서 자유롭기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서 자유롭기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늘 깨어 있기를”

반복할수록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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