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지정 20주년  
직지, 서지학 측면만 부각
본질인 내용 연구는 ‘부재’
무관심 속 탈불교화 우려
본질 알리는 노력 시급해

프랑스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원본. 사진제공=혜원 스님
프랑스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원본. 사진제공=혜원 스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를 담은 불교성보다. 그럼에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쇄술 등 서지학적인 측면에서만 인식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명칭에 가려져, 정작 성보로서 〈직지〉의 가치와 본질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서지학적 측면의 가치는 물론, 한발 더 나아가 〈직지〉의 본질에 주목해 그 속에 담긴 가르침을 알리고 성보로서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불교계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직지〉의 원래 명칭은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요절〉, 고려시대 백운화상이 법맥의 계승을 위해 선불교 요체를 추려 저술한 일종의 불교성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정 20주년을 기점으로 〈직지〉를 향한 관심이 재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직지〉의 내용과 성보로서의 인식은 저조한 수준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는 서점에서 판매 중인 출판현황에서도 드러난다. 〈직지〉의 유명세에도, 우리말 번역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은 동국대역경원이 편찬한 <직지(조계종 출판사)>, <무비 스님의 직지 강설 상·하(불광출판사)>, 혜은사 주지 덕산 스님의 <돈오의 길 직지심경 상·중·하(비움과소통)> 등 서너 권에 불과했다. <직지> 관련 다수를 차지하는 어린이·청소년 대상 서적들도 대부분 금속활자나 인쇄술, <직지>의 존재를 드러낸 박병선 박사의 이야기 등이 주된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직지〉를 향한 대중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직지시낭송대회’를 개최해 온 이양우 직지나라사랑조직위원장은 “시낭송대회 참가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직지〉에 담긴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만 인식하고 있다”며 “심지어 불자들조차 〈직지〉가 불교서적이라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직지〉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쇄술이나 서지학적 측면만이 부각되면서, 본질이 가려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청주시가 1992년 개관한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우리나라 인쇄문화 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으며, 홈페이지 역시 금속활자와 인쇄출판에 관한 소개가 주를 이룬다. 

청주시가 서원대 평생교육원에 위탁운영 중인 ‘직지대학’의 커리큘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지대학의 직지지도사 양성과정은 한국 고인쇄 문화에 대한 이론 강의를 비롯해, 한지·활자·먹, 붓 등에 관한 이론 및 기법·기술을 중심으로 한 체험 강좌가 주를 이룬다. 결국 1년간의 교육을 수료한 직지지도사들 역시 〈직지〉의 내용은 알지 못한 채 직지홍보와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인력으로 활동하게 되는 셈이다.

개인적인 원력으로 〈직지〉 강의를 이끄는 청주 혜은사 주지 덕산 스님은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물로서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내용에서 더 큰 의미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자들은 물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직지>에 담겨 있기에, 더 쉽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대중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파리 길상사 주지 혜원 스님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직지〉 원본 영상 촬영에 동행했던 경험을  전하며 “현 상황은 책에 담긴 진면목은 보지 못한 채 껍데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원본영상 촬영 당시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파리7대학 브뤼느통 교수, 파리 길상사 혜원 스님,   다큐멘터리 감독 제롬 쎄실 오프레, 제작사 프로듀서 로랑스 파브로.
원본영상 촬영 당시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파리7대학 브뤼느통 교수, 파리 길상사 혜원 스님,   다큐멘터리 감독 제롬 쎄실 오프레, 제작사 프로듀서 로랑스 파브로.

혜원 스님에 따르면 당시 촬영팀과 관계자들은 〈직지〉에 담긴 내용을 대단히 궁금해 했으며, 이후 그 속에 응집된 선불교의 정수를 접하고 이해하기 위해 참선수행에도 동참했다. 이는 〈직지〉가 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음을 방증한다.

스님은 “정치와 종교가 철저하게 분리된 이곳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서 <직지>를 친견하고 염불로서 예경을 드릴 때 한국불교를 모르는 촬영팀과 도서관 관계자들도 그 엄숙함에 이끌려 기도에 참여했다”며 “그 순간 <직지>에 담긴 성보로서의 가치가 오랜 세월을 지나 이토록 머나먼 타국에서도 성성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에 “‘직지’의 본질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직지〉에 담긴 사상적인 깊이를 여러나라의 언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등의 노력은 물론, 더 쉬운 언어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컨텐츠들이 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는 한·불전문가들과 함께 〈직지〉의 불어번역을 추진 중이다. 사회부는 “그동안 〈직지〉를 연구하고 알려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주로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 서지학계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직지〉의 본질과 성보로서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불교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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