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개인전 여는 사진가 박상훈
‘화양연화’展 10월 1~31일 갤러리 나우

존재ㆍ시간ㆍ경이로움 담은 사진 22점 전시
꽃의 경이로움에서 자신의 경이로움 발견해
가상 ‘디지털이슬’ 사진에 입힌 새로운 시도도

“사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존재에 대한 질문 계속해 나가는 것이 계획”

화양연화-Flower 02-2018-2021
화양연화-Flower 02-2018-2021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의 철학적 원소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각자가 지닌 ‘존재’의 발아가 각자의 이름이 아닐까. 꽃, 나무, 새 … 인간. 그리고 ‘존재’라는 원소를 지닌 그 모든 생명들은 시간이 증명하는 것들이어서 살아있는 순간순간이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존재의 경이로움을 들여다보는 사진가가 있다. 그 사진가는 갤러리 벽에 걸린 자신의 사진들을 ‘질문’들이라고 했다. 존재의 경이로움을 들여다보고 난 후의 질문들이다.

1986년 ‘우리나라 새벽여행’ 展으로 풍경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사진가 박상훈이 11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박 작가는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초대 개인전 ‘화양연화’를 연다.

전시의 큰 주제는 역시 지금까지의 ‘박상훈’에서 시작된 것으로, 존재와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순간순간이 전하는 경이로움이다. 그리고 큰 주제의 문장이 되고 있는 테마는 꽃(Flower)과 사람(People)이다. 인물(누드)에서 시작해 나무로 이어진 전작 ‘토르소’에서처럼 이번 작업은 꽃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 영감은 사람으로 이어졌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꽃과 사람을 통해 ‘존재’의 문제를 들여다본 사진 22점을 선보인다. 박상훈의 사진이 되어버린 꽃들과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관람객은 ‘화양연화’를 본다. 아니 화양연화란 무엇일까, 생각해야 한다. 이번 전시의 이유다. 사진가 박상훈이 던지는 질문, ‘화양연화’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공원에서 늘 보던 꽃이 눈에 들어오는데, 왠지 그전과 다르게 보였어요. 정말 평범한 꽃인데 그날따라 달라보였어요. 왜 그럴까 생각했죠.”

박 작가는 2016년 아주 소중한 사람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황망한 이별을 겪은 후 다가오는 상실감과 아쉬움은 박 작가로 하여금 ‘생명’이라고 하는 문제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했다. 아니 처음으로 ‘생명’이라는 문제를 문제적 명제로 생각하게 했다.

“소중한 사람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이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주의 수많은 별이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경이롭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꽃이 그랬어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꽃들이 그랬어요. 그 전에도 보았던, 평범하고 연약한 그 꽃들이 경이롭고 그 꽃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경이로운 일이었어요. 그것이 각자의 ‘화양연화’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경이로운 이 순간순간이 화양연화인 것이죠. 꽃은 내가 있든 없든 늘 계절에 맞게 피겠지만 내가 없다면 그 꽃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작가가 그냥 스쳐지나갔다면 사라졌을 ‘존재’가 특별한 만남을 통해 꽃도 박상훈도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박 작가의 사진은 전작들이 그랬듯이 피사체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한 사진이다. 배경을 배제하고 순간순간 철학적 원소로서의 ‘존재’를 피우고 또 스러지는 ‘과정’ 속의 꽃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 ‘들여다봄’은 박상훈의 질문이자 관람객들이 품어야 할 질문들이다.

“예술가는 무언가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술’이 된 작품들은 보는 이들 각자의 몫으로서의 ‘질문’이고 스스로의 ‘답’으로 가는 문인 것입니다. 예술가는 그 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작가는 이번 작품들에서 아날로그로 축적된 노하우로 꽃 사진을 완성했다. 그리고 사진 및 영상에서의 후반작업을 거쳤다. 그 마지막 과정은 디지털 프로세스로, 사진 속 꽃잎 표면에 가상의 아침이슬을 입혔다. 인위적인 가상의 디지털 이슬은 이번 작업의 화룡점정이다.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꽃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하고 내게 특별히 다가오는 꽃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개미가 기어 올라오기도 하고 매미가 떨어져 죽어있기도 했어요. 전에 보지 못했던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주라는 큰 개념에서 보면 꽃이나 벌레, 인간이 찰나의 존재라는 점에선 크게 다를 바 없고,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에 가 닿았고,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박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기 시작한 꽃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찍어야 할까 고민했다. 박 작가는 꽃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조명을 주고 배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회를 열기 직전에 찍어놓은 사진 속 꽃에 디지털 이슬을 입혔다.

“아날로그 세대가 수없이 찍은 꽃 사진이 디지털 시대에 와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을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접목시켜 융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기법적인 수단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꽃이 지닌 존재를 들여다보고 꽃의 본연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미학적 차원으로 사용했어요.”

풍경사진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던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또 한 번 사진의 새로운 길을 열어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꽃 사진을 박상훈만이 찍을 수 있는 꽃 사진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낸 것이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바라본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불교의 ‘佛’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의 인터뷰 끝에서 ‘佛’자가 보였다. ‘존재’에 대한 문제로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불연에 대해 묻자 박 작가는 망설임 없이 ‘모태’라고 말했다. 인터뷰의 끝에서 ‘佛’자가 보였던 것은 박 작가가 불교와 가깝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작가는 부처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처님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부처님이 아닌 온전히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부처님 공부의 결론 같다고 말했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박 작가는 사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박 작가에게는 온전히 자신에게 의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도 사진가 박상훈은 자신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존재마다 부여된 ‘존재’의 의미를 사진으로 옮겨낸다. 앞으로 사진가 박상훈이 만나게 될 ‘박상훈’이 궁금해진다.

박상훈(1952~)은 중앙대학교 사진과를 졸업했다. 1982년에 첫 개인전 ‘풍경모음’ 이후 1986년과 1994년에 ‘우리나라 새벽여행’, 2006년 ‘Who are you’, 2010년 ‘토르소’를 열었다. 1994년 ‘The New York Festival’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2015년부터 3년간 인천국제공항에 김환기 화가와 함께 한국을 알리는 작가로 선정됐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박상훈 사진가
박상훈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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