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오후에 갑자기 경비대장이 군마를 타고 베디샤데바 저택으로 달려왔다. 걸어와도 될 거리인데 군마를 타고 온 이유는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경비대장은 베디샤데바를 보자마자 미안해하는 얼굴을 했다. 베디샤데바가 물었다.

“저녁에 만날 텐데 왜 급히 왔소?”

“궁중연회를 내일 저녁으로 미루기로 했소.”

“사정이 생겼소?”

“부왕님께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 하십니다.”

베다샤데바는 아쇼까의 뜻에 따랐다. 그에게는 아쇼까의 뜻을 거스를 만한 이유나 권한이 없었다. 이제 아반띠국에서 아쇼까의 말은 곧 법이었다.

“오히려 잘 됐소. 부근 도시의 관리와 상인들을 초대해 모두가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겠소?”

경비대장은 가까운 도시의 관리와 상인들이 부왕 아쇼까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궁중연회이기를 바랐다. 베디샤데바도 경비대장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쇼까는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궁중연회를 여는 것보다 하루 정도 늦추자고 경비대장에게 지시했던 것이다. 경비대장이 말했다.

“데바 수장님께서는 인근 도시의 상인들을 초대하고, 나는 파견나간 관리들을 부르겠소.”

“내일 저녁이면 급히 서둘러야겠소.”

경비대장은 접견실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왕궁으로 돌아갔다. 베디샤데바는 궁중연회를 지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상인참모들을 불러 여러 도시의 상인 수장들을 초대하라고 지시했다. 아반띠국을 통치할 새로운 부왕이 여는 첫 궁중연회이니 초대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참석할 터였다.

베디샤데바 참모들은 즉시 말을 타고 북서쪽의 말와, 남서쪽의 수나빠란따, 동북쪽의 꾸루라가라로 달렸다. 특히 말와로 가는 참모에게는 아쇼까에게 후식으로 바칠 말와 고원의 망고를 가져오도록 당부했다. 말와 고원에서 수확하는 망고는 다른 지방과 달랐다. 껍질이 샛노란 망고는 크고 달콤한 데다 입안에서 스프처럼 살살 녹았다. 베디샤데비가 2층에서 내려와 데바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오늘 연회는 내일로 미루어졌다.”

“아, 잘 됐어요. 웃자인 전통음식을 만들려면 한 나절이 필요했어요.”

“그래? 한 나절이나 걸린다니 실수할 뻔했구나.”

“달이나 바플라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건 웃자인 전통음식이라기보다 말와 지방 전통음식이 아니니?”

“맛있으니 웃자인뿐만 아니라 아반띠국 사람들이 다 즐겨 먹는 전통음식이 된 거죠.”

“음식 만드는 데 솜씨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잘 아는지 몰랐구나.”

“어머니께서 다 가르쳐주신 거죠. 저는 어머니 음식솜씨를 따라가지 못해요.”

베디샤데바는 데비가 어머니라는 말을 하는 순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베디샤나가르 농원 저택에서 건강을 회복 중인 아내가 생각나서였다. 데비는 2층으로 올라와 베디샤나가르 쪽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다음날 오후.

베디샤데비는 우두머리하녀에게 웃자인 전통음식인 달과 바플라 식재료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우두머리하녀가 여러 하녀들에게 역할 분담을 시켰다. 한 하녀는 밀과 옥수수를 돌확에 넣고 쇠공이로 찧어 가루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하녀는 소금과 발효시킨 우유를 준비했다. 이윽고 우두머리하녀가 계피가루 같은 향신료와 소금을 넣고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이 다 되자마자 베디샤데비가 동글납작하게 빵 모양을 잡았다. 이후 네댓 명의 하녀들도 같은 크기의 빵을 순식간에 백여 개나 만들었다. 빵이 너무 작거나 큰 것은 베디샤데비가 따로 집어내 모양을 다시 잡아 숙성시켰다.

한편, 어린 하녀들은 마른 소똥을 통에 담아 화덕 옆으로 날랐다. 철판이 든 화덕은 마른 소똥이 타면서 열이 은근히 가해졌다. 베디샤데비가 먼저 열기가 훅 끼치는 화덕에 빵 서너 개를 넣었다.

“흰색이 황금빛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구워야 맛있거든.”

빵을 기름에 바로 튀길 수도 있지만 베디샤데비는 구워내어 버터기름을 발랐다. 빵은 번지르르하게 윤이 나면서 더욱 군침을 돌게 했다. 하녀들도 나머지 빵들을 베디샤데비가 했던 대로 따라서 했다.

우두머리하녀는 백여 개의 바플라를 대바구니상자에 담았다. 궁중연회장에 가지고 가려고 끈으로 묶기도 했다. 원래는 말와 지방의 전통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웃자인 전통음식이라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달 역시 웃자인 방식이 따로 있었다. 달을 만들 때도 베디샤데비가 우두머리하녀를 통해 지시했다.

“콩을 먼저 물에 넣고 푹 삶아야 해요.”

전통음식은 베디샤데비가 우두머리하녀를 시켜서 시작했다. 약간 무뚝뚝한 우두머리하녀는 베디샤데비에게 지시받은 조리법대로 어린 하녀들을 부렸다. 하녀들은 말없이 움직이다가도 때로는 깔깔거리며 손을 놀렸다. 한 하녀는 버터에 다진 고추와 마늘, 생강과 고수에다 강황가루와 계피가루, 소금을 뿌리고 화덕에서 볶았다. 베디샤데비가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만 하고 이제 삶은 콩을 붓고 걸쭉해질 때까지 저어야 해.”

하녀 두 명이 주걱으로 저었다. 잠시 후 베디샤데비가 우두머리하녀에게 눈짓을 하자, 우두머리하녀가 사탕수수 즙으로 만든 설탕을 듬뿍 넣었다. 베디샤데비가 주걱을 든 하녀에게 말했다.

“묽지도 되지도 않아야 하니 불이 약해야 돼.”

소똥을 화덕에 넣었던 어린 하녀가 재빨리 불이 붙은 소똥 몇 개를 빼냈다. 그러자 열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노란 빛깔의 죽, 달이 완성되자 하녀들이 뚜껑이 있는 은제 사각의 큰 그릇에 담았다. 은제 그릇을 사용한 이유는 궁중연회장에서 따뜻함을 유지하려면 미지근한 숯불 위에 올려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후식용 라두(Laddu)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라두는 웃자인 전통음식이라기보다는 아반띠국이 생기기 전부터 인더스강 쪽에 살던 드라비다족 사람들이 아리안족에 밀려 내려오면서 웃자인 지역에 전해준 간식용 과자류였다.

베디샤데비는 웃자인 전통음식만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그밖의 음식은 궁중요리사들에게 맡겼다. 궁중요리사들은 어제 수레에 싣고 간 채소류와 식재료들로 요리하고 있을 터였다. 또한 도살한 염소나 닭, 돼지 등은 끓는 물에 삶거나 훈제요리를 해두었을 것이었다.

 

왕궁에 다녀온 베디샤데바가 데비에게 다가와 말했다.

“왕궁에서는 연회에 나올 요리들이 다 준비됐더라. 너는 어떠니?”

“저도 달과 바플라를 만들어 놓았어요.”

“그럼, 지금 왕궁 연회장으로 옮기자구나.”

“아버지, 수레가 두 대 필요해요. 전통음식 한 대, 정오 무렵에 말와에서 가져온 망고까지 가져가려면 또 한 대가 더 필요해요.”

“알았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가자구나. 왕궁을 몇 번이나 걸어서 왔다 갔다 했더니 다리가 아프구나.”

이윽고 베디샤데바와 데비는 데바의 전용마차에 올랐다. 데비는 가슴이 설레면서도 ‘부왕님께서 맛있게 드셔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을 했다. 데비의 그런 마음을 눈치 챈 데바가 말했다.

“데비야, 최선을 다한 네 마음을 부왕님께서 알아주실 것이다.”

“어떻게 제 마음을 알죠?”

“음식은 맛으로 마음을 전하는 거란다.”

“어머니가 만드셨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저는 아직 부족해요.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한가 봐요.”

“걱정 마라. 좋은 연회가 될 것이니.”

왕궁 정문을 검색 없이 통과한 두 사람은 궁중연회장으로 바로 갔다. 전통음식과 망고를 실은 수레는 두 사람을 따라왔다. 연회장 밖 정원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소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베디샤데비가 알고 있는 꾸루라가라에서 온 상인도 보였다. 베디샤데비는 마차 안에서 앞치마를 두른 뒤 내렸다. 오후 내내 만든 전통음식을 아쇼까 부왕의 식탁에 따로 놓기 위해서였다. 아쇼까를 위한 식탁에는 이미 여러 육류와 채소류 음식들이 접시와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은제 주전자와 유리병에 든 포도주와 밀로 빚은 맥주도 있었다.

베디샤데비는 달과 바플라를 궁중 요리사들과 함께 아쇼까 식탁으로 옮겼다. 궁중요리사 우두머리가 달이 담긴 은제 그릇을 재빨리 삼발이 위에 놓았다. 숯불은 연회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옮길 셈이었다. 달은 식은 것보다 따뜻한 상태에서 단맛과 향신료 맛을 더 내기 때문이었다. 데비가 가져온 말와 지방의 망고는 아쇼까 식탁에 서너 개만 놓고 중앙의 과일식탁에 수북이 쌓았다. 후식용 라두 역시 망고 옆에 한 접시만 차렸다. 이윽고 관리의 목소리가 연회장 정문 쪽에서 들려왔다.

“곧 부왕님께서 드십니다! 밖에 있는 분들은 속히 입장해 주시오!”

아반띠국 여러 도시의 관리와 상인 수장들이 우르르 연회장 안으로 입장했다. 곧바로 아쇼까 부왕의 입장을 알리는 궁중악대 연주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박수로 아쇼까 부왕을 맞이했다. 아쇼까가 자리에 착석하자, 그제야 박수소리가 멎었다. 아쇼까가 다시 일어나 한 손을 쳐들고 말했다.

“마우리아국 빈두사라 대왕님의 명을 받아 아반띠국에 온 부왕이오. 아반띠국 여러분을 만나니 반갑소. 오늘 이 연회는 베디샤데바 상인 수장이 우리 모두를 위해 마련한 자리이니 마음껏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오.”

건배사는 가장 나이가 많은 수나빠란따에서 온 상인 수장이 했다. 그리고 말와에서 온 관리가 지방 관리들을 대표해서 했다. 건배사의 내용은 서로 엇비슷했다. 아쇼까 부왕에게 충성하여 아반띠국의 번영과 평화를 누리자는 내용이었다. 경비대장이 의도한 대로 충성맹세였다. 건배사가 끝나자 궁중악대가 흥겨운 연주를 했고 반라의 무희들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

베디샤데비는 아버지 옆에서 아쇼까 부왕이 무슨 음식에 손이 가는지 주시했다. 아쇼까는 궁중요리사가 따라주는 포도주를 한 잔 하더니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이리저리 둘러보곤 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짙은 눈썹 끝을 살짝 움직였다. 도도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관심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쇼까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이윽고 베디샤데바 부녀와도 눈길이 마주쳤다. 궁중연회를 주관해 주어 고맙다는 뜻인지 눈웃음을 보냈다. 감격한 베디샤데바 부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아쇼까의 눈길은 다른 데 가 있었다. 가슴을 졸였던 베디샤데비는 겨우 마음을 진정했다. 그러나 잠시 후, 데비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데비는 바플라를 먹고 있는 아쇼까를 보면서 기절이라도 할 뻔했다. 아쇼까는 바플라를 하나 들고서 따뜻한 달에 찍어 먹고 있었다. 베디샤데바가 데비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구나. 조심해라.”

젓가락이 연회장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주위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베디샤데비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베디샤데비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계속>

▶ 32회 예고

웃자인 입성에 성공한 아쇼까는 아버지 빈두사라왕에게 보고서를 쓴다. 현황과 통치방향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어머니 다르마 왕비와 아내 아상디밋따에게 편지를 쓴다. 군수부대 부대장 편에 보고서와 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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