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아쇼까는 빈두사라왕을 대신해서 웃자인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아반띠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베디샤나 산찌, 꾸루라가라 등 크고 작은 도시들 상인들도 장사를 개시했다. 반란군은 며칠 만에 대부분 괴멸했다. 아쇼까는 웃자인에서도 탁실라처럼 용서와 응징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투항한 반란군들은 살려주는 대신 노비로 삼았고, 저항한 반란군들은 성민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형을 집행했다.

웃자인 거리는 다시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젊은 남녀 성민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달리는 마차의 방울소리가 요란했다. 마차끼리 부딪쳐 큰소리로 싸우는 사람들도 예전처럼 나타났다. 웃자인 사람들은 다른 도시인들보다 더 거칠었다.

동문 밖에는 화려한 마차와 10여 대의 짐을 실은 수레가 멈추어 있었다. 누구라도 검문검색을 받아야만 동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수문장이 동문 군사들과 함께 마차와 수레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문장이 마차에서 내린 베디샤데바를 보고는 달려와 굽신거렸다.

“부왕님을 뵈러 왔네. 저 수레들에는 부왕님께 드릴 선물과 아반띠국의 전통요리 재료와 진귀한 과일들이 실려 있다네.”

“여러 대의 수레를 끌고 오시다니 놀랍습니다.”

“베디샤 가네샤신 축제 때 부왕님께 결례를 해서 찾아왔다네.”

베디샤데바는 베디샤 뿐만 아니라 아반띠국 상인들이 흠모하는 수장이었다. 사람들은 베디샤 출신인 그를 장사의 신처럼 존경한다는 의미로 데바를 붙여 베디샤데바라고 불렀다.

“데바 수장님, 죄송합니다. 경비대장님께서 당분간 누구든 허락 없이 성문을 출입시키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부왕님을 뵙고 싶어서 왔는데도 성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베디샤데바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수문장이 쩔쩔맸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경비대장님께 달려가 곧 허락을 받아오겠습니다.”

베디샤데바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동문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차 안에 앉아 있던 베디샤데바의 외동딸 베디샤데비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데비야, 부왕님이 새로 오셨는데 웃자인 분위기가 좀 달라졌구나.”

수레를 검색하던 동문 군사들이 베디샤데비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앳된 베디샤데비의 맑고 그윽한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베디샤데비는 병약한 어머니가 한적한 베디샤나가르에서 요양 중이므로 아버지 베디샤데바와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베디샤에서 여신(女神), 즉 데비로 불리는 처녀는 오직 베디샤데바의 외동딸뿐이었다.

베디샤데바에게는 웃자인성 안에도 큰 저택이 하나 있었다. 저택은 웃자인에 들어오는 상인들을 위한 연회장이기도 했다. 산치 부근 베디샤나가르에 있는 농원이 딸린 저택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성민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붉은 벽돌건물이었다.

하인들이 수십 명인 베디샤나가르의 저택은 병약한 아내를 위한 집이기도 했다. 베디샤데바는 아내가 기도할 수 있도록 산치 언덕에 불교사원을 하나 지어주었는데, 데바가 후원하는 사문 10여 명이 사원을 지켰다.

베디샤데바는 아쇼까 진압군이 웃자인으로 갈 때 이동을 방해한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물론 베디샤 사람들이 아쇼까 진압군의 행군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날 베디샤데바 등이 주최한 가네샤신 축제와 겹쳐서 그랬을 뿐이었다.

경비대장을 찾아간 수문장이 말했다.

“대장님, 베디샤데바 수장님이 동문 밖에 계십니다.”

“용건이 뭔가?”

“부왕님께 드릴 선물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아쇼까에게 협조하여 왕궁 경비군사의 우두머리가 된 그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눈치가 빠르군. 부자들은 눈치가 빨라.”

“어떻게 할까요?”

“부왕님의 지시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잠시만 기다리게.”

경비대장이 왕궁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수문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비대장의 직권으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부왕 아쇼까의 허락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문장은 자신에게는 물론 평소에 동문 군사들을 회식시켜주는 등 호의적이었던 베디샤데바를 동문 밖에 세워두고 있다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경비대장의 보고를 받은 아쇼까는 흔쾌히 말했다.

“문을 열어 주시오. 선물은 핑계이고 다른 용건이 있을 것이오.”

“소장 생각도 그렇습니다. 데바 수장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인물이라면 아반띠국을 위해서 빨리 만나보고 싶소.”

아쇼까가 성문을 함부로 열어주지 말라고 지시한 이유는 숨은 반란군의 기습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반란수괴가 사라진 반란군은 괴멸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왕궁 경비대장이 의기양양하게 수문장을 불렀다.

“수문장, 부왕님께서 허락하셨네.”

“과연 신임이 두터우신 대장님이십니다.”

“데바 수장이 상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허락하셨네.”

경비대장은 자신이 아쇼까의 허락을 받아냈다고 공치사했다. 수문장은 아무래도 좋았다. 바로 동문으로 달려간 수문장은 군사들에게 지시했다.

“동문을 열고 데바 수장님 일행을 맞아들여라!”

 

마차와 수레들이 일제히 동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베디샤데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유난히 흰 치아가 붉은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났다. 마차가 방울소리를 울리며 달리자 성민들이 구경거리라도 된 양 모여들었다. 베디샤데바의 저택은 왕궁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살라나무 숲속에 있었다. 저택의 정문을 지키던 문지기와 하인들이 달려와 마차를 에워쌌다. 베디샤데바가 말했다.

“수레의 짐을 풀지 말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베디샤데비는 연회장을 지나 바로 2층 방으로 올라갔고, 아버지 베디샤데바는 걸어서 왕궁으로 갔다. 마침 경비대장이 궁문에 있다가 베디샤데바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데바 수장님, 오랜 만이오.”

“축하드리오. 대장님이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소.”

“축하받을 사람은 데바 수장님이오.”

“왜 그렇소?”

“부왕님께서 허락하신 첫 번째 손님이오. 부왕님은 데바 수장님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고 했소.”

“아, 영광이오. 저도 어서 뵙고 싶소.”

베디샤데바는 궁문 안에서 궁문 군사에게 형식적인 몸수색에 응한 뒤 경비대장을 따라서 부왕의 접견실로 들어섰다. 접견실은 여러 도시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치장하고 있었다. 커튼은 바라나시에서 생산하는 공작이 수놓아진 비단이었고, 탁자와 의자는 짬빠성에서 단단한 짬빠까나무로 만든 최고급품들이었고, 시바신상, 비슈누신상, 가네샤신상 등은 꼬삼비의 흰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이었다. 베디샤데바는 무역을 하러 여러 나라를 다녀봤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보았다. 경비대장과 베디샤데바가 잠시 접견실에 서 있는 동안 시녀들이 탁자 위에 짜이 세 잔을 놓고 갔다. 이윽고 아쇼까가 접견실에 들어와서 말했다.

“그대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소?”

“부왕이시여, 영광입니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저는 사끼야족 후손으로 베디샤에서 살고 있는 바이샤입니다. 지난 가네샤신 축제 때 부왕님 군사의 행군을 잠시 막은 결례를 범하여 용서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베디샤데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쇼까가 큰소리로 웃었다.

“미안해하지 마시오. 가네샤신이 나에게는 웃자인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지혜를 주었고, 그대에게는 나를 만날 수 있게끔 행운을 준 것이오.”

베디샤데바는 아쇼까의 인품에 안도했다. 경비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데바 수장이 진귀한 선물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부왕이시여, 먼 길을 오신 부왕님께 조그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가지고 왔사옵니다만.”

경비대장이 또 말했다.

“데바 수장은 선물에 이어 아반띠국 전통요리 재료와 과일을 수레 10대에 실어 가지고 왔습니다. 왕궁으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아쇼까가 짜이를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대는 웃자인 부왕인 나를 진심으로 환대하는 것 같소. 경비대장은 데바 수장이 가져온 아반띠국 전통음식 재료와 과일로 오늘 저녁 당장 연회를 열도록 하시오.”

베디샤데바는 아쇼까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했다. 전통요리 재료와 과일을 가지고 왔지만 연회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쇼까가 경비대장에게 눈짓으로 지시했다. 그러자 경비대장이 말했다.

“저녁에 연회를 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오. 수레에 가지고 온 것들을 왕궁으로 보내시오.”

“지금 바로 수레를 보내겠소.”

아쇼까가 먼저 일어나 접견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베디샤데바가 말했다.

“부왕이시여,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제 딸도 연회에 참석하면 안 되겠습니까? 제 딸은 아반띠국의 전통요리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시오. 아반띠국 전통요리 맛이 어떤지 기대하겠소.”

경비대장은 궁문까지 베디샤데바를 안내한 뒤 경비군사 두 명을 붙여주었다. 베디샤데바의 수레들을 왕궁까지 데리고 올 경비군사였다. 저택으로 돌아온 베디샤데바는 팔을 휘휘 저으며 하인들을 불러 지시했다.

“저 수레들을 모두 왕궁으로 끌고 가라. 경비군사를 따라가면 된다.”

“데바 수장님, 알겠습니다.”

베디샤데바가 저택 베란다에서 수레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 베디샤데비가 다가와 말했다.

“아버지, 부왕님은 어떤 분이세요?”

“나를 괴롭힐 분은 아닌 것 같더라.”

베디샤데바가 지난 왕들에게 크게 당한 억울한 사건만 해도 열 번이 넘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짬빠성의 고급가구들을 들여왔다고 빼앗긴 적도 있고, 웃자인의 보석들을 허락 없이 몰래 베디샤로 빼돌렸다고 압수당하기도 했으며, 바라나시의 비단을 수년간 밀무역했다는 무고로 감옥에 갇힌 때도 있었던 것이다. 붓다를 배출한 사끼야족의 바이샤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베디샤데바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었다.

“데비야, 오늘 저녁 연회에 너도 갈 것이니 준비하고 있거라.”

“저도요?”

“부왕님께 네가 아반띠국 전통요리를 잘한다고 자랑했다.”

“아버지를 위해 제가 전통요리를 만들어 부왕님께 올릴게요.”

“나를 생각하는 네 마음이 기특하구나.”

베디샤데비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녀들이 요리하는 부엌으로 가서 호흡을 가다듬어 보고, 2층 방으로 올라와서는 연회에 무슨 옷을 입을까 궁리했다. 푸른 비단 옷과 붉은 사리를 걸쳤다가 다른 빛깔의 옷을 입어보기도 했다. 요리할 때 입는 앞치마도 꺼내서 둘러보았다.<계속>

아쇼까대왕31회 예고 

아쇼까는 궁중연회를 연다. 여러 도시의 관리와 상인들이 참석한다. 상인수장 베디샤데바의 딸 베디샤데비는 집에서 만들어온 웃자인 전통음식을 아쇼까 식탁에 차린다. 연회장에서 베디샤데비는 처음으로 아쇼까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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