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8월 12일 지정예고
일장기에 태극·사괘 형상화
함께 발견된 신문류도 ‘중요’

보물로 지정예고된 서울 진관사 태극기
보물로 지정예고된 서울 진관사 태극기

광복 제76주년을 맞아 태극기와 광복군 유물 등 항일독립유산들이 대거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등록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서울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예고했다812일 밝혔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20095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당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됐다. 신문류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 <신대한(新大韓)> <독립신문> 5종이다. 이들 신문들이 191966일부터 12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스님을 주목하고 있다. 백초월 스님은 3.1만세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인물이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현재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태극기는 1919년에 제작된 실물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에도 태극기와 태극문양 및 태극기 관련 기사가 실려 있어 더욱 의의가 있다. 특히, 태극과 4괘가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나 만물의 생성·변화·발전하는 모습을 의미한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힘과 사랑을 토대로 자유와 평등을 온 세상에 실현해나가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근대 태극기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문화재청은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형태상으로도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부분과 4괘를 검정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진관사 태극기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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