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전쟁 영웅 지옥같은 트라우마 경험
삶과 고통의 실증적인 깨달음 전해
저자, 틱낫한 스님 만나 인생 변화
수행자로 변화된 생생한 과정 기록

클로드 안쉰 토머스 지음 / 황선효 번역 / 모네의정원 펴냄 / 1만4천원
클로드 안쉰 토머스 지음 / 황선효 번역 / 모네의정원 펴냄 / 1만4천원

나는 숨을 내쉬었고, 내 여신의 환영 인사를
받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내게 침을 뱉었다.

베트남 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의 통일 과정서 미국과 벌인 전쟁이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이다.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벌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과 구분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하며, ‘월남전(越南戰)’이라고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된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초기에는 북베트남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 성격을 띠었으나, 1964년 8월 7일 미국이 통킹 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 태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중국 등이 참전한 국제적인 전쟁으로 비화되었으며, 미국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으로 군사개입의 범위를 넓히면서 전장도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 전쟁은 한국과 미국 간에 관심사가 컸던 전쟁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반전 운동이 벌어졌으며 영화 <플래툰> 같은 문제작도 나왔었다. 우리나라 또한 남의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벌어졌고, 지금도 앓고 있는 참전용사들의 고엽병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월남전은 누군가가 필히 다룰 만한 소재이다. 문학인들은 그 소재를 다뤄 활자 매체로 발표했다. 이처럼 전쟁은 인간에게 많은 폐해도 남겼지만, 동시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깨달음도 전해 주었다.

이번에 모네의정원서 펴낸 <조금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은 이런 맥락과 상통한다. 한마디로 전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한 전쟁영웅이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얻어낸 삶과 고통에 대한 실증적 깨달음을 전하는 책이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작은 마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곳의 어른들은 전쟁서 입은 상처를 부인하고 환상으로 짙게 채색시킨 무용담을 마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 그곳서 자란 열일곱 살 어린 나이의 주인공(작가)은 그런 어른들의 영향으로 베트남전에 자원입대한다. 그것이 애국심이라 믿었던 어린 주인공은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며 불안과 후회에 몸서리치지만, 자신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총을 쏘는 살인 병기로 변신한 채 수많은 훈장을 받은 뒤 전역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환영과 축하 대신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과 수모, 그리고 지옥 같은 전쟁의 트라우마였다.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으며 전쟁 영웅이 된 그는 결국 프랑스 플럼빌리지로 가서 틱닛한 스님을 만나며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플럼빌리지의 베트남 스님들을 믿지 못해 잠을 자는 텐트 주변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고 지냈던 그를 무엇이 평화의 수행자로 변화시켰는지 이 책은 진한 감동과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읽는 이의 가슴에 커다란 느낌표를 찍는다.

▲저자 클로드 안쉰 토머스는?
▲저자 클로드 안쉰 토머스는?

18세에 베트남에 파견되어 27개 항공 훈장과 공군수훈십자 훈장과 명예 전상장을 포함한 많은 상과 훈장을 받았다. 지금 토머스는 조동종 선승이자 비영리 기구인 ‘Zaltho Foundation’의 창립자로서, 미국과 유럽서 평화 와 비폭력에 대한 강연과 순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풀 한 포기 다치지 않기를>등이 있다.  

주인공은 17세 때 미육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복무를 자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했던 공로로 훈장을 달고 명예롭게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그런 살육을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삶의 파편들을 이어 맞추다가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진 자신의 마음을 발견했을 때, 이 세상에 정당화될 수 있는 살인이란 없으며, 올바른 폭력과 그릇된 폭력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고, 전쟁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쟁이란 단지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비롯되어 나오는 행위일 뿐이라는 사실까지.

주인공이 이런 이해의 경지에 도달하고,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베트남 참전과 노숙자 생활, 교도소서 명상 가르치는 일, 보스니아와 아프가니스탄, 아우슈비츠와 캄보디아에 이르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상처 입은 세계 각지를 순례하는 길고 힘든 여정을 자청했다.

이 책에는 그러한 노정의 생생한 기록들과 함께, 주인공이 공부했던 사원뿐만 아니라 전장의 참호 속에서, 길거리서, 또는 집 안에서 절실히 깨친 고통의 실상에 대한 부처님의 통찰을 나누려는 주인공의 진실한 노력이 담겨 있다. 우리는 누구나 좋고, 즐겁고, 옳고, 영원하고, 기쁘고, 조화롭고, 만족스럽고, 손쉬운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반대로 삶은 좌절과 불만족, 불완전과 슬픔을 안겨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통이며, 이 고통과 화해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폭력을 종식시키고 더 평화롭게 세상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주인공은 이 책이 폭력에 시달리는 중에도 뭔가 다른 것, 곧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책이 매일 치르는 자신만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진실로 평화롭게 살기 위한 순례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외친다. “세상은 우리에게 고통은 적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불쾌하고 실망스럽고 힘든 것은 거부하라고 끊임없이 주입받는다”며 “하지만 고통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다. 반대편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진정으로 알고 느낄 수 있는 것도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다”라고 강조한다.

김재진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누구나 고통은 피하려 하고, 기쁨은 즐기려 한다. 기쁨이 우군이라면 고통은 적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고통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전쟁의 상흔을 통해 삶의 막장서 방황하던 저자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지옥의 문을 벗어나는지 한 페이지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느낀다. 좋은 책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탄성을 토하며 읽고 난 뒤의 여운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책 말미에는 ‘명상수행의 시작’이란 제목으로 저자가 삶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명상법들을 소개해 놓았다. 저자는 다양한 장소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노하우를 간략하게 정리해 소개했다. 가령 ‘앉아서 하는 명상’ ‘걷기 명상’ ‘일 명상’ ‘식사 명상’ ‘주의 깊은 경청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말하기’ 등이다.

책 속의 밑줄 긋기

“치유란 고통과 아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치유란 고통과 아픔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그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챙김 속에서 현재에 사는 것이다.”

“두려움과 접촉할 때마다 나는 먼저 두려움과 열린 관계를 맺고, 두려움에 집착하지도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아야 하며, 그 다음은 두려움 이면에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건 돌을 뒤집는 것과도 같다. 나는 죽는날까지 계속 돌을 뒤집으며, 항상 더 깊이 보아야 한다.”

“나 자신의 삶에 더 깊이 참여하는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고통을 거부하는 몸짓을 멈춘다. 이것이 바로 치유이고 탈바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챙김 수행은 내가 판단없이 내 삶의 본모습을 더 올바로 의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