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평화, 스크린에 담다

종교·이념 넘는 ‘평화 메신저’
탈레반의 압제속 아프간 담아

막내딸도 관련 극영화 제작
바미안 석불 파괴에 내재된
폭력 계승의 근본원인 비판

이란 대표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1957~)의 모습. 그는 영화를 통해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makhmalbaf.com
이란 대표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1957~)의 모습. 그는 영화를 통해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makhmalbaf.com

카메라 든 이슬람문화권의 ‘보살’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1957~)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1940~2016)와 더불어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는 특히 영화를 통해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그 실천력으로 인해, ‘살아있는 경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존재이다. 

이란 영화는 크게 보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적인 계보 속에서 꾸밈없는 현실을 그리는 특유한 시적 미학으로 정평이 나 있고,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는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 영화제에 여러 차례 초청된 세계적 반열의 시네아스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교류하며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초기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몸담고 아시아영화의 교류를 위해 헌신하다 영화제 현장에서 아름다운 생을 마쳤던 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영화제 20년 결산서 〈영화의 바다 속으로〉를 보면, 짧지 않은 기간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은 바로 마흐말바프였다.

그는 책에서 마흐말바프를 수차례에 걸쳐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하고 있다. 20년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얼마나 뛰어난 감독과 배우들이 부산을 찾았을 것이고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을지 짐작이 가는 일인데, 그 중 왜 마흐말바프를 꼽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불교와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길래, 그를 일컬어 ‘살아있는 부처’라는 비유를 쓸 정도일까? 마흐말바프에게는 인격을 갖춘 예술가들에게서 보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겸손함 정도의 미덕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심(下心)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를 귀히 여기는 마음과 보살행이 있기 때문 아닐까.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다. 

한 예로, 〈칸다하르(Kandahar)〉(2001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를 찍을 때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촬영을 하러 갔다가 굶어 죽어가는 난민들을 목도하고 고심 끝에 어렵사리 구한 제작비 모두를 그들에게 희사한 후 돌아갔다 다시 제작비를 구해 촬영을 재개한 일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사무실 주위의 굶주린 개에게 먹이를 주다 상처를 입어 광견병에 걸렸는데, 그다음 날에 다시 나타난 같은 개를 가엽게 여겨 장갑을 끼고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일화도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성치 않은 몸으로, 포탄과 지뢰에 팔다리를 잃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남포동 한가운데에서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는, 이슬람권의 가부장적 권위를 스스로 타파하고 아내와 자녀들과의 평등하고 열린 관계를 만들었고 가내 영화학교를 열어 두 딸과 아들을 모두 훌륭하게 교육했다. 본인뿐 아니라 그의 아내(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를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어떤 예술가는 작품에 의해서 보기 드문 독창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고, 어떤 예술가는 삶 자체가 감동이고 ‘예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는 타 예술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나, 마흐말바프는 영화인의 진정한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바미안 석상, 부끄러워 스스로 무너졌다       
마흐말바프는 오늘날 지구상의 최대 문제 지역 중 하나라 할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영화를 두 차례 찍었다. 1987년에 〈자전거 선수(The Cyclist)〉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민자의 문제를 일찌감치 조명했고, 2001년 〈칸다하르〉(이란·프랑스 제작)라는 작품을 통해 이 지역의 억압되고 피폐한 삶, 폭력의 온상이 되는 실상을 알리고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2001년은 뉴욕 9.11 참사, 그리고 그 몇 달 전인 3월 1일 세계 최대의 바미안(Bmiyn) 석상이 일거에 폭파된 인류 역사상 뼈아픈 해이다. 둘 다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있다. ‘뉴욕 테러와 같은 인명 경시와 문화적·종교적 테러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일까’라는 마흐말바프의 문제의식을 공유해본다. 그 씨앗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모두가 외면한 사이에 뿌리 깊게 자라고 있었을 것이나, 모두의 무관심 혹은 무기력 속에 방치돼 있다가 걷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됐을 때야 뒤늦게 주목받게 된 것이 아닐까. 

문제의 이 지역, 여기에 마지막 평화의 보루처럼 서 있던 바미안 석불의 폭파는 이후에 올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2001년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의 ‘우상’ 파괴 포고령에 따라 흔적도 없이 이 불상이 사라졌을 때야 비로소, 전 세계 사람들은 그 무자비함에 공분하게 된다. 이 시기, 마흐말바프는 오래 준비해온 〈칸다하르(Kandahar)〉(이란·프랑스, 2001)를 내놓았다. 이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을 빌려 탈레반의 압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참상을 조명한 작품이다. 또한 “석불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Buddha Was Not Demolished In Afghanistan; It Collapsed Out Of Shame)”라는 글을 써서 석불 파괴의 본질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고, 자칫 세계 최대의 석상이라는 문화적 아이콘 뒤로 잊히고 방치될 수 있는 주민들에 대한 애민(哀愍)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불교의 본령은 무엇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보호하고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석불이 ‘부끄러워’ 스스로 무너졌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수치는 우리 모두의 것이고, 귀중한 불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리라.
아프가니스탄은 본시 불교문화와 깊은 관계를 갖는 곳이다. 특히 바미안 강 북쪽 연안은 두꺼운 암벽을 파서 조성된 높이가 각 38m, 55m에 이르는 두 개의 사암 마애불입상과 숱한 불교사원으로 유명한데, 간다라 미술을 기조로 한 유적이다. 이곳은 역사상 〈대당서역기〉에 범연라국(梵衍那國)으로 기록돼 있고,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자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 동서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한국에서는 서기 400년 경에 법현 스님이, 630년에는 현장 법사가, 727년에는 신라 혜초 스님이 참배하고 기록을 남긴 바 있다. 8세기부터 이슬람이 침략하기 시작하여 많은 불상이 바그다드로 옮겨졌는데, 1221년 칭기즈칸군의 파괴로 폐허가 되었고 주민은 당시 모두 학살당했다. 혜초 스님이 “왕을 비롯해 수령이나 백성들이 삼보(佛·法·僧)를 크게 공경한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이곳은 평화로운 불국토였다.  

그러나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상의 모든 폭력과 굶주림, 공포를 대변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에 마흐말바프는 국경과 종교를 넘어 그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이들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영화와 글을 통해 자비심을 실행한다. 그는 이란 국내에서도 독재자의 폭정 문제를 드러내 정치적 탄압을 겪고 폭탄 테러의 위협까지 받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는다. 〈칸다하르〉에서 그는 압제 속에서 죽어가는 아프간 사람들에게로 카메라를 들고 용감하게 다가간다. 

이미지 금지된 나라를 끌어안다
마흐말바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모든 이미지가 금기이다. 한 장의 회화도 사진도 금지돼 있고, 물론 극장도 없다. 기자들도 그 사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절대 찍을 수 없다. 이렇듯 이미지가 금지된 땅에서 촬영된 영화가 〈칸다하르〉이다. 마흐말바프의 영화는 그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실의 시급한 반영이 더 중요하다. 영화를 만들기 전, 그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책과 많은 자료를 보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치밀하게 들여다봤고 그곳으로 목숨을 건 잠행을 했고, 그 나라 사람들이 처한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석불 그 자체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는 인간적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은 그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막내딸 하나 마흐말바프는 〈학교 가는 길〉(이란·프랑스, 2007)이라는 영화를 통해 바미안 지역의 실상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아버지가 〈칸다하르〉를 찍을 때 따라갔었다. 아버지는 식당에 들어가서는 며칠씩 굶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먹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셨다.”(정한석 인터뷰, 〈씨네 21〉, 2003년 10월31일) 

아버지 모흐센에 대한 기억과 함께 만들어진 하나의 〈학교 가는 길〉은 한국에서도 개봉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꿈같은 학교 교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무구한 6살 소녀 박타이를 만난다. 그리고 이 소녀와 함께 흔적만 남은 바미안 석상 발치에서 불상의 잔해물을 들고 전쟁놀이에 열중하는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성스러운 종교의 유적들이 오히려 가장 큰 분쟁의 소지가 되고 끝없이 악순환하는 복수의 학습장으로 화한 현실 앞에 직면한 우리에게,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는 많은 성찰을 하게 한다. 

폭력의 온상이자 ‘학교’가 돼버린 고대의 성지 아프가니스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고통받는 주민들, 변변한 학교도 없이 벗어날 길 없는 비참함과 원한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실상은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를 외면하는 수치심을 알게 하고 자각을 촉구하기 위해, 어쩌면 거대한 불상은 우리 앞에 마흐말바프의 표현처럼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2021년 3월 석불은 물리적으로 복구됐으나, 그 정신적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불기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고 바미안 석불이 무너진 지 20주기가 된 시점에서, 마흐말바프라는 이란 감독의 현실 참여와 보살행을 돌아보았다. 그의 평화와 자비를 향한 영화적 여정을 잠시나마 함께해본 이 시간이 대승 불교의 실천적 정신으로 회귀하게 하는 하나의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