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코끼리경주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빠딸리뿌뜨라 성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강가강을 건너갔다. 매년 코끼리경주대회가 열리는 너른 들판으로 모여들었다. 경주에 나설 코끼리들은 어제 이미 강가강 들판으로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코끼리경주대회는 빠딸리뿌뜨라 성민이라면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왕족이나 귀족들 중에서 날랜 젊은이들이 코끼리를 탔다. 수드라처럼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코끼리를 타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예선전에서 탈락했다.

빈두사라는 강가강을 건너기 전에 강변 임시군막에서 대신들과 차담을 했다. 칼라따까와 라다굽따도 동석했다. 소젖과 사탕수수 즙으로 만든 따뜻한 짜이는 빈두사라를 한껏 흡족하게 했다. 칼라따까가 보고했다.

“대왕이시여, 왕비님들은 방금 전에 강을 건너가셨사옵니다.”

“왕자들은?”

“경기에 참가하는 수시마 왕자님은 진즉 건너가 지금쯤 코끼리와 함께 계실 것이옵니다.”

라다굽따도 말했다.

“성민 중에 참가하는 사람은 예선전에서 이미 정해졌사옵니다.”

“몇 명을 선발했소?”

“50명이 겨뤘는데, 그중에서 5명을 뽑았사옵니다. 5명 모두 코끼리를 타고 장사하는 바이샤 젊은이들이옵니다.”

라다굽따는 경기에 임할 선수를 이미 선발했다고 보고했다.

“수시마 혼자만 참가하는가요?”

“예, 그렇사옵니다.”

“아쇼까는 왜 참가하지 않소?”

“참가나이를 16세 이상으로 제한했기 때문이옵니다.”

“아쇼까는 몇 살인가요?”

“아쇼까 왕자님은 15세이옵니다.”

빈두사라는 조숙하고 건장한 아쇼까가 아직도 열다섯 살이란 보고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작은 키지만 바위처럼 단단한 체격으로만 보자면 스무 살 안팎의 청년 같았던 것이다.

 

이윽고 빈두사라와 대신들이 2층 배에 올라탔다. 빈두사라는 대신들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고, 시중드는 하인들은 어둑한 1층에 남았다. 1층은 노잡이 격군들이 배 좌우로 9명씩 서서 노를 잡고 있었다. 선장이 ‘출발!’ 하고 외치자 격군들이 일제히 노를 저었다. 절지동물의 발처럼 생긴 노들이 배 밖으로 나와 강물을 세차게 밀어내자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층은 1층과 달리 덮개만 달려 있어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훤했다. 게다가 강바람까지 불어와 시원했다. 궁궐 안에만 있던 빈두사라는 아침 햇살과 강바람에 몸을 맡겼다. 마음이 들떠 앞으로는 코끼리경주대회를 한 해에 두 번을 치를까 하고 생각했다.

한편, 선수들은 경기장에 미리 도착해서 코끼리를 타고 경주연습을 했다. 왕자 대표로 참가하는 수시마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코끼리를 타고 달리곤 했다. 왕자들과 겨뤄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이복동생인 왕자들이 큰형님이라고 예우해서 추대했으므로 더욱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쇼까는 수시마의 코끼리를 어루만지며 응원했다.

“형님, 이 녀석은 전투코끼리지요?”

“그래, 경호대장이 골라 준 거야.”

“보나마나 1등이네요. 성민 대표들이 탄 코끼리는 장사꾼이 타는 느린 녀석들이니까요.”

“얕보다가는 큰 코 다쳐. 장사꾼들 타는 코끼리는 사람 같이 영리하게 움직이거든.”

“1등 하면 부왕(父王)께서 좋아하실 겁니다.”

“근데 너는 왜 참가하지 않는 거야?”

“16살부터니까 자격이 안 돼서요. 내년에는 꼭 참가해서 형님에 이어 2등 할게요.”

수시마가 말했다.

“왕자들 중에서 네가 단연 뛰어난 실력이라고 경호대장이 말했어. 그러니까 내년에는 꼭 참가해서 부왕을 기쁘게 해줘.”

“형님께서 내년에도 참가해서 1등을 하셔야죠.”

“아니야, 나는 어쩌면 탁실라로 갈지 몰라.”

“왜요?”

“항상 그곳이 문제야. 소요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큰 반란으로 이어지면 큰일이야. 아마도 부왕께서 나를 그곳으로 보낼 것 같아. 왕자는 반란 같은 것을 진압할 줄 아는 통솔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부왕께서 형님을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님을 위한 배려네요.”

“맞아. 그러니 거부할 수 없지. 가기 싫어도 내색을 해서는 안 되지.”

아쇼까는 수시마가 부러웠다. 부왕 빈두사라는 왠지 수시마를 자신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아 속으로 질투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복형 수시마는 아쇼까에게 늘 너그러웠다. 어린 아쇼까가 부탁하는 것은 형으로서 다 들어주었다. 아쇼까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 다르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어머니가 궁중이발소에서 일할 때였다. 어머니에게 이발을 한 수시마 왕자가 여기 저기 어머니의 실력을 자랑하곤 하여 아버지 빈두사라의 이발까지 하게 된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다르마는 여전히 궁중이발사로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수시마는 아쇼까보다 키도 크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만큼 용모가 아름다웠다. 다만, 행동이 우유부단한 데다 과보호 속에 자란 탓에 눈치가 없고 대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등 예의가 부족한 것이 단점이었다.

갑자기 나팔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경기를 알리는 신호였다. 빈두사라는 일산 아래서 경기장을 주시했다. 경기 출발선에는 코끼리 여섯 마리가 나와 있었다. 그런데 선수는 수시마를 비롯하여 다섯 명뿐이었다. 한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칼을 허리에 찬 경호대장이 빈두사라 앞까지 헐레벌떡 뛰어왔다. 빈두사라가 일산 아래서 일어나 물었다.

“무언가?”

“참가 선수 중 한 명이 기권했사옵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옵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소장 생각으로는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했으므로 조금만 기다렸다가 시작해도 좋을 것 같사옵니다.”

빈두사라가 눈을 매섭게 뜨며 말했다.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어찌 경기를 늦춘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섯 명으로 경기를 치르겠사옵니다.”

“코끼리가 여섯 마리이니 그럴 수는 없지.”

빈두사라가 좌우를 살펴보더니 눈길을 한 곳에 멈추었다. 그곳에는 아쇼까가 다르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쇼까도 빈두사라와 눈이 마주쳤다. 빈두사라가 라다굽따에게 말했다.

“아쇼까를 출전시키시오.”

“대왕이시여, 아쇼까 왕자님은 참가자격이 안 되옵니다.”

“어쩔 수 없소. 쓰러진 선수 한 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소.”

“그건 그렇사옵니다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백성들을 무시하는 것이오. 백성들을 위해서도 지금 경기를 시작해야 되오.”

라다굽따가 급히 아쇼까에게 달려가 빈두사라의 말을 전했다. 아쇼까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경기장으로 나갔다. 경기장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아쇼까는 장사꾼 바이샤가 길들인 젊은 코끼리 옆에 섰다. 경기장 끝머리 깃발들이 선 곳에서 흙바람이 불었다. 흙바람은 선수들의 전의를 솟구치게 했다. 아쇼까도 흙바람을 보는 순간 흥분했다. 코끼리가 달리면 흙바람이 이는데 벌써부터 경기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깃발들이 있는 곳까지 코끼리를 타고 다섯 번을 돌아야 끝나는 경주였다. 라다굽따가 빈두사라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행이옵니다. 아쇼까 왕자님이 나서주었사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시오.”

나팔 소리가 또 다시 울려 퍼졌다.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자,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출발선에서 튀어나갔다. 처음에는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달렸다. 옆에 코끼리들이 지치는 것을 보아가며 속도를 내기 위해서였다. 한 코끼리가 흥분해서 속도를 냈지만 다섯 마리는 개의치 않았다. 칼라따까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걱정이 하나 있사옵니다.”

“말해 보시오.”

“아쇼까 왕자님은 참가자격이 없는데 만약에 우승을 한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수시마가 탄 코끼리는 용감한 전투용이오. 그럴 리는 없을 것이오.”

“전투코끼리부대 대장 말을 들어보면 아쇼까 왕자님은 출중하다고 하옵니다. 만약에 아쇼까 왕자님이 1등을 하고 수시마 왕자님이 2등을 한다면 그것도 걱정이옵니다.”

“아쇼까는 자격이 없으니 당연히 수시마에게 우승이 돌아가야 될 것이오.”

빈두사라는 별 고민 없이 말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국가적인 공식경기에서 부정하게 상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빈두사라는 수시마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곧 수시마를 탁실라 부왕(副王)으로 보내 그곳의 잦은 소요를 뿌리 뽑을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빈두사라의 짐작과 달리 코끼리들이 반환점까지 네 번을 돌고 나서는 하나 둘 쳐졌다. 단연 전투코끼리를 탄 수시마가 앞섰다. 그 뒤를 아쇼까가 달렸다. 그러나 다섯 바퀴를 돈 뒤에는 수시마가 탄 코끼리가 지친 탓인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금세 아쇼까가 탄 코끼리가 수시마가 탄 코끼리 옆까지 쫓아왔다.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이 아쇼까를 응원했다. 아쇼까가 탄 코끼리는 수시마의 것보다 작고 줄곧 2등으로 달렸기 때문에 약자를 응원하는 셈이었다. 아쇼까가 흙먼지 속에서 수시마에게 소리쳤다.

“형님이 1등을 하셔야 돼요.”

아쇼까는 발로 코끼리 배를 차면서 속도를 늦추었다.

“형님, 제가 탄 코끼리도 지쳤나 봐요!”

“너나 나나 마찬가지군.”

수시마가 탄 코끼리가 다시 앞서 달렸다. 다시 역전이 되자,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빈두사라와 대신들, 다르마를 비롯한 왕비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응원했다. 결국 수시마가 1등으로, 아쇼까는 2등으로 들어왔다. 장사꾼 출신들의 코끼리도 속속 출발선으로 겅중겅중 돌아왔다.

시상식은 축제 분위기였다. 빈두사라는 경기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했다. 궁중악대가 온갖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수시마는 1등상으로 눈부신 황금가면을 받았다.

시상식이 끝난 뒤였다. 수시마가 아쇼까를 강가강 모래밭으로 불러냈다. 모래밭에는 수행자들 움막이 한두 군데 있을 뿐 경기장과 달리 스산하고 한적했다. 수시마가 말했다.

“아쇼까야, 왜 나에게 양보했니?”

“형님 실력이면 1등이 당연해요. 한 순간 저와 나란히 달린 것은 코끼리 때문이죠.”

“네가 1등을 했어야 지금 내 맘이 더 편할 거야.”

“아니에요. 형님은 1등 할 자격이 충분해요. 그러니 상관 마셔요.”

“난 탁실라로 곧 떠날 것이다. 다녀온 뒤에는 너를 더 보살펴 주마.”

“고마워요. 형님.”

수시마는 이복동생 아쇼까를 껴안았다. 땀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찔렀다. 강가강 너머로 망고처럼 노란 석양이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래밭에 앉아서 지는 석양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이 두 왕자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계속>

▶ 16회 예고

탁실라 부근에 도착한 수시마는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수괴를 처단하기 위해 생포작전을 편다. 다행히 반란수괴에게 죽은 탁실라 왕의 동생들이 협력하여 생포작전을 성공한다. 그리하여 수시마는 탁실라에 무혈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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