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함 극치… 인드라망 담아내다
圖上 부처님 납의 문양 따라가면
5cm 안에 거대한 우주 펼쳐진다
금니 표현에 많은 양 금가루 사용
귀족불교 절정 보인 화려한 성보
‘자미금색’ 가장 고귀한 부처님 색
파도치는 기쁨, 법계의 풍경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며 푸른 연꽃 위에 아미타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낸다.(그림1) 그 몸체에서는 상서로운 빛이 발산된다. 다가가 세부 문양을 들여다보니, 700년이 넘도록, 금빛 반짝이는 문양은 여전히 너무나도 생생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고려불화의 비밀은 ‘디테일’에 있다. 그 세부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찬란하고 화려한 마이크로 세계가 펼쳐진다.
아미타부처님이 두른 붉은 납의(衲衣, 가사 또는 대의)에는 동그란 원 문양이 가득하다. 원의 지름은 약 5cm. 이렇게 작은 원 안에 소우주가 펼쳐진다.(그림2) 불교미술에서 부처와 보살의 옷 문양은 반드시 ‘원 문양’이다. 세모나 네모 문양은 없다. 아주 가끔 다이아몬드 형태의 ‘육각(六角) 문양’을 볼 수 있다. 옷 문양이 원 문양인 이유는 깨달음의 세계는 크고 작은 원상(圓相, 또는 一圓相)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둥근 여의주’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육각 문양의 경우, 이를 귀갑문(또는 구갑문, 거북이 등짝 문양)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은 ‘물의 입자’ 모양으로, 생명의 기본 단위가 되는 문양이다.
아미타부처님의 옷 문양을 따라 그려보면, 필선이 끊기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회전하는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돌다가, 꽃과 잎사귀의 형상을 만들고, 거기서 다시 회전하는 문양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뻗어 나가는 확장성은 우리를 거대한 우주 공간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기억하시길. 우리를 우주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이 문양은 기껏해야 5센티미터 지름의 작은 원이라는 것을. 피어나는 에너지는 끊기는 곳 하나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환희로 가득하다. ‘유기성과 법열(法悅, 법의 희열)’, 더 쉬운 말로 ‘어우러짐과 기쁨’, 문양은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불교미술이 보여주고 있는 ‘하나로 파도치는 충만한 기쁨’이라는 특징은, 깨달음 세계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철학자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에 인용된 R.M.버크(캐나다 정신의학자)의 증언을 보도록 하자.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가 스스로를 재통합하고 있었다. 우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으로서 질서에서 질서로 이어져 가며 재결합하였다. 아무런 단절 없이, 단 하나의 빠진 고리도 없이, 모든 것들이 적시 적소에서 질서정연하게 이어져 있음을 보았을 때의 그 엄청난 기쁨! 모든 세계, 모든 시스템이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어우러져 있었다.”
‘제망찰해’의 모습
인드라망(제망, 帝網)의 세상. 모두가 그물처럼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존재하는 장엄한 생명의 모습. 불교미술의 추상적인 문양들은 ‘제망찰해(帝網刹海)’라는 진리의 현상을 그대로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서로 의존하며 찬란한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풍경이 망망대해처럼 파도치고 있다.
이것은 저 거대한 은하계에도, 내 몸에도, 또 한 톨의 모래알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기(緣起)’와 ‘무상(無常)’이라는 원리였다. 덩어리져 보이는 이면에 공통으로 흐르는 진짜 풍경. 만물이 그 실체를 드러낸 순간, 연기하기 세상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는 번뇌니 망상이니 하는 하루살이 허깨비들이 개입할 여지가 아예 없겠다.
유려한 금니, 영롱한 색감
보시다시피 고려불화에는 다량의 금니(金泥)가 쓰였다. 금가루는 금속성이다. 금속 가루에 민어 부레에서 추출한 점성 짙은 액체로 만든 아교를 섞어서 만든 안료다. 그러므로 수묵화의 묵선(墨線)처럼, 물 흐르듯 긴 선(線)을 한 번에 그릴 수는 없다.
금니를 평생 다루어보신 정향자 원로 사경작가는 “금니 선을 고려불화에서처럼 가늘고 길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금니 안료는 특정 온도를 유지해 주지 않으면 금방 굳어버린다. 그렇기에 소량을 조금씩 만들어가며 온도 유지를 해주어야 하고, 선도 길게 긋지 못해 아주 짧은 단선을 이어 긋기 식으로 그어 나가야 한다. 금니는 한 번 긋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차례 올려 칠해주어야 광채가 나므로, 여러 번 끈기를 가지고 세필 작업을 해야 한다.
중국 원나라 학자 탕후가 지적하였듯이 “유려함이 극에 달했다”는 표현은 고려불화의 기법 상이 핵심을 매우 잘 포착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가늘고 긴 선을 금니로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관건은 ‘유려함’이다. 부드러움이다. 자칫 딱딱하게 표현되기 쉬운 금니 선을, 고려불화에서는 너무나도 일필휘지로 물 흐르듯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금니 선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가능한가. 고려불화에 쓰인 어머 어마한 양의 금가루. 그 양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사용한 기법 또한 풀 수 없는 고려불화의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또 하나의 고려불화의 불가사의는 채도가 매우 높은 안료의 사용이다. 채도란, 색깔의 투명한 정도를 말한다. ‘채도가 높다’라는 것은 투명도가 높다는 뜻으로 ‘색이 맑다’라는 의미이다. ‘채도가 낮다’라는 것은 ‘색이 탁하다’라는 것이다. 옷 바탕색은 자색 빛이 도는 붉은 색이다. 매우 고급스러운 색감이다.
고려불화의 색감을 당시 중국 원나라 불화 또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화와 비교해 보면, 색감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원나라 불화의 경우는 탁한 주홍색이고 고려불화는 자색 빛 풍부한 붉은 색이다. 파란색도 깊은 쪽빛이 도는 파랑이다. 그러므로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의 색깔은 우리나라 불화에서는 금물이다. 아직도 수수께끼인 고려불화의 채도 높은 영롱한 색감! 안료를 비롯해 고려불화에 대해 연구되어야 할 분야는 아직 많다.
귀족불교의 정점, 찬란한 유산
남송은 무역의 성지로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심지어 아라비아 중동의 물건까지 수입되었던 무역 중심지였다. 여기에서 최고 최상의 물품을 사가는 상인이 바로 ‘고려 상인’이었다. 고려불화, 하나만 보더라도 고려시대 귀족불교가 얼마나 호사스런 불사를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송나라 서긍이 고려의 수도 개경에 왔다가 비단 휘장이 온 경내를 뒤덮고 있는 호화 풍경을 보고 기록한 내용이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적혀있다. 또 고려청자 유약의 과도한 수입까지 가세하여 결국 국고는 텅텅 비게 되고 나라는 망하게 된다. 불교도 망하게 된다. 지방의 유생들이 청렴 정권을 내세우며 급기야 숭유억불 시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나라가 망하도록 최고급의 재료를 고수했던 작품을 목전에 보고 있다.(그림2) 세부를 보면, 눈이 시원해지는 청량감과 금빛 화려한 잔상이 가슴이 남는다. 천년 전통의 끝자락, 귀족불교의 마지막 절정을 찍은 찬란한 유산이다.
부처님의 색, ‘자마금색’이란
아미타부처님의 몸체에는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등 정토3부경의 내용이 한 몸에 담겨있다. 관무량수경의 하이라이트인 아미타부처님의 실제 모습을 관하는 ‘진신관(眞身觀)’을 보면, 몸체에서는 찬란한 빛이 나오고 무수한 화불(化佛)이 뿜어져 나온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아미타불의 몸과 빛을 관(觀)하라. 몸은 백천만 억 야마천을 장식한 염부단금색(閻浮檀金色, 또는 紫磨金色)과 같이 빛난다. 그리고 키는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니라”라고 기술되었다.
조형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부처님 육신의 색깔은 반드시 황금색이다. 여타 경전에서도 부처님 몸체를 표현할 때 ‘염부단금색’ 또는 ‘자마금색’에 비유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여기서 ‘부처님의 몸은 어째서 황금색인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마금 또는 자마황금은 염부단금과 같은 말이다.
자마금은 신비로운 자색(紫色), 즉 보라빛이 도는 지구상의 가장 고귀한 황금으로, 인도 염부수 숲속을 흐르는 강바닥에서 채취되는 사금이다. 총 9등급으로 나뉘는 황금 중 최상 품질의 금을 지칭한다. 완전한 깨달음의 상징인 제7차크라(백회 차크라)가 열릴 때, 그 색은 보라색·금색·흰색인데, 이것을 부처님의 색깔인 ‘자마금색’으로 표현한다. 사실, ‘깨달음의 빛’을 정확하게 나타내거나 비유할 만한 것이 이 지상에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편 삼아 표현하자면, 자마금색이 되는데 이는 지상 최고의 고귀한 색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