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미래 설계의 ‘지남철’
동국대 불교사 전공 드물어
불교학계, 역사소홀 반성을 

일반史서 불교는 문화 치부
근대적 역사서술 한정 결과

삼국유사, 삼국사기 보완아닌
정면으로 논박한 역사 기록서
‘불교적 역사 쓰기’는 되살려야

과거는 단순히 흘러가버렸기에 잊어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에,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지남철이 되는 것이 과거,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계 그리고 불교학계는 오랫동안 이 과거를 되새기고 반성하는 데 소홀하였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한국 불교학 연구를 대표하는 종립 동국대학교에 불교사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드문 것은 우리 불교계와 불교학계의 빈약한 역사인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도불교사나 중국불교사 전공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불교사에 이르면 더욱 그러하다. 

역사학과에서 불교사를 전공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사에서 불교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불교학에서 불교사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동일한 불교사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관점이 다르면 역사 인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자의 시각이 서로 비교되고 교차되지 않으면 올바른 역사인식이 힘든 까닭이다.

한국불교의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많은 왜곡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왜곡은 제대로 된 불교사 읽기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국가종교처럼 작동하던 시대의 불교는 문화사로만 기술된다. 숭유억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임진·병자 양란 이후 조선 국방의 상당부분을 책임졌던 수난시대 조선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몇 줄에 그칠 뿐이다. 역사서에서 문화의 일부로서 ‘종교인 불교’를 서술하는 행태는 지극히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 결과이다. 

그러니까 근대인의 ‘종교’라는 제약된 관점으로 근대 이전 사회의 ‘불교’ 혹은 ‘유교’의 역할을 재단하는 것은, 우리 역사 속 불교의 역할을 대부분 묻어버리고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비슷한 일이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라는 미명하에 정치제도사 중심의 서술에 초점을 두었기에 신화적 역사쓰기를 배제하였으며, 종교와 신앙 그리고 민간의 삶과 역사는 도외시하였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는 그러한 〈삼국사기〉의 역사서술을 정면에서 논박한 것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진 것을 보완한 역사서가 아니다. 일연 스님이 생각하는 ‘반드시 남겨야 할 역사’를 불교의 시각에서 서술한 역사서이다. 그랬기에 우리 민족이 전해왔던 건국신화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챙겨서 서술하였고, 불교가 국가종교의 역할을 했던 시대의 역사를 불교와 정치·경제·사회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채록하였다. 

〈삼국유사〉가 없는 우리의 역사, 〈삼국유사〉가 없는 상태에서 서술된 우리의 불교역사를 생각해보라. 우리 조상들의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사고방식을 결정한 테두리의 대부분이 결여된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이면서 불교도들이 지향해야 할 세계를 그려낸다. 거기에 기대어 불교적 이상세계를 꿈꾸는 노력들이 모여 우리 역사의 많은 가닥을 만들었고, 그것을 우리는 불교사라고 부른다. 〈삼국유사〉는 그 전형을 담은 역사서이다. 

오늘 지난 일을 되새기지 못한다면, 내일은 더욱 되새기기 힘들어질 것은 자명하다. 불교국가 시대의 공과(功過)도, 억불숭유 시대에 불교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스님과 불자들의 간난신고(艱難辛苦)도 뚜렷하게 되새겨두어야 한다. 〈삼국유사〉가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든 시기에 집필되어, 잊힐 뻔했던 우리 역사의 진실을 차곡차곡 쌓은 보물창고가 되었음을 잊지 말자. 
 

〈삼국유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장의 오늘뿐만 아니라 기약해야 할 내일의 불교를 위해서도, 더 늦기 전에 우리 불교계가 역사쓰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또 제대로 된 불교의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한다면, 제일 먼저 우리 불교의 역사쓰기와 되살리기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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