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깨침의 길 6

“미륵보살과 미륵불은 같은 분인가요, 다른 분인가요?”

언젠가 한 불자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미륵이란 이름은 동일한데, 뒤에 붙는 호칭이 다르다 보니 같은 분인지, 아니면 다른 분이지 궁금했던 것 같다. 결론은 간단하다. 미륵보살이 수행을 완성하여 성불하면 미륵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살은 깨친 붓다가 되기 이전의 수행자를 가리킨다. 현재 미륵은 도솔천에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미륵보살이라고 한다. 이 보살이 56억 7천 만 년 후에 이 땅에 내려와 성불한 후, 즉 미륵불이 되어 모든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것이 미륵신앙의 요체다.

보살이란 본래 보리살타(菩提薩陀, Bodhisattva)를 줄여 쓴 것인데, 이 용어는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역사에 등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붓다가 깨침을 이루고 위대한 성자의 삶을 산 것은 6년간의 고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아주 오랜 겁(劫)의 시간 동안 윤회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기초로 찬불승(讚佛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붓다의 전생담(前生譚)인 자타카(Jataka)다. 그들은 전생담을 활용하여 붓다의 사리를 모신 탑(塔)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위대한 스승의 생애를 설명해주었다. 보살이란 바로 전생담에 등장하는 붓다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깨치겠다는 발심(發心)을 하고 수행하는 전생의 석가모니 붓다가 보살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보살은 석가모니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였다. 전생담에는 석가보살이 임금이나 사문, 토끼 등 수많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가 전생에 무구광(無垢光) 보살이란 이름으로 수행하고 있을 때, 연등불(燃燈佛)께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수기(授記)를 받는다. 수기란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예언이자 일종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다. 연등불은 무구광 보살에게 앞으로 백 겁 후에 성불할 것이며, 이름은 석가모니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수기보살이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나 깨달음을 얻고 석가모니불이 된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보살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즉, 보살은 석가모니 전생의 모습이 아니라 대승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깨침을 향한 마음을 내고(發心) 이를 바탕으로 원(願)을 세우며 6바라밀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의 수행(行)을 하는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보살이란 바로 이런 마음을 내고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를 범부보살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남성과 여성, 출가와 재가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출가를 하면 비구 보살, 비구니 보살이 되며, 재가자라면 우바새 보살, 우바이 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상(理想像)이 되었다.

대승에서는 관음, 대세지, 지장 등 수많은 보살이 등장한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그들의 시선이 깨친 붓다가 아니라 진흙 밭에서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에게 닿아있다는 점이다. 대승의 보살들은 성불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장보살을 가리켜 원이 가장 큰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불교의 지향점이 대 사회적 실천인 자비행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깨친 붓다와 성불하지 않으려는 보살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살은 석가보살, 수기보살을 거쳐 대승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되었다. 요즘은 점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처녀보살’, ‘애기보살’ 등으로 차용하고 있는데,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 용어가 오용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적어도 보살이란 용어를 사용하려면 이 말에 담긴 의미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안에 담긴 중생들을 구원하겠다는 서원이 너무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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