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혜인 스님 2

 

서신1
서신2

 

<서신1>

불자 성원 거사님과 대원성 보살님 전
佛恩之下(불은지하)에 원력과 신심으로 雲集(운집)한 성원 거사님을 위시로 家內諸位(가내제위)전에 삼가 합장하여봅니다. 常念(상념) 관세음으로 모든 마장 자취 없고 불일(佛日)이 常照(상조)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거사님 건강 여여하시고 아이들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겠지요? 전일에는 정말 죄송하였습니다. 생각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스님을 모시고 수 십 만원을 화주할 마음 때문인지… .

바쁘신 가운데 충실히 찾아주신 귀중한 성의를 아랑곳없이 실례를 범했나봅니다. 혹이나 그 정도의 일만큼은 얼마든지 선의적으로 이해해 주실 줄 믿고 있습니다. 관음행에게도 잘 이야기해 주시고 그래도 오해하신다면 감수하리라. 시간 있으시면 워낙 잘 다니시는 발걸음 이곳을 한번쯤 스쳐가시리라 의례히 믿고 있는데 다만 인연과 형편에 맡기고 건강과 정진 일여를 심축합니다.
                                                                                        1978. 6. 18 합장

<서신2>

불자 대원성 전
한상 신심과 환희가 가득한 모습 생각 속에 그려보며 합장을 보냅니다. 인자하신 거사님과 아란, 보현 등도 無魔(무마)하시고 연꽃회원 여러분께서도 가정이 두루 평안신지요?나도 덕분에 감기몸살로 몹시 거북하지만 견딜 정도는 되니까 뭐 그리 걱정은 마이소. 춘풍이 梅風(매풍)을 벗 하더니만 어쩌면 나까지 송남이나 팔공산으로 데리고 갈 모양인 듯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여름 결제를 위하여 한 바퀴 돌고서 부산 가면 전화 때르릉 올려 드릴 모양이니 개봉박두 기대하시라.

<서신1>은 쓰님께서 약천사 불사를 위해 동분서주하실 때 주신 서신이다. 서신 속의 그 날(전일)은 스님께서 큰스님 모시고 바삐 외출을 하시느라 스님을 제대로 뵐 수가 없었던 날이다. 스님 입장에서는 찾아온 손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돌려보낸 꼴이어서 마음이 많이 쓰이셨던 것 같다. 이심전심으로 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 마음이 그런 게 아닌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주는 마음은 주는 마음대로 조심스럽고, 받는 마음은 받는 마음대로 표현할 길이 어렵다. 마음이라는 게 눈으로 볼 수 없어 힘든 것이리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자유자재할 수 없는 미혹중생의 마음을 살피시느라 노심초사하시는 스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서신이다.

<서신2>에서는 스님의 천진난만한 마음이 물씬 풍긴다. 출가자이기 이전에 사람인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우선하는 것이 사람인 것 같다. 사람이 사람 없이 살 수 없음이다. 주고받는 인사가 사람의 첫 번째 일인 것 같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것, 그것이 세상사의 시작이고 끝인 것 같다. 다가오는 겨울을 보내고 또 다시 봄이 찾아오면 다시 서신을 꺼내볼 것이다. 오래 된 짧은 서신 하나가 그 봄엔 큰 공부가 될 것 같다.

30여년 전 지족암에서 촬영한 혜인 스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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