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선원-천막결사 90일간의 기록

상월선원 천막결사 90일의 기록
안거 대중 아홉 스님 인터뷰 묶어

14시간 정진, 하루 한 끼, 목욕금지 등
풍찬노숙, 유례없는 청규 무문관 안거
주고받은 필담, 이심전심 이야기 소개
한국불교 미래 담은 새로운 기운 보여

상월선원-천막결사 90일간의 기록 / 백승권 지음 / 조계종출판사 펴냄 / 1만6천원

 

2019년 11월 11일, ‘2563년 동안거’가 시작된 이날은 한국불교사에 ‘한국불교 최초의 동안거 천막결사’라는 새로운 역사가 기록됐다. 그 역사적인 90일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책은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천막결사의 주인공인 아홉 스님이 90일 동안 있었던 일들과 느꼈던 것들을 들려준다. 유례없는, 앞으로도 보기 힘든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이 시대에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지, 수행자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지, 아홉 스님의 인터뷰를 담았다.

하루 14시간 이상 정진, 하루 한 끼, 옷 한 벌, 삭발 목욕 금지(양치만 허용), 외부인 접촉 금지, 묵언, 규약을 어길 시 조계종 승적 제외, 유례없는 청규 속에서 안거는 시작됐다. 흙바닥 위의 비닐하우스 천막선원, 방부를 들인 아홉 스님에겐 좌복 하나와 1인용 텐트가 주어졌다. 처음으로 아홉 스님이 함께하는 풍찬노숙의 무문관 동안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동안거가 끝나는 2020년 2월 7일, 상월선원이 자리한 위례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푸르렀다. 유례없는 동안거 해제의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천막이 자리 잡은 작은 언덕 위로 수백 명의 사부대중이 모여들었다. 코로나19를 걱정한 주최 측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그 수백 명은 수만 명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열기만큼은 수만 명 인파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오후 1시 30분, 굳게 잠겼던 상월선원의 자물쇠가 풀리고 아홉 스님이 차례차례 무문관 밖으로 걸어 나오자 대중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해제풍경이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 모습은 놀라움과 신기함, 그리고 마침내는 경이로운 마음을 품게 했다. 대중은 합장으로 아홉 스님을 맞았다. 아홉 스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90일 동안 씻지 않고 일종식을 했던 아홉 스님의 얼굴은 뜻 밖에도 환하고 평온했다. 광대뼈가 드러날 만큼 여위고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이었지만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결기가 보였다. 그 얼굴들은 대중이 궁금해 했던 천막 안의 90일을 모두 말해주는 듯 했다. 아홉 스님의 얼굴은 단지 지난 90일 동안의 역사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90일, 앞으로의 100년, 200년을 그리는 또 하나의 입재였다. 새로운 기운이었다.

“상월선원에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사부대중께 감사합니다. 하루하루가 사부대중의 정성과 원력에 감사하는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나아가 수행의 종풍이 자랑스러운 우리 종단임에도, 제가 여러 소임을 살면서 수행정진을 소홀히 한 것을 깊이 돌아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안거마다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하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공경하고 존중합니다. 해제마다 쌓이는 수행의 결실들이 승가는 물론 사부대중 모두에게 널리 전해지고 한국불교를 선도해 나가기를 서원합니다. 사부대중 모두가 함께 공덕을 회향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자승 스님>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근본은 선방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선방이 꼭 깊은 산속에 있어야만 할까. 평생을 선수행으로 정진했던 서암(조계종 제8대 종정) 스님은 “어떤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고, 그곳이 바로 절이지”라고 말했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백담사 무문관을 다녀온 뒤 ‘노숙 수행’을 생각했다. 서울역이나 탑골공원 근처에서 노숙자들과 같이 하면서 어려움을 나누려 한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았고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위례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천막결사가 시작된 것이다. 천막결사가 시작되자 세간에는 천막결사를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례가 없는 일에는 말이 넘칠 수밖에 없다. 과연 그것을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옳은 일일까. 없었던 일이니 그 뜻이나 결말에 많은 의문들이 쏟아졌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90일의 문 없는 문을 열고 나온 아홉 스님의 얼굴은 많은 의문들을 무색하게 했다. ‘90일’은 90일을 지나온 아홉 스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석양이 그립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빛이 그립네. 정진이 안 된다. 집중이 안 돼. 왜 이리 힘든가. 춥다. 허기진다. 기운이 없다. 다음은 또 어디로 가야하나.”<인산 스님 수행일지 23>

책 속에는 ‘달마대사 스타일 3명’ 등 묵언수행 중 스님들이 주고받은 필담과 예기치 못한 일들을 이심전심으로 함께 지나가는 90일의 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일기는 한 시대를 같이 걷는 모든 대중에게 던지는 공업의 대안과도 같았다.

저자 백승권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미디어오늘’ 기자,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지냈으며, 2010년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업무용 문서 매뉴얼 제작 및 글쓰기 컨설팅 전문업체인 (주)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업무용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1980년대 후반 문예지 〈녹두꽃〉에 두 차례 글을 실었으며 〈싯다르타의 꿈 세상을 바꾸다〉, 〈보고서의 법칙〉, 〈글쓰기가 처음입니다〉, 〈강원국 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 등 십여 권의 책을 펴냈다.

2월 7일 천막결사 후 무문관 정진동을 나온 정진대중 아홉 스님들이 대중과 삼천대천세계에 감사와 발원의 예를 올리고 있는 모습.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