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논쟁 촉발 ‘대천오사’
‘깨달음’ 논쟁 촉발 ‘대천오사’
  • 이일야
  • 승인 2020.11.2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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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깨침의 길 5

2004년도에 개봉한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는 손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하는데, 그래서인지 아라한을 절대내공을 지닌 신비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고 깨침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까지 아라한은 모든 수행자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그 위상과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멸 후 200여 년경 마하데바(Mahdeva), 한역불전에는 대천(大天)이라 불리는 비구가 있다. 그는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는데, 번뇌를 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과 주장을 하였다. 그가 제기한 다섯 가지 주장을 가리켜 ‘대천오사(大天五事)’라고 한다. 이는 깨달음과 아라한의 위상에 대한 문제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첫째는 여소유(余所誘)인데, 아라한도 유혹에 넘어갈 때가 있다는 뜻이다. 어느 날 마하데바가 몽정을 하였다. 스승의 옷에서 그 흔적을 발견한 제자가 어떻게 모든 번뇌를 끊은 성자가 몽정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마하데바의 대답이 바로 “아라한도 꿈속에서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무지(無知)인데, 스스로 깨달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마하데바의 제자가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라한이 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승에게 물었더니,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고 답한 것이다.

셋째는 유예(猶豫)다. 이는 무지와 비슷한 내용인데, 자신이 아라한이 된 것을 알기까지 시간적인 유예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깨치는 순간 ‘아!’ 하고 스스로 알 수도 있지만, 때로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과거 어느 때 자신이 깨쳤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타령입(他令入)이다. 이것도 앞선 무지, 유예와 유사한 경우다. 내가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알려줘서 아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무지와 유예, 타령입은 결국 ‘아라한의 자각’에 대한 문제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섯째는 도인성고기(道因聲故起)다. 성스러운 도(道)는 괴롭다는 소리로부터 생긴다는 뜻이다. 어느 날 마하데바가 무심결에 괴롭다고 탄식하는 소리를 제자가 들었다. 그러자 제자는 아라한도 괴로움을 느끼는지 물었고 스승은 깨친 사람도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아라한은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하데바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아라한도 괴로움을 느끼며,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를 소멸하기 위해 수행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5가지 문제제기로 인해 아라한의 권위와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몽정을 하고 괴로움을 느끼는 성자, 자신이 깨쳤는지를 알지 못하는 아라한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하데바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은 성자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고 몽정을 한다면, 그는 아라한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마하데바의 의견에 찬성하는 수행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라한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깨달은 이후에도 인간으로서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붓다와 같은 완전한 경지(成佛)에 이르기 위해서는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라한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체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파불교에서는 여전히 아라한을 절대시했지만, 대승불교에서 아라한은 성불을 향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대천오사는 깨달음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지만, 이는 우리들의 실존적인 삶에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아무리 깨쳤다 하더라도 붓다처럼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때로 괴로움이 느껴지고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면 참회, 발원하고 더욱 정진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불자(佛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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