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얀마인들의 보시 사상

미얀마 MAX 기업의 우쩌쩌 회장이 기부한 코로나 환자병원을 우표민 떼인 양곤주지사가 시찰하는 모습.

삶 속에서 ‘무주상보시’ 실천
10가지 보살행 중 첫 번째인
‘보시’가 인생 최고의 실천행
승가 보시는 물론 특별한 날
대중 전체에 공양 올리기도

우리가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쉬울까? 오히려 일면식이 없는 사이라면 기대심 없이 줄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내가 친한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거나,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할 때 일말의 기대감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다. 예전에 한 친구가 스님에게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해주는 것을 받기만하고 돌려주지 않아서 고민이예요”라고 하자, 스님이 “타인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 하는 괴로움을 스스로 얻지 말고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잊지 말라”고 대답해줬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때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무주상보시’ 덕분에 나의 것을 누군가와 나눌 때 준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렸을 때는 기부와 경제적 능력은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금전적인 여유와 기부하는 마음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돈이 많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기부에 인색한 반면, 돈이 적더라도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이라도 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많은 울림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GDP순위가 12위로 올라설 만큼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세계기부지수는 우리나라가 GDP순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GDP순위는 현저히 낮지만 세계기부지수에서는 상위권에 속해 있다. 세계기부지수에서 2013년도에서 2017년까지 약 5년동안 미얀마는 1위를 달성했다.

미얀마가 세계기부지수 1위를 한 것에 많은 선진국들이 놀라워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미얀마가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세계기부지수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요인은 불교”라고 보도를 했다. 하지만 불교 국가라고 해서 모든 나라가 세계기부지수 상위권에 오르지 않았다. 미얀마 사람들의 생활 속에 부처님 가르침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지를 역으로 추측해 봐야 한다. 미얀마 뿐만 아니라 불교를 믿는 나라가 많은데 ‘왜 유독 미얀마 사람들은 보시를 많이 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미얀마에는 오래 전부터 불교의 영향이 미얀마의 정치, 문화, 언어, 가치관 등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러한 전통이 미얀마 사람들의 삶이 되었다.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 미얀마 사람들.

그러므로 보시는 불교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에 대한 지혜가 삶에 스며있어 욕심을 버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생활환경, 문화, 말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치관을 삶을 통해 배운다.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에 관한 개념을 정확히 몰라도 보시를 통해 그 의미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간다. 미얀마 사람들은 ‘십빠라미(10바라밀)’ 보살행(菩薩行)에 관한 부처님의 일대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으면서 자란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無我)’의 정신은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을 통해 이기심을 버리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10가지 보살행(菩薩行)의 첫 번째인 보시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미얀마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보시’를 배우는 귀한 첫 경험은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미얀마 사람들은 탁발하는 스님들을 위해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서 보시할 수 있는 음식들을 준비한다. 아침이 되면 온 가족들이 밖으로 나가 스님들의 탁발을 맞아 공양을 보시한다.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아침 공양을 정성스럽게 보시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숭고하다. 미얀마 사람들은 집을 이사하거나, 가게를 열거나, 회사를 오픈하는 날 스님들을 모셔와 점심 공양을 보시한다. 스님들은 점심공양을 드신 후 정성을 다하여 미얀마 사람들에게 경전을 읽어주고 축원을 해 주신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보시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다. 한 달에 몇 번씩 학과 앞에는 큰 가마솥에 닭국물과 국수가 배달된다. 학과 교수님 혹은 학생들의 생일이어서 생일인 사람이 학과 사람들에게 ‘점심’을 보시하는 것이다. 거주하고 있는 경제 연구소에는 약 30명의 연구원이 일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미얀마 사람들이 자주 먹는 ‘모힝가(메기국수)’가 30~50인분이 배달된다. 생일인 사람이 자신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침을 보시한다. 처음에는 아침에 국수가 배달되어 있어 놀랬지만 6개월 정도 지나고 났을 때, 아침에 국수가 배달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일인 사람을 찾아 축하해주는 눈치를 기르게 되었다.

생일을 맞아 기부하는 도시락.

한국에서는 보통 생일인 날, 생일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주면서 축하해 주지만 미얀마에서는 생일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시를 한다는 점에 놀랐다. 미얀마 친구들은 자신의 생일날 고아원, 병원 등을 찾아가 도시락 기부, 밥차 기부를 하는 의미있는 생일날을 보낸다. 미얀마에서는 자신의 동료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것을 알면 주변의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돈을 모아 어려운 동료에게 기부하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다. 개인으로 봤을 때 작은 돈이지만, 여러 명이 모이면 큰 돈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미얀마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 같다.
기부라는 것이 꼭 자신과 일면식이 없는 어려운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도 ‘기부’라고 생각하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 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속이 상하지 않아? 돈 때문에 친구를 잃은 걸 수도 있잖아”라는 나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그 돈을 그냥 기부한 것으로 생각해”라며 더 이상의 괴로움을 스스로 얻지 않는 미얀마 친구의 반응에 놀랐던 경험도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기부를 받을 때 기부하는 사람에게 ‘Ahlu yay sat lat nae ma kwar(항상 기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축원을 해준다. 미얀마 사람들은 ‘보시’하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윤회’ 사상을 믿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는 돈이 없어서 기부를 하지 못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돈)없어서 기부 안 한다. 기부 안해서 없다(돈)’라는 말이 있다. 즉, ‘지금 생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도 가난하게 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기부를 많이 하면 좋은 선업이 쌓여 다음 생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믿는다.

미얀마에서도 최고의 기부는 타인 몰래 하는 기부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익명 기부를 하는데, 미얀마에서는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 모르게 기부를 한다. 이런 기부를 빵따구(Pankthaku)기부라고 하는데, 돈이나 자신이 기부하고 싶은 물건을 길거리에 두고 가야 한다. 이렇게 기부하는 것은 본인만 알아야 하기 때문에, 타인이 길거리에 다니지 않는 밤 12시가 넘어서 기부할 수 있다. 빵따구 기부를 하는 날은 보통 11월 ‘딴싸웅따잉’ 보름날이다. 혹시 11월 보름날 미얀마에서 길거리에 돈을 발견했다면 누군가가 익명으로 기부한 것이기 때문에 주워도 문제가 없다.

미얀마에서는 개개인마다 기부하는 것이 삶 그 자체가 되었다.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얀마에도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대기업 중 하나인 MAX(맥스)기업에서는 U Zaw Zaw(우쩌쩌)회장의 지시로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 기부했다. 미얀마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은 기부를 통해 얻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가끔 삭막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미얀마 사람들의 자애로운 눈빛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얼마나 내가 소유한 것을 우리의 이웃과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가?’ 미얀마 사람들을 통해 기부가 꼭 수백억의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양곤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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