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기자분이 “병원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어왔다. 순간 ‘아, 잊고 살고 있었구나.’하는 한 생각이 들며 소록도 작은 섬이 떠올라왔다. 

강원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처럼 세상 밖으로 막 첫걸음을 내딛던 시절이었다. 선방의 방부를 들이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다 만행을 계획하였다. 일 년만 봉사만행을 해보자 하고 찾은 곳이 ‘소록도’였다. 

‘걷다가 손가락 한 마디 땅 위에 떨어지다.’  한하운 시인의 싯구절을 읊조리며 봉사를 낭만으로 생각하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병동을 지정받고 봉사를 시작했는데, 서툰 나의 행동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김 아저씨였다. 아주 조그마한 몸에 맑은 눈빛과 천사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아저씨는 원래 ‘출가자’였다고 했다. 출가한 지 일 년 만에 자신이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소록도를 찾았다고 한다. 

김 아저씨는 나를 만난 후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 새벽에는 라디오를 틀어 불교방송의 예불문을 들으며 예불을 하시고, 나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도 하셨다.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모아 합장을 하시는 모습에 어떨 때는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점심 식사를 끝낸 김 아저씨가 무척 들뜨고 분주한 표정으로 나에게 휠체어를 태워달라고 하였다. 아저씨의 특별한 언어들을 알아듣기 어려운 나로서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아저씨가 가자는 대로 휠체어를 이동해 보기로 했다. “어”하는 소리가 부드러우면 맞는 것이고 톤이 높고 격하면 아니라는 표현이었다. 결국 그런 의사소통으로 어렵사리 도착한 곳은 외래병동의 커피자판기 앞이었다. 나에게 커피 한잔을 사주고 싶은 것이 아저씨의 간절한 마음이었음을 알고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했다. 

커피를 마시고 바닷가 주변을 산책하다 잠시 멈추어 휠체어를 마주하고 긴 의자에 앉았다. 김 아저씨가 무언가를 얘기하고 싶어했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 업이 뭡니까?” 어눌하지만 선명하게 들리던 그 질문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화두의 답을 일러보라고 말하는 스승의 다그침에 말문이 막히는 제자처럼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 후, 목에 큰 가시가 걸린 듯한 불편한 마음으로 봉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병동에서 환자 식사 준비를 할 때, 환자식으로 나온 곰국에 발을 데어 며칠 치료를 받고 2차 감염 등의 위험을 운운하는 걱정에 묻어 나는 결국 소록도를 나오게 되었다. 

“업이 뭡니까?”라는 말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통의 당체가 살아움직이는 병원이라는 수행처를 선방삼아 공부하게 된 그 이유를 이제야 나 스스로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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