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성 이벤트 아닌 정통성 가진 불교혁신운동
새로운 수행공동체, 정법불교 나아가는 디딤돌
가을 국토 가로지르는 순례에서 ‘동체대비’ 체감
회향하니 지난 시간 꿈같아…모든 대중에 감사

아, 상월결사
상월결사 1주기를 맞는다. 2019년 11월 11일, 서릿발 내리는 가을밤에 상월결사의 첫 밤이 시작됐다. 위례 신도시의 한복판에 천막을 치고 아홉 스님이 한겨울을 났다. 묵언수행. 하루 밥 한 끼. 14시간의 참선. 90일간 옷 한 벌. 목욕과 삭발 금지. 한국 불교사에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불교수행의 새로운 형태가 탄생했다.

돌아보면 고려시대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가 있었고, 1940년대 후반엔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이 주도한 봉암사결사가 있었다. 20~30대의 청청한 수좌들이 기개를 떨친 한국 불교사의 일대 쾌거다. 상월결사는 더 놀랍다. 도심지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세납 60을 훌쩍 넘긴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중심으로 종단의 원로 중진 스님들이 함께했다. 

산중불교가 도심불교로 전환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수행이 기본이라는 부처님 정신의 구체적 실천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입재부터 해제까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무문관 수행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라고, 마지막 1주일은 철야정진을 자청했다. 장군죽비가 여러 개 부러졌다.

외호대중도 함께했다. 천막 아래 임시 법당을 짓고 아홉 스님을 위해 기도하고 정진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야단법석 공연도 있었다. 산중의 선방 참선 모델을 파격적으로 혁파하는 새로운 수행법에 일부는 의아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묵직한 감동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홉 스님의 상월결사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말로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냥 흘렀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았다. 수행자의 솔선수범이야말로 한국불교 발전의 최우선 해법이 아닌가.

가을 불국정토
결사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불교혁신운동이며 새로운 수행 공동체의 탄생을 통해 정법불교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공간적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시간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불교 ‘자성과 쇄신’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개혁의 동력이 파격적 혁신으로 나타난 게 상월결사라면 이 혁신결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2020년 들어 상월결사의 뒤를 잇는 만행결사가 기획됐다. 상월결사가 비구스님들만의 용맹정진이라면 만행결사는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새로운 불교 공동체의 출발이다.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가 차별 없이 똑같이 수행한다. 길에서 먹고, 길에서 자며, 길 위를 걷는 ‘움직이는 불교’다. 이제 한국불교는 찾아가는 불교, 능동적인 불교, 중생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불교로 재탄생하라는 자기명령을 따르기 시작한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려던 계획이 코로나19 때문에 국내 순례로 바뀐다. 부처님 나라가 어디 인도 뿐이랴. 불자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불국정토다. 10월 7일부터 27일까지,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까지 500km. 세 시간이면 갈 길을 스무하루동안 걸어간다. 불교중흥, 국난극복, 만행결사, 자비순례의 길이다. 

순례단 일원이 되어 체험해보니 세상이 아름답게 빛난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중중첩첩의 산줄기, 말없이 흐르는 유장한 강물. 해와 달과 별빛과 바람, 천산만야의 단풍과 들국화 향기가 온몸에 배어든다.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가을 이 땅이 온통 부처님 나라다.

국토의 가을을 통짜배기로 지나는 경험도 특별하다. 초추부터 만추까지, 남쪽의 낙동강에서 북쪽의 한강까지, 산줄기가 흘러내려온 길을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걷고 또 걷는다.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소리도 새롭게 들린다.

새벽에 일어나 마을을 지나가면 동물들도 순례단의 신심과 원력을 알아차린다. 닭이 울고, 개가 짖고, 소가 소리를 내지른다. 내 발가락이 아픈 것은 중생이 다 아파서인가 보다. 동체대비의 공감이 육도에 다 울려 퍼지면 얼마나 좋을까. 진정한 공감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달성군을 지날 때 낙동강변 축사의 씩씩한 황소 소리를 아직 잊지 못한다. “힘~내~”, “힘~내애~~” 얼마나 힘차게 내지르는 소리인지 7월의 쌍무지개도 뛰어넘을 기세다. 문경 지나 이화령을 넘어오자 황금들판에 추수가 한창이다. 가을 햇살이 고슬고슬한 햇밥 같다. 생명이란 이런 거다. 씩씩하고 들썩들썩하는 거다. 몸이 움직여 나아가는 거다.

내일의 또 다른 결사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환희심에 가득찬 얼굴로 박수를 치는데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얼굴을 마주치면 공연히 내가 울컥한다. 그들의 마음을 읽어본다. ‘고마워요. 수고하십니다. 저도 같이 걷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제 몫까지 걸어주세요. 우리 불교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빵 하나를 나누면 내 몫은 줄어들지만 감동은 나눌수록 모두의 몫이 커진다. 결사란 결국 무엇인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부처님 가르침에 벗어나 있음을 알아차리고 정법불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뉘우치고 마음 다잡아서 초발심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데 어찌 공감이 없고 감동이 없으랴. 굳게 믿고 간절히 원해서 실천에 옮길 때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법이다.

한국불교의 미래가 신심과 원력과 수행에 기초한 공감과 감동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순례길 끝에 와서 자문해 본다. 내일의 새 길은 무엇인가. 지옥 밑바닥에서 천상의 꼭대기까지, 뭇 생명이 감동하는 드라마를 계속 써 가야 하지 않을까. 봉은사에서 회향식을 마치고 나니 지난 3주일이 꿈만 같다.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동참대중 모두에게 감사하고 함께하지는 못해도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절을 올린다.

윤재웅/ 동국대 사범대학장

순례 기간 내내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이들이 많다. 전염병이 만연한 와중에 순례길을 나선 우리에겐 큰 힘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직 사람이다. 너나없이 존귀하다. 차별이 없다. 그래서 이웃이 아프면 나도 아픈 거다. 서로 위하고 돕는 게 법이다. 돕는 손길이 보살행이요 위하는 마음이 자비행이다. 공감하고 감동하는 서로의 가슴이 우리의 희망이다.

암과 싸우며 순례에 참여하는 보살님이 자자회에서 울먹이며 말한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하지 않았나요. 용기를 내서 걷고 싶었어요.” 장내가 숙연해진다.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 삶을 향한 치열한 정신은 고통과 싸워 이길 때 더욱 아름답다. 이게 바로 상월결사의 정신이요 실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고통 가운데 피어나고 위대한 승리는 좌절 속에서 성취된다.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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