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선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현양회가 조성한 도쿄선사 좌상. 사진출처=니혼게이자이 신문

선사이자 일본의 ‘신돈’
정무 관여한 권력자로
비판적인 평가 받아와
객관적 연구 필요 제기


한국사에서 권승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악평을 받아온 묘청, 신돈과 같이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 악평을 받아온 스님이 있다. 10월 22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그동안 외면 받아 왔던 ‘도쿄(道鏡)선사(?~772)’에 대한 재조명을 보도했다.

도쿄선사는 일본 고대사에서 천황을 감싸고 조정을 흔든 권승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전례가 없는 급진적인 출세가도 때문이다. 세도가의 후예로 태어나 일찍이 출가한 도쿄는 법상종의 교의와 범어를 수학하고, 특히 선(禪)에 밝았다고 전한다. 이로 인해 왕궁의 내불당에 선사로서 출입을 허락받았다.

그러던 중 천황이 중병에 걸리자 직접 간병을 하며 쾌유를 발원하는 기도회를 봉행했고, 왕이 완치된 이후로 특별한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일본의 출가자를 통솔하는 부관리자에 해당하는 소승도(少僧都)에 임명된 지 이듬해, 조정대신의 관직을 받아 정무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조정을 통솔하는 수장인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임명됐다. 이에 멈추지 않고 그 다음해에 법왕(法王)이라는 왕위를 받아 불교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추진했다. 소승도 이후의 관직은 모두 도쿄선사를 위해 새롭게 제정된 관직이다.

도쿄선사의 일족이 고위직으로 중용되었으며, 심지어 도쿄선사가 천황이 되어야 한다고 신탁이 내렸다는 이야기까지 퍼졌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반대파들의 주장으로 좌천되었고 얼마 안 되어 입적했다.

이러한 내용으로만 보았을 때 도쿄선사는 정치에 깊이 관여한 야심가로 보이며, 오랫동안 국정을 어지럽힌 요승의 대표로 꼽혀왔다. 그러나 최근 도쿄선사는 시대에 휩쓸려 희생된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교토여대의 타키나미 사다코 명예교수는 “실제 사료적으로 봤을 때 도쿄선사가 강압적인 정책을 펼친 악인이라는 증거는 빈약하다. 그러나 또 종교지도자로서의 눈에 띄는 공적도 없다. 시대의 격류 속에 휩쓸려 악명을 쓴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슈치인 대학의 교수인 사에키 슌겐 스님도 “도쿄선사는 필요 이상의 악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오히려 도쿄선사는 불교의 이념으로 ‘적도 친구도 모두 평등함(怨親平等)’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려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7년 도쿄선사의 출신지로 알려진 야오시(八尾市)에서 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유게지(由義寺)의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결과 한 면이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칠층탑의 터와 예상을 초월한 대규모의 유적이 발견됐다. 또한 이 사찰에 천황이 직접 참배했다는 사료 등이 발굴되면서 도쿄선사가 단순한 권승이 아닌 중교적인 위신도 뛰어났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도쿄선사를 재평가하고 현양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출신지인 야오시에서 결성된 현양회인 ‘도쿄를 아는 모임’은 도쿄선사의 좌상을 조성했다. 지금까지 악역으로 묘사되어 왔던 선사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서다. 완성된 좌상은 도쿄선사가 중창한 것으로 알려진 사이다이지(西大寺)에 봉안될 예정이다. 현양회 측은 “도쿄선사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올바르게 평가 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번 발굴결과와 좌상조성을 계기로 더 많은 연구가 진전, 심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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