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치인과 국민 매개 ‘연기’
좋은 정치인과 국민 매개 ‘연기’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1.05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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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식과 불교가르침

차악을 뽑는 현행 민주주의
국민의식의 현재 주소 반영
좋은 정치인 국민이 만들어
​​​​​​​긍정 에너지로 정치 변화를

과거 독재시절엔 사회주의 성향의 서적을 소지하고만 있어도 처벌 받았다. 칼 마르크스의 저서는 가장 대표적인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유학생이 해외에서 귀국하면서 막스 베버의 저서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다. 공항에서 짐검사를 하다가 막스 베버의 책을 발견하곤 불온서적이라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칼 마르크스를 칼 맑스로 번역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막스 베버와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막스 베버는 사회과학의 천재로 불리운다. 여러 분야에 대한 저술로 이름 높고 지금도 후세 학자에 의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연구되는 학자다. 그는 이 분야 저 분야 섭렵하고 손을 대다 보니 항상 수준 높은 저술만을 내지는 않았다. 불교에 관한 막스 베버의 연구는 대표적인 부실 연구다. 막스 베버는 불교를 세상에서 도피하는 허무주의적 소극적 종교로 오해한다. 그는 불교를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종교로 오해하고 있는데 아마 불교의 친자본, 친시장적인 경전의 구절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워낙 불교경전이 방대하다보니 그가 치우치게 독서한 것이 드러난다. 그의 관점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오늘날 한국 불교는 그의 잘못된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막스 베버의 유명한 저서 중 하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 혹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되기도 하는 얇은 책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는 저서로 유명하다. 막스 베버는 나중에 선거에 출마하여 현실 정치에 도전 했는데 낙선하였기에 정치가로서는 실패했다.

막스 베버의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내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라는 구절이다. 그래서인가? 정치의 세계는 얼마나 한심하고 혼탁한가? 선한 정치인은 귀하고 악한 정치인은 넘쳐 난다. 선한 정치인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법칙에 의해 도태되기 쉽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착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사후에 굿플레이스와 배드플레이스에 간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배드플레이스에 가는 사람을 나열하는데 피카소 등 모든 예술가, 링컨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라는 재미 있는 대사가 있었다. 거의 모든 정치인은 과연 지옥에 갈까?

선거를 할 때마다 국민은 ‘누가 덜 나쁜가’를 선택하면서 한탄한다. 누가 더 좋은 정치인인가를 고민하지 못하고 누가 덜 나쁜가를 고민해야 하다니… 하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직장 상사, 직장 동료, 부하 직원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힘들게 하던 직장 상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새로운 상사가 부임했을 때 우리는 곧잘 ‘구관이 명관이다’라고 실망 한다. 곳곳에 사기꾼이 넘쳐나고 순박했던 시골마저 돈에 의해 배반을 밥 먹듯한다. 돈을 주고 받는 거래는 속임수와 사기꾼의 전쟁터이다. 우리도 알고 보면 정치인을 선택할 때처럼 사회생활을 할 때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한다. ‘다 그렇지 뭐’하면서 우리를 괴롭히던 구관이 더 낫다고 위로한다. 더 큰 사기를 당하면 ‘그래도 옛날 그놈은 양심적으로 해 먹은거네’라고 말한다. 어차피 속여 먹는거라고 생각하고 거래를 한다. 어찌 업자 뿐인가? 잔금 떼먹는 고객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다만 정치의 세계는 일반인의 세계보다 만사가 훨씬 더 증폭된다. 정치인은 보다 극단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더 억지를 부리며 더 안면 몰수를 한다. 보통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쁜 짓을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정치인은 국민의 거울이다. 우리가 그들을 괴물로 만든다. 우리는 그들을 욕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창작물이다. 그들이 뱉어내는 가짜뉴스에 열광하는 것도 우리다. 한술 더 떠서 우리가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바치면 그들은 멋지게 써먹는다. 그들이 억지를 부리고 사실을 비틀고 왜곡할 때 후련해 하는 것도 우리다. 평균적으로 그들이 우리보다 더 나쁜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고 그들은 우리를 조종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연기의 세계에서 ‘나쁜 정치인과 좋은 국민의 조합’은 없다. 정치인에게는 국민이 들어와 있고, 국민에게는 정치인이 들어와 있다. 정치인이 국민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국민 또한 정치인을 떠날 수 없다. 어찌 나쁜 정치인을 선발하는 좋은 국민이 있을 수 있나? 나쁜 정치인은 끊임없이 국민을 부추기고 혐오를 유발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국민을 조종할까 밤낮으로 궁리한다. 국민은 나쁜 정치인의 거짓말과 억지에 환호하고 다시 선거 때가 되면 그들을 뽑는다.

흔히 시장이 더 좋다고 한다. 시장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시장은 경쟁이 있기 때문이며 비효율적 기업은 퇴출되기 때문이다. 선거가 ‘누가 누가 덜 나쁜가’의 선택이라면 경쟁은 있는 셈이다. ‘누가 누가 더 좋은가’의 경쟁이 아니라고 한탄할 수 있지만 누가 누가 덜 나쁜가와 누가 누가 더 좋은가의 경쟁은 종이 한장 차이다. 동일한 경쟁 현상을 보고 어떤 사람은 누가 누가 더 잘하는가의 싸움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은 누가 누가 덜 나쁜가의 싸움이라고 본다.

자기가 지지하는 나쁜 정치인을 교묘하게 지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방법이 양비론이다. 양비론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양비론은 양심적인 양비론과 자신마저 속이는 양비론이 있다. 알고 보면 나쁜 정치인과 좋은 정치인의 싸움이지만 교묘하게 더 나쁜 정치인과 덜 나쁜 정치인의 싸움으로 상황을 변질시킨다. 그 다음에는 ‘그놈이 그놈이야’라는 동일화 작업을 거친다. 둘 다 똑같다는 합리화를 하면 자신이 속으로 지지하는 더 나쁜 정치인을 선택할 때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낀다. 인간은 원래 뻔한 거짓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신도 속이고 나중에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신봉한다.

가까이서 접해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정치인도 많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도 정치를 하면 죽일 놈의 대열에 들어간다. 아무리 형편 없는 사람도 성직자가 되면 기본 점수는 얻는다. 정치만큼 어려운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는 힘들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이 가장 다른게 정치다. 한 번 해보면 알게 된다.

미국에서 공공부문의 유능한 리더가 민간부문으로 옮겨간 경우와 민간부문의 유능한 리더가 공공부문으로 옮겨간 경우를 비교해서 누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가를 조사했다. 민간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옮겨간 리더가 상대적으로 성과가 더 나빴다. 정치는 역시 쉽지 않다. 정치에 불만이 많다보니 우리는 ‘기업처럼 경영하라’ ‘기업으로 부터 배우자’ ‘민간경영기법을 공공부문에 도입하자’ 등을 말하지만 공공부문을 기업처럼 경영하다간 큰 일 난다.

미국 센트루이스시의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던 세르반테스라는 사람은 민간경영인 출신인데 ‘공공부문에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하겠다’라는 선거공약을 걸고 돌풍을 일으켰다. 항상 정치에 불만인 유권자는 이런 구호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유명해져서 백악관에 초청도 받을 정도였는데 퇴임 후 고백을 했다. ‘민간경영기법을 공공부문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라고.

그래도 괜찮은 정치인은 잘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좀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불만에 찬 국민의 눈에는 그놈이 그놈으로 보인다. 정치가 이렇게 엉망이 되고 힘든 것은 부분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뇌의 용량을 초과하여 미쳐버리고 만다. 인간은 선택적으로 중요한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모두 망각한다. 이는 축복이며 뇌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특성이다. 기억이 불완전한 국민은 안면몰수하고 과거의 약속을 뒤집는 정치인의 거짓말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인간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라 가짜뉴스에 흔들리고 쉽게 조종된다.

정치는 민간부문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따라서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일찍부터 좋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쌓는게 좋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선진국의 젊은 정치인은 사실 학창시절부터 정치경험을 쌓은 노련한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미국을 예를 들면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부터 이미 교내에서 리더로서 훈련을 쌓고 시장, 시의회의원, 주하원의원, 주상원의원, 연방하원의원, 연방상원의원, 주지사 등의 경험을 통해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워낙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크다보니 정치인 출신이 아닌 민간부문에서 참신한 인재를 영입하여 수혈 받으면 국민이 환호한다. 2020년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의 인재 영입을 보면 하나 같이 나름 괜찮은 인재들인데 한결 같은 공통점은 정치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점이 인기를 끄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걱정스러운 인재들이다. 아무리 죽일 놈 죽일 놈하지만 정치는 경험을 쌓지 않으면 좋은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

아무리 정치가 우리를 절망하게 할지라도 혜성처럼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줄 비정치인 출신 수퍼맨은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 말로는 좋은 정치인을 원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매력 있는 정치인, 무언가 끌리는 정치인을 원한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인기가 좋듯이 국민은 나쁜 정치인에 속아 넘어간다. 선거 때마다 마치 무슨 쇼를 하듯, 마치 이벤트를 기획하듯 민간부문에서 참신한 인재를 영입하면 젊은 시절부터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는 인재는 아예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좋은 정치인은 젊을 때부터 키워야한다. 정치에 대해 고민도 제대로 안해본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 될리는 만무하다.

진실이란 증명하기 매우 어렵기에 쇼를 하는 정치인이 득세한다. 성실해서 지루하게 만드는 정치인보다는 이벤트를 벌리며 사람을 현혹하는 배우 같은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정치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지라도 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정치다. 국민이 정치의 긍정적 에너지를 포기하면 정치는 정치인만의 리그가 된다. 덜 나쁜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절망하기 싫으면 유권자도 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유권자도 정치인도 세상도 바뀌어야 한다. 이게 연기법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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