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인격과 관계

인격 형성, 유전과 환경 영향
환경 요인 중 부모 영향이 커
억압된 분노가 가학성향 발전
???????조건없는 존중이 자존감 높여

21-1 인격의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격과 동의어로는 성격이 있지요. 또 기질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각각 personality chacter temperament입니다. 성격이나 기질은 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느낌이 드는 표현이고 인격은 후천적 성격까지 포함된 보다 넓은 표현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렇듯이 타고날 때부터 고정되고 완성된 몸·마음은 없지요. 인격도 몸처럼 성장과 발달을 거듭하지요. 죽을 때까지 변화를 겪는 것은 몸보다 마음이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자아 정체성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나를 항상 지속되는 나로 파악하는 속성을 지칭합니다만 자아 정체성이 마음 자체나 마음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자아는 인격의 중심부분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시기마다 변하여 성숙과 쇠퇴의 경과를 밟는 것 같습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구요? 예를 들어보지요. 전형적인 예로 사람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후에도 그렇고 큰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그렇지요. 보다 극단적인 예는 자식도 몰라보는 중증 치매 환자죠. 그래도 자아가 고정된 영혼 같은 것인지요?

21-2 인격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형질에 더하여 후천적 환경적 경험이 합쳐져서 형성됩니다. 수많은 연구와 관찰에 의해 쌍둥이일지라도 양육 환경이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성향으로 자라고, 모성이 박탈된 원숭이와 그렇지 않은 원숭이 사이에 행동의 차이가 얼마나 판이한지 밝혀낸 연구 등이 유전과 환경의 합작품으로 인격을 정의하게 하는군요. 인격의 성장은 뇌신경세포들의 성숙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적절한 자극과 학습에 의해 신경 시냅스(연접)가 활발하게 연결되고 신경세포들이 서로 조화롭게 손들을 잡아 연결되는 데 반해 열악한 환경에서는 신경 연결이 원활치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경 연결도 고정적으로 유전적 명령에 의해 연결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상태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은 매순간 신경 시냅스들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고 마음의 현재 상태가 신경 연접을 결정지우기도 하는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1-3 그렇다면 인격을 형성하는 환경적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최초의 기억을 살펴 보시지요.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까? 몇 살 때 기억으로 생각됩니까?

대체로 초등학교 입학 이전 기억은 거의 없고 한두 장면만 떠오릅니다. 상담치료를 해보면 5~6세 이후부터 기억하고 3~4세 이전 기억을 연상해낸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기억력과도 관계가 있지만 아주 특별한 사건인 경우엔 자세한 내용은 없이 장면만 기억해내지요. 그런데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영유아 시절의 경험이 인격 형성에 근간이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3~4세 이전은 아직 충분한 언어 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로 온 몸으로 학습하고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최초의 환경은 어머니 자궁입니다. 어머니 자궁은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보다 훨씬 더큰 의미가 있습니다. 태아에게 어머니의 자궁은 그대로 세계 전체입니다. 모태의 양수는 우주적 바다이지요. 어머니의 심신 양면의 모든 상태가 태아에게 그대로 전달되므로 인격 형성에서 가장 첫 부분은 임신한 어머니의 심신 상태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임신이 원한 임신이었는지 원치 않은 임신이었는지, 우발적 임신인지 간절한 마음으로 임신한 것인지, 강간과 같은 재난에 의해 임신하였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요? 임신 10개월 동안에도 엄마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부부가 끊임없이 불화하고 속을 태웠는지…시부모와 갈등 상태였는지 아닌지에 따라 태아를 생명체로 보고 대화하고 다독여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언행을 조심하는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부모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21-4 출산도 중요합니다. 난산이었는지 순산이었는지, 아들을 원했는지 딸을 싫어했는지, 주위에서 환호하고 축복하였는지 그 반대였는지…출산은 어떤 심리적 의미가 있을까요? 태아가 엄마의 자궁을 떠나 첫 일성은 울음입니다. 신생아의 울음은 어떤 울음이라 생각하십니까?

자 눈을 감고 갓 태어난 신생아의 심정이 되어보실까요? 어떠십니까? 잘 모르시겠다구요? (웃음) 그럼 상상력을 동원해보시지요. 아주 두렵다구요? 예... 막막하고 외롭고 춥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따뜻하게 유지된 온도에서 혼자 분리된 아이는 호흡도 태식에서 공기로 호흡해야 되고 먹는 것도 자동적으로 공급되던 완벽한 상태에서 불만스런 수동 상태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 세상이 완전히 뒤바뀐 충격을 받는 거지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첫 괴로움- 태어남의 고통(生苦)입니다.

21-5 출산의 심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출산, 태어남은 어머니에게 완전 기생된 상태에서 벗어나 분리 독립을 처음 시작하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인격의 발달이란 그런 의미에서 자립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홀로 서기도 만 일 년이 지나야 되고 정신적·경제적·사회적 자립까지 되려면 20~30년 경과해야지요? 물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립하지 못하고 늙어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요. 열 달이나 배안에 무겁게 안고 키운 아이를 출산한 엄마의 심정은 또 어떨까요? ‘아 이렇게 힘들고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내가 저렇게 훌륭한 아이를 낳았다니’라는 경외감과 뿌듯함, 사랑의 마음이 샘솟는 엄마와, ‘아 저 아이 땜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저 아이가 아니었다면 파혼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애물단지구나’하고 원망하는 엄마도 있지요? 또 한편으론 이와 같은 설레임이나 행복과 불안 걱정 불만의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갖는 산모도 있겠군요. 이런 양가감정은 산후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임신 중에 인공유산을 고려해본 엄마는 더욱 죄책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수 있겠지요. 지워버릴 생각을 받은 아이도 민감하게 몸에 입력하여 훗날 이유를 알 수 없는 반항과 부정적인 모자관계로 나타나게 됩니다.

21-6 허용적이고 자애로운 엄마도 많지만 너무 집착이 강한 과잉보호형 엄마와 너무 엄격한 과잉통제형 엄마, 방치형이나 무관심형 엄마, 나아가 모성의 부재라는 최악의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집 같은 부모 밑에서도 얼마나 많은 인격체들이 다양하게 형성될 수 있는 지 이해가 되시지요?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라도 똑같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은 최초의 세상인 부모와의 관계 방식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대하는 그대로 아이도 모방하고 학습하여 세상을 대하게 되지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이것을 웅변합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형질만 물려받는 게 아니라 관계방식마저 물려받습니다. 부모와 관계에서 아이는 세상을 안전하게 항해할 최초의 추진력을 얻게 되는 데 그것은 신뢰입니다. 내가 항상 뭔가 필요하고 불편할 때 그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수용해 주는 부모로부터 깊은 안도감과 믿음이 생기지요. 이것을 기본 신뢰(basic trust)라 부르지요. 이런 기본 신뢰가 확고한 아이는 자아 존중감이 높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자신을 비하하는 자존감이 극히 낮은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순종만을 바라면 어떻게 될까요. 간섭과 나무람이 지나치겠지요. 조금만 울어도 나쁜 아이요 부모를 괴롭히는 아이라면 아이가 자유롭게 울지도 못하고 숨죽여 눈치를 살피게 되겠군요. 이런 아이는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의존하거나 지배당하고 소유당해야 편함을 느끼면서 자기 결정을 못하고 중요한 인생 고비마다 힘들어서 신경증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억압된 분노, 적개심 등 불편함으로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 자해 아니면 공격적이고 가학적으로 상대를 지배하려 들거나 조종하려들기 쉬워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게 됩니다.

21-7 이와 같이 아이가 세상과 맺는 관계방식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데 그것은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되고 부모의 관계 방식은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가족에 특징되는 성향이 대물림되지요. 이를 불교에서는 업의 상속이라고 표현하지요. 윤회라는 게 얼마나 과학적인 것인지요. 인과의 깊은 의미를 맛볼수록 윤회는 신앙적 개념이 아니라 자연 법칙 그대로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감시하고 통제하는 부모가 될 것인지 허용하고 격려하는 부모가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사랑도 조건부 사랑이 아닌 조건없는 사랑이요 존중이어야 아이를 독립적이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울 수 있겠군요.

21-8 상담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은퇴한 노신사는 돈도 부족하지 않고 자식 걱정도 없는데 마음에 평화를 얻지 못하면 죽어도 한이 많을 것이라면서 울먹입니다. 어려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깊은 분이지요. 아버지는 오랜 병환으로 사랑을 줄 수 없는 상태였고 어머니는 호랑이같이 억척스럽고 무서운 분이어서 칭찬 한 번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형제들로부터도 구박만 받고 자라 너무 위축되고, 순하다보니 친구들도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았지요. 아내도 장인도 모두 강하여 못나고 부족한 사람으로 대하고 직장에서도 강한 상사나 동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아픔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답니다. 정신분석치료도 받고 선수행도 열심히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아 도무지 대인관계가 편하지 않다 하였지요.

그런데 치료자의 조용한 귀 기울임과 상담 시간 내내 거의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거나 권고 한마디 하지 않는 치료자를 처음엔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피곤하겠다며 동정을 표하기도 하더니 마침내 치료자의 고요하고 따뜻한 침묵이 자신을 크게 깨우쳐주고 신뢰를 주었다며 고마워하였습니다. 그동안 다른 상담가와 선원에서 들은 것들이 정리되고 통합되는 시간이 되었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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