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는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나 남편이나 부인이나 부모나 형제들 간에도
‘내가 이세상에 났으니까 내 탓이지 남의 탓을 해서 무엇하랴.’하고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로 지혜가 부풀어져서
안으로나 바깥으로나 편안하게 이끌어지고 그렇게 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탑에 관한 것이나 수계에 관한 것이 함께 첨부된 얘깁니다. 수계에 관한 건은, 우리가 항상 마음에서 고장난 거는 마음으로부터 해결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돼서 이 세상에 이렇게 인간으로서 등장을 했습니다. 인간으로 등장을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만이 우리가 업을 짓지 않고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녹이면서 생동력 있게 또 걸림 없이 살아나갈 수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면서 수억겁을 천차만별로 모습을 바꿔 가면서 이날까지 진화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등 동물이라는 인간으로서 이렇게 등장을 해서 살고 있는 이 마당에서 가만히 또 생각을 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육통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셨습니다. 육통이라는 것은, 이 몸뚱이가 통이 돼서 말입니다, 그 안에 천차만별의 모습과 의식들이 살고 있으니 어떻게 나 하나만이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한마음으로 더불어 같이 사는 한 개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한 몸뚱이를 한마음으로써 이끌어 나가려면 내 마음 자체를 움죽거려야 이 몸속에서 그대로 따라 준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몸속에서 그대로 따라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공부를 그대로 잘하고 나간다면 그 육신 속에 있는 생명들의 의식이 다 그대로 따라 줍니다. 그래서 한마음이 돼서 모든 것을 털구멍을 통해서 바로 나가서 조절하고 안에서 모자라는 건 작용을 해서 채워 주고 이렇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난하면 관세음이 돼 줍니다. 즉 마음을 따라서 의식이 하기 때문에 의식은 보살로 화하고, 다스리는 중심은 바로 부처님으로 화하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한생각을 하시면 의식들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가 돼서 보살로 화해서 응신이 돼서 나투어 주신다 이런 뜻입니다.

그와 같이 내 마음 쓰는 대로 이 육신 속에 있는 의식들도 따르니까, 마음공부들 열심히 해서 그대로 한마음이 돼서 들고 난다면 그것을 이름해서 보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속의 생명의 의식들을 말입니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으로서 나투신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따로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이 그대로 부처요, 그대로 법신이요, 그대로 화신 보현신이란 얘깁니다. 이게 전부 수계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크고 작은 대로 이 몸속에 유전성, 업보성, 세균성, 인과성, 영계성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여러분한테 주둔하고 있는 겁니다. 많고 적고 크고 작을 뿐입니다. 오계를 받는 데에 이것을 말을 안 해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럽니다. 지금 몸뚱이 속에 있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 주게 돼 있으니까, 내가 도둑질을 해야겠다 하면 도둑질을 하게 되고 내가 돈을 좀 벌어서 좋은 일을 해야겠다 하면 그대로 따라 줍니다. 또 자식이나 남편이나 부인이나 부모나 형제들 간에도 ‘내가 이 세상에 났으니까 내 탓이지 남의 탓을 하면 무엇하랴.’ 하고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로 지혜가 부풀어져서 바깥으로나 안으로나 편안하게 이끌어지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한생각에 따라서…. ‘아, 그까짓 술 몇 잔 먹는데 뭐 어때?’ 이러면 그대로 되는 거고, 오늘 오계를 받은 뜻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술을 약주로다 한 잔 두 잔 마시는 거는 좋지만 그거 먹으면 몸도 해롭고, 내 몸이 해로우면 식구를 전부 가난케 만들고 괴롭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고 이러니까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내 몸을 간수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식구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신다면 속에서부터 저절로 안 먹게 돼요. 그리고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한두 잔 먹는 것은 어떨 때 좋은 약이 되구요.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했죠.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바꿔지면서 그 천차만별의 모습을 가지고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진화해서 인간까지 이렇게 등장을 했는데, 어떤 부모가 내 부모 아닐 것이며 어떤 자식이 내 자식 아니겠습니까. 다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습니다. 알고 보면 수억겁을 통해서 자식이 됐다 부모가 됐다 자식이 됐다, 이게 됐다 저게 됐다 했으니 내 부모 아니 됐던 게 없고 내 자식 아니 됐던 게 없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내 자식만 내 자식이고 현재의 내 부모만 내 부모가 아니거든요. 한 철을 자식으로 또는 부모로 살면서 수없이 모였다 헤어지고 모였다 헤어져 온 것이,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고 또다시 모일 때에 인연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남의 자식이 잘못하는 걸 보더라도 ‘아, 전자에 모자랐을 때의 내 모습이로구나.’ 하고 바로 내 자식같이 생각하고 내 부모같이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한울과 같아서 지혜롭기 때문에 천지를 다 쥐고도 남고 굴리고도 남고 덮고도 남고 들고도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오계를 설하고 여러분이 지키겠다고 하는 그 대답을 아주 떡 떼어 먹듯이 잘하셨는데, 허허, 오계도 못 지킨다면…. 그리고 전자에는 오계를 설하면 “먹지 마라. 하지 마라. 죽이지 마라.” 이렇게 그냥 전체 다섯 가지가 다 “마라”로 됐습니다만, 그래도 나는 샛문을 틔워 놓지 않았습니까. “술을 마시더라도 분수를 알고 마셔라. 남을 위해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건 도둑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거를 훔치라는 게 아니고, 허허허…. 그러니까 살생을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짐승을 죽였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에 맡기고 하면 그대로 두 마음이 아니니까, 살리는 사람의 마음이나 살아난 사람의 마음이나 죽는 고기의 마음이나 전부 한마음이 돼서 고기는 고기의 허물을 벗고, 모습을 벗고 인간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이쪽에는 그 고기의 살을 약으로 먹으니 병이 나아서 좋고요. 그렇게 보시를 하는 것은 살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죽이지 마라. 하지 마라. 먹지 마라.” 이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스스로 분수를 지키면서, 스스로 남을 위하는 게 바로 자기를 위하는 거고 남이 괴로우면 나도 괴로우니까 남을 위해서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럽게 행동해 줘라 이겁니다. 가정에서 식구들하고도 다 그렇게 하라는 얘기죠. 우리가 마음으로 지은 죄를 마음으로 벗어야지 만약에 말이나 이론으로 벗으려면 벗어지겠습니까? 그러니 만날 말씀해 드리는 게 부처님이 말씀하시는데 입을 빌려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뜻을 알고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니게 열심히 하셔야죠. 부처님의 마음도 내 마음이고 부처님의 형상도 내 형상이고 부처님의 법도 내 법입니다. 그렇게 모든 거를 둘 아니게 생각하면서 배우신다면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에 직결되어 있는 줄이 우리들의 근본의 줄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전기를 방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가발전소에서 가설이 돼야 전력이 들어오죠, 가설이 돼야. 그러니까 가설이 다 돼 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줄과 우리들의 근본의 줄과 이렇게 직결이 돼 있어요. 가설이 돼 있듯이 말입니다. 가설이 돼야 불이 들어오죠? 우리는 본래 그렇게 돼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시하고 그렇게 안 하니까, 즉 우리들의 스위치를 해 놓지 않았단 얘깁니다. 전기 가설은 다 돼 있는데 스위치를 해 놓지 않았으니 이게 불이 생전 가야 들어옵니까? 그걸 누를 줄을 모르고 누르는 거를 해 놓지도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오계를 받았습니다만 바로 그 스위치를 누를 줄을 알아야 오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스위치를 누를 수 있어야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이익이 갈 수 있고 공덕이 될 수 있고, 자식들을 돌에다 세워 놔도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고, 조상을 이끌어서 건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데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대로, 오늘 오계를 받고 그대로 지키면서 공부하는 데에 따라서 요다음 생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주어지는 겁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거고,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에 또 우리가 한 철 살다가 갑니다. 금방입니다. 금방 옷을 벗고 다시 나올 때에 차원에 따라서 그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옵니다.

이 공부는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지혜롭게 물리가 터져서, 천체 물리가 터져서 우리가 해 나갈 수 있는 그 자유권 말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몰라서 그렇지 부처님께서는 기복으로 가르치신 예가 없어요. 관법으로 그대로 둘 아니게 해야죠. 즉 말하자면 현재 자기는 자(子)가 되고 과거에 살던 자기는 부(父)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부가 되고 생각을 내면 자가 되는 겁니다. 생각을 안 하면 부처고 생각을 했다 하면 법신이 되고 움죽거렸다 하면 화신, 즉 보현신이 되는 겁니다.

보현신은 뭘 하는 보살입니까? 여러분이 ‘아이, 지금 불을 켜야지. 불을 꺼야지. 부엌에 뭘 들여놨는데 나가서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면 총총 뛰어갑니다. 그죠? 그리고 가다가도 엎어지면 ‘아이고!’ 하고선 그냥 자기 손부터 벌써 갑니다. 요게 보현신이에요. 생각을 했다 하면 법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하는 법 말입니다.

진주에서도 여러분이 이 반야줄을 쥐고 가고 있습니다. 우주와 직결돼 있는 줄을 반야줄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살아생전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반야줄을 쥐고 갈 줄 알면 요다음에 죽어서도 사자가 와서 데려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보현보살들이 다 모셔 가요. 알았어요? ‘기복으로 믿어서 영 그 도리를 모른다면 차원에 따라서 모습을 가지고 나온다’ 하는 뜻은 뭐냐 하면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아무것도 모르고 의식만 알아서, 짝짓는 그 의식만 알아서 아무 데로나 들어가는 거예요. 장님이면 그래도 누가 인권해 줘야 구덩이에 빠지지를 않죠? 인권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줄이 없으니까, 줄을 잡고 가야 할 텐데 줄을 못 잡으니까 그냥 까치 둥우리 아니면 뱀 소굴, 아니면 아무 데로나 그냥 닥치는 대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차원에 따라서 모습은 주어진다 이겁니다.

하등 생물들은 촉각이나 시각 등이 발달해서 그걸로 그냥 다 살아나가지만, 우리 인간은 감각이 있으면서도 지혜가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도가 있다구요. 도심이 있어서 그런 걸로 삽삽하게 살지를 않아요. 그래서 조금 둔하죠. 인간은 큰 덩어리가 돼서 둔하다는 거죠. 그러니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닦아 나간다면 내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에도 바로, 컴퓨터를 누르면 누르는 대로 따라서 나오듯이 그렇게 된단 얘깁니다. 그렇게 난만하지 않고 그렇게 돌아치지 않고 영령들이 그렇게 헤매고 다니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탑을 이렇게 조성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스님네들이나 열반하셔야 사리탑을 했습니다. 그 사리탑을 하는 것은,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그 역할을 하면서 항상 공부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여기서 줄을 잡고 가는 분들에 한해서 이 탑에 모셔진다면 그대로, 오는 사람도 공부의 질을 높여 주고 자기도 공부를 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 탑에 들어오는 것이 아주 제일 으뜸이고, 한국의 땅덩어리가 작아서 문제가 되는 것인데 묘지처럼 흩어지고 망가질 염려가 없으니까 그것이 두 번째로 으뜸이에요.

또 여러 군데 흩어져 있지 않아서 자손들이 한 군데만 오면 조상들을 뵐 수 있으니까 세 번째로 좋은 거고, 넷째는 보통 장례를 치를 때 비용이 많이 드는데 우리는 탑 하나만 하면 대대손손이 그냥 들어가게끔 했습니다. 중들이 돈 벌어먹자고 한 건 아니니까요. 일본에서는 자식들 대에 쭉 가면서 20년간을 2천 5백만 원인가 2천만 원인가 낸대요. 그러니까 전세죠. 그런데 이거를 내고도 20년 동안 관리비가 또 들어가요. 그러면 얼마입니까. 관리비는 예외로 치고도. 어디 가나 다 관리비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20년 후에 어느 자손이 또 그 돈을 내고 그대로 계속 둘 건가 이것도 문제구요. 찾아가라 해서 안 찾아가면 아주 그냥 갖다가 버린답니다. 그것이 싫어서 난 그렇게 안 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다, 죽어서도 공부하고 다시 태어나서도 편안히 공부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다시 출현할 때에 차원에 따라 자기 모습을 가지고 나와서, 장관이 되든 대통령이 되든 뭐가 되든 하여튼 만 중생을 다 먹이고 이끌어 주면서 살 수 있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배운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말래도 자연적으로 그렇게 하게 돼요.

기계를 고치던 사람은 그거를 버리고 딴 거를 못 하듯이 도둑질을 항상 해 버릇한 사람은 도둑질하고 싶어서 딴 건 하기가 싫거든요, 배운 게 그거니까. 또 선한 일을 하고 열심히 벌어서 화목하게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버릇이 됐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하면 이가 빠진 것 같고 그래서 나쁘게 할래야 나쁘게 할 수가 없죠. 웃돈을 준다고 그래도 그렇게 못 해요. 그렇게 해 나가신다면 네 가지가 다 아주 일품이죠. 다섯째는 뭡니까? 산 사람이 공부를 하기 때문에 죽은 조상들도 공부하게 돼 있습니다. 그 부모나 자식이나 한 염주알이니까요.

예전에 법회 했던 것을 모두 비디오로 녹화해 놨으니까 여러분이 항상 여기 오셔서 또 들으세요. 한 번 듣고 나서 “아이구, 그거 한 번 들어 보니 그만하면 알겠어!” 이러지 마세요. 그냥 ‘알았어!’ 하고 머리로만 안 거 가지고는 실천으로 한 번도 옮기지 못해요. “저 사람 미쳤구나!” 하는 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야 실천을 할 수 있는 공부입니다. 나는 미친 사람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좋았어요. 무슨 세금 내란 말도 없고 치울 것도 없고 뭐, 그냥 땅바닥 딛고 다녀도 땅세 내라는 사람도 없고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디다.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오늘 이 진주에서 탑돌이를 했지만 이 무영탑이 무영탑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도 직결돼 있는 그런 탑입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탑지들이 모두가 하나하나 이 큰 탑에 다 연결이 돼 있습니다. 그 사람네들 모두를 위해서 하는 것도, 저 무영탑에서 한 번만 하면 거기서 하달을 내립니다. 즉 말하자면 우리의 두뇌에서, 대뇌 소뇌 중뇌에서 책정을 해서 하달이 되면 사대로 통신이 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도 이 몸뚱이 하나 사는 것이 한 세계가 사는 거와 같은 겁니다. 다스리는 주인공한테 모든 걸 맡겨 놔야 거기에서 책정을 내려 가지고 한순간에 사대로 통신이 돼서, 어느 공장이든지 어느 나라든지 다 통신이 돼요. 위 나라, 장 나라, 척수 나라, 척추 나라, 방광 나라, 콩팥 나라 할 거 없이 말입니다. 식도 나라까지 그냥 다 통신이 돼서 모자라는 데가 있으면 작용을 해 주게 돼 있거든요.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의학을 배우는 사람도 심성 의학을 배워야 50% 무의 세계에서 오는 거, 50% 유의 세계, 물질세계에서 오는 거, 그것들을 다 합해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그뿐이 아니죠. 모두가, 문화 문명도 그렇고 천체물리학도 그렇고 과학도 그렇고 다 그렇죠. 그러니까 먹고 사는 데만 아웅다웅하지 마시고 좀 더 넓게 생각을 하시란 말입니다. 먹고 사는 거야 라면을 먹어도 한 끼니 때우고 하루 지내고 그런 거 아닙니까. 나는요, 그저 따뜻하게 먹고 뜨뜻한 방에서 잠잘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꿉질하면서 하루 놀다가 해가 지면 소꿉질 놀던 거 다 버리고 그냥 들어간단 말입니다. 인생살이가 그것과 뭐가 다릅니까. 살얼음판을 걷고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살이요, 그렇게 한 철 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몸뚱이는 배로 비유하고 몸뚱이 속에 있는 생명들은 중생으로 비유해서 “너희는 망망대해에 배를 띄워 놓은 거와 같다. 그런데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일면 배가 뒤집힐까 봐 그냥 안달복달하고 야단들을 하는데, 그렇게 일어서서 좌우로 휩쓸리면 배가 뒤집히게 된다. 그러니 선장한테다 모든 마음들을 한마음으로 모아 주고 가만히 있으면 폭풍을 무난히 벗어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몸은 배로 비유를 한 겁니다.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고 그런다면 이 몸뚱이는 점점 망가져서 배가 뒤집히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이 “불법이 무엇인가? 불교(佛敎)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이럴 것이 없습니다. 미생물에서부터 뭐든지, 저런 나무들이든지 뭐든지 생명이 있는 건 불(佛)입니다. 저 나무들도 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러는 걸 알아서, 봄이 올 때를 기다리면서 앙당한 가지로 그냥 저렇게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저 순간에 잘될 때가 있겠지. 괜찮을 때가 있겠지.’ 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에요.

그러니까 생명은 불이요, 살아가면서 그런 걸 느끼고 알고 지혜롭게 대치해 나가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거든요. 그러니까 불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생활 자체가 그냥 불교예요. 우리 인간들만 불교가 아니라 생명들이 있는 거는 다 불교죠. 그래서 일체 만물만생이 다 불교 안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불교는 안과 밖이 없으니 둘이 아니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이 몸통 안에서 벗어나야 된다.” 하는 겁니다. 몸통 안에서 벗어난다는 뜻은요, 이 몸통 안의 모든 생명들이 내 마음을 따라 주게 해서 조복받아야 된다는 거죠. ‘아, 내가 생각하는 대로 너희들은 따라 주는구나.’ 하고 그걸 알아야 조복받은 게 되죠. 한마음으로 구성돼서 내가 생각만 하면 다 따라 주게끔 돼 있는 게 바로 조복받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권을 얻는 거구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놓으면 내가 오신통에서 벗어나서 누진으로서의 자유자재권을 얻는다 이런 말이죠. 그래 그렇게 벗어나서 자유권을 얻어야, 이 공기 주머니 안에서 벗어나야 된다 이 소립니다. 우리는 한 발짝도 공기 주머니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생각해 보셨어요?

그래서 우리 마음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게 바로 지금 현실이죠. 자기가 마음으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요. 이게 바로 줄이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컵을 들어 보이시며) 우린 지금 요런 주머니 안에서 요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요 안에서만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창살 없는 감옥이죠. 창살이 없으면서도 창살이 있다는 얘기예요. 뭐, 한번 생각해 보시면 다 아실 겁니다.

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서 한번 물건을 던져 보면 물건이 그냥 산산조각이 나고 그냥 없어져 버리죠?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여러분의 집을 한번 가 보면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이 여기에서 집에 가는 거나 저 문 바깥을 가는 거나 우주 전체를 돌아가는 거나 태양계를 가는 거나 모두 차이가 없어요. 마음이라는 건 가깝고 멀고가 없어요. 그래서 빛보다 더 빠른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보는 거죠. 빛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은 한계도 없어요. 그러니 이 광대하고 무변한 묘법을, 마음의 묘법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돼요. (중략)

사회자 이어서 수계자 여러분이 연비를 받는 순서가 되겠습니다.

큰스님 응, 참 잊어버리는 게 많아요. 나는 말이에요, 벌써 오계를 읽을 때 뭐부터 하느냐 하면 아예 꼭꼭 박아 줘요, 그냥. 나는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라 일체제불 그 천지에서 그냥 인정을 했기 때문에…, 그전에. 근데 이 팔에 불이 그냥, 지글지글지글 타면서 이렇게 됐던 게 한 10년이 가니까 없어집디다.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것도 형식이지만 그게 없다면 못 하겠습디다. 꼭꼭 박아 드린다구요. 그러니까 또 보이는 데 안 하면 무효가 되는 게, 모두 ‘아이고! 우리는 이거 연비를 받지 않았는데….’ 하고 생각을 하거든요. 보이지 않는 데서 해 준 건 모르고요. 그러니까 보이는 데서 또 해 드려야죠, 둘 아니게. 그럼….

(이어서 연비 의식이 진행됨)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6년 2월 11일 국내지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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