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미얀마 민담을 아시나요?

미얀마에는 한국 ‘콩쥐팥쥐’ 이야기와 비슷한 형태의 민담이 전해지는데 ‘큰 거북이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미얀마인들은 이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몸소 새긴다.

나라간 차이 허무는 이야기
계모 괴롭힘에 의한 악업을
부처님 가르침 통해 풀어내

삶 속에 습합된 가르침 덕에
일상서 선한 언행 항시 실천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을 휩쓸면서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했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요소 중의 하나는 ‘스토리’였다. 또 기생충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영어로 번역한다면 원작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얀마에서도 기생충이 오스카 수상기념으로 JCGV에서 개봉을 했었다.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기생충의 스토리에 공감을 하고 극찬을 보냈다. 유명한 미얀마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인플루언서들은 기생충 작품에 대한 찬사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 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짜파구리(짜파게티라면+너구리라면)’를 만들어 먹고 싶은 미얀마 사람들이 많아져서 유명 미얀마 마트에서는 ‘기생충 라면세트’로 짜파구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따로 묶어 팔았었다.

‘이야기’는 나라의 국경선, 인종, 문화적 차이를 단 한번에 허물어 버린다. 미얀마에서 한국의 무수한 드라마와 영화는 이미 미얀마 국내 컨텐츠보다 훨씬 많이 미얀마 국민들에게 소비되고 있다.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은 양곤대학교 22명 대표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한국과도 같은 소프트 파워를 가져야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한국의 컨텐츠는 이미 미얀마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가까운 존재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자마자 ‘전하! 아니 되옵니다!’라며 대성통곡을 하는 한국 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 택시 기사님을 쳐다보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가 사극이라 늘 운전 할 때마다 틀어 놓는다고 했다.

우탄트 UN 전 사무총장의 손자인 우탄민 박사가 SNS에 게재한 한국영화 ‘기생충’ 추천글.

국경을 넘어 각 나라의 문화적인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문화적인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과거의 ‘민담’을 살펴보면 현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 플랫폼도 없고 비행기도 없던 과거에도 이야기는 돌고 돌아 각 나라의 맞게 변형되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별주부전’의 근원을 찾아보면 인도의 불전설화(佛典說話)에서 기원한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민담의 구조도 있다. ‘계모형’ 구조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에 맞게 변형되어 각 나라의 비슷한 이야기 형식으로 존재한다. 계모형 구조의 전형적인 특징은 계모가 착한 전처의 딸을 괴롭히는 악인의 전형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반대로 전처의 딸은 선인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줄거리의 주된 구조는 계모가 착한 전처의 딸을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전처의 딸은 선한 마음을 갖고 훗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미얀마에도 우리나라의 ‘콩쥐팥쥐’와 비슷한 ‘큰 거북이 이야기’가 존재한다.

‘큰 거북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혜롭지 못한 아버지의 판단으로 인해 주인공인 아응애조응의 친어머니가 사망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들어온 계모와 계모의 딸이 전처의 자식인 ‘아응애조응’을 괴롭혔다. 우연히 해변가에서 만난 거북이를 어머니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거북이를 만나면서 아응애조응은 점점 밝아졌다. 아응애조응의 행복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계모와 그녀의 딸은 계략을 통해 거북이를 죽인 후 아응애조응을 다시 불행하게 만든다. 아응애조응은 계모와 그녀의 딸이 거북이를 먹고 난 뼈를 모아 땅 속에 심었고 그곳에는 황금나무가 자랐다. 이 황금나무를 본 임금님은 아응애조응의 효심에 감동하여 결혼하였다. 결혼 후 계모와 그녀의 딸은 아응애조응의 왕비 자리를 뺏기 위해 음모를 꾸민 후 그녀를 죽였다. 그 후 왕에게 접근하지만 환생한 아응애조응을 통해 음모가 드러나면서 계모의 딸은 죽게 된다. 그리고 왕은 이 시체를 갈기 갈기 찢어 젓갈을 만든 후 계모에게 보낸 후 먹게 하는 잔인한 벌을 내린다.”

미얀마에서 민담을 전할 때, 단순히 줄거리 낭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어떤 점을 찾을 수 있는지 어른과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준다. 필자와 함께 미얀마 사람들이 ‘큰 거북이 이야기’ 속에서 부처님의 어떠한 가르침을 느끼고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지 함께 알아보자.

“아응애조응의 부모님은 생선을 잡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도 생선은 잡히지 않아 아응애조응의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맛있는 생선요리를 해주지 못 할까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생선 한 마리가 잡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건 우리 딸을 줘야해서 팔면 안돼요’라고 했다. 얼마 후 생선이 또 한 마리 잡히게 되었다. 그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이것도 우리 딸을 줘야 해요. 아무도 이건 건드릴 수 없어요’ 라고 하자,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 하고 아내를 바다로 밀어버렸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아응애조응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계속되는 재촉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아내를 바다로 밀어 죽게 했다. 불교에서는 삼독(三毒)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삼독이란 탐(貪)·진(瞋)·치(癡)를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순간의 진(瞋)을 표출하여 자신의 아내를 죽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또한 그녀의 친어머니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지혜롭지 못하게 끊임없이 재촉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은 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처님의 말씀대로 함부로 화를 내지 말고, 어리석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재촉하지 말라’는 교훈을 이야기 해준다.

미얀마 강가에서 일하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

일상생활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미얀마 사람들은 화내는 것을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어른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또한 미얀마 사람들은 어떤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난 후, 결과에 대해서 재촉하지 않는다. 자신이 부탁한 사람이 들어 줄 수 없는 어떠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 후 다른 사람을 찾아본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화를 모른 채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거나, 생활을 하게 되면 한국식으로 미얀마 사람들을 부정적인 쪽으로 오해하게 된다.

“아응애조응은 해변에 나와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때 늙은 거북이 하나가 그녀를 향하여 헤엄쳐 왔다. 거북이를 보니 그녀와 똑같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거북이가 자신의 어머니의 환생이라 생각하고 꼭 껴안았다. 그 후로 날마다 아응애조응은 해변으로 나와 해질녘까지 거북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 서로 현생에 지은 인연의 고리를 통해 다음 생에 다른 인연 관계로 만나 ‘재회’하게 된다. 미얀마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나쁜 행동과 말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생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감정이 있더라도 오래 마음 속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하는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기에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면 전생의 인연이라고 생각하여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진심을 다해 잘 해준다.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계모형 구조에 미얀마 문화의 근본인 불교적 가르침을 담아 ‘큰 거북이 이야기’가 탄생되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밌는 이야기로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자신의 삶에 실제로 적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얀마가 아직 개방 된지 얼마 안 돼서 “심성이 착하다”고 이야기한다. 미얀마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아직 부유하지 못 해 착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선량한 것이다.

연꽃이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얀마 사람들처럼 삶 속에 적용하다 보면 우리도 그들처럼 선량한 마음을 연꽃과 같이 피울 것이다. 미얀마에 여행 오거나, 거주하거나, 사업을 할 때 우리와 같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잠시 한 번 곰곰이 부처님 법을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아직 가슴 깊숙이 용서하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생에 귀한 인연을 위해 현생에서는 부정적인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길 바랍니다. <양곤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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