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불염착경(不染着經)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의 일이다. 한 청신녀(淸信女)가 청화 스님께 “진달래가 참 아름답게 피었네요”라고 하니, 스님께서 “네 아름답습니다”고 하셨다. 진달래꽃 풍경에 흠뻑 취한 청신녀가 한마디 말만으로는 감흥 표현에 미진하였던지 “진달래가 너무 아름다워요”를 두세 번 되풀이하였다. 물끄러미 청신녀를 바라보시던 스님께서 “수행자는 아름다움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고 말씀하셨다.

해마다 봄이면 앞뜰에 나리 몇 그루가 새 싹을 틔운다. 나리대가 부쩍 자라 6~7월에 꽃봉오리가 맺히면, 매일 이른 아침에 뜰에 나가 꽃이 피었나 살피게 된다. 꽃봉오리가 맺혔다고 며칠사이에 금방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니, 이제나저제나 꽃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조바심마저 일어난다. 봉오리 맺히고 한참 지나 꽃봉오리의 초록색이 옅어지고 붉은 색조를 띄고도 며칠을 기다려야 꽃이 피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아침 기대를 가지고 살피게 된다. 꽃봉오리는 봉오리대로 아름답건만, 피어나는 꽃을 보려는 기다림과 조바심은 해가 바뀌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들 범부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에 염착[染着ㆍ물들어 집착함]하여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지내다가 만일 그 빛깔이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거나 완전히 소멸하게 되면 곧 큰 괴로움을 느낀다. 눈으로 보는 색(色)뿐 아니라, 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의 대상인 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법(法)에 염착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며 지내다가 그 법이 무상하여 변역(變易)되고 멸진(滅盡)하게 되면 사람들은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여래는 색(色)과 색의 원인[色集]·색의 소멸[色滅]·색의 맛들임[色味]·색의 근심과 재난[色患]·색에서 벗어남[色離]을 사실 그대로 안다[如實知].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색에 대해서 다시는 염착하거나 사랑하고 좋아하여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그 색이 변역되고 무상하여 멸진하게 되더라도 곧 즐거움에 머무른다. 소리·냄새·맛·감촉·법에 대해서도 그 원인과 소멸과 맛들임과 근심과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다시는 염착하거나 사랑하고 좋아하여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그 대상이 변역되고 무상하여 멸진하게 되더라도 곧 즐거움에 머무른다.

왜냐 하면 눈[眼]과 색(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眼·色·眼識의 三事]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을 인연하여 괴롭거나[苦] 즐겁거나[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不苦不樂] 세 가지 느낌[三受]이 있게 된다. 이 세 가지 느낌의 원인[受集]과 느낌의 소멸[受滅]·느낌에 맛들임[受味]·느낌의 근심과 재난[受患]·느낌에서 벗어남[受離]을 사실 그대로 알아 그 색(色)을 인연하여 장애가 생길 때 장애를 완전히 없애고 나면 그것이 ‘위없이 안온한 열반[無上安隱涅槃]’이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뜻[意]과 법(法)을 인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고 (意·法·意識의) 삼사(三事)가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을 인연하여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게 된다. 그 느낌의 원인·느낌의 소멸·느낌에 맛들임·느낌의 근심과 재난·느낌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안 뒤에 그 법을 인연하여 장애가 생길 때 그 장애를 완전히 없애고 나면 그것을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고 한다.

이상은 〈잡아함경〉 13권 308번 불염착경(不染着經)의 내용으로, 요약하면 범부중생은 무상하여 변역되고 멸진하는 대상에 염착하여 애락(愛樂)하다가 대상이 멸진하면 큰 고통을 느끼지만, 여래는 무상한 연기법(緣起法)을 알아서 6근과 6진과 6식의 삼사화합으로 인한 촉수(觸受)에 염착하지 않으므로 대상이 멸진하여도 무상안온열반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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