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스님·茶人들이 묘사한 차와 수행 세계
[박동춘]스님·茶人들이 묘사한 차와 수행 세계
  •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10.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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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려시대 다도의 정수

차는 體·물은 用으로 상징
다도의 과정은 몰입과 절제
태고보우스님, 찻물 끓이는
긴장감을 茶詩로 표현 키도
이색, 차 마신 후 변화 서술
차의 일미(一味)는 차를 다루는 승려의 삼매수(三昧手)로 드러냈는데, 이를 위해 좋은 차와 차의 색, 향, 기(氣), 미(味)의 정령을 드러낼 샘물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고려시대 가루차 격불을 재현한 모습
차의 일미(一味)는 차를 다루는 승려의 삼매수(三昧手)로 드러냈는데, 이를 위해 좋은 차와 차의 색, 향, 기(氣), 미(味)의 정령을 드러낼 샘물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고려시대 가루차 격불을 재현한 모습

고려시대 문인들의 음다 풍속은 승려와 관련이 깊었다. 승원에서 베푼 명전(茗戰) 놀이는 차 문화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든 유희요, 풍류였다. 그러므로 명전엔 당대의 명사들이 초대되어 차 자리를 더욱 서권기(書卷氣)가 있는 고상한 아회(雅會)의 품격을 만들어냈다.

차의 일미(一味)는 차를 다루는 승려의 삼매수(三昧手)로 드러냈는데, 이를 위해 좋은 차와 차의 색, 향, 기(氣), 미(味)의 정령을 드러낼 샘물이 있어야 한다. 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에 의해 현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를 체(體)라 하였고, 물은 용(用)이라 하였다. 차를 즐길 때 차와 물 이외도 중요한 건 불이다. 옛날엔 숯불을 피워 센 불(武火)과 약한 불(文火)을 조절하여 물을 끓였으니 이는 문무화(文武火)의 조화로 차를 다루기에 알맞은 끓인 물을 얻었다. 그러므로 찻물을 끓이는 정황을 묘사한 시문이 유독 많은 것이다. 차의 일미(一味)는 차를 마시는 주체인 자신과 차를 다루는 전 과정에서 몰입과 절제가 필요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다도의 정수는 물을 끓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하겠다.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쓴 〈상당(上堂)〉은 깊은 밤, 질화로에 차 다리는 정경을 노래한 것으로, 물을 끓이는 정황의 긴장감을 이렇게 노래했다.

남쪽 성곽 아래 집을 빌려(借屋南城下)
거하게 취해 취향(醉鄕)에 누웠더니(陶然臥)
홀연 천자의 조서가 내려왔기에(忽聞天子詔)
열불 마치고 빈 항아리 마주하네(祝罷對殘缸)
싸늘한 추위 뼈에 사무치고(凜凜寒生骨)
싸르락거리며 눈발이 창을 두드리네(蕭蕭雪打窓)
깊은 밤 질화로 숯불에(地爐深夜火)
차 끓자 차향기가 다관을 뚫고 피어나네(茶熟透香)

윗글은 태고화상의 문집 〈태고화상어록〉 권 상에 수록되었다. 태고의 명(名)이 보우이고 태고가 그의 법호다. 13세 되던 해 양주 회암사 광지(廣智, 1102~1158)에게 삭발염의(削髮染衣)하였고 호주 하무산 석옥 청공(石屋 淸珙)에게 법을 받은 것은 1346년경이다. 이듬해 귀국하여 우리나라 임제종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용문산 소설암에서 수행하던 그에게 공민왕이 법을 물었는데, 그를 왕사로 삼아 구산(九山)을 통합하여 일종(一宗)을 만들게 했지만 완수하지 못하고 다시 소설암으로 돌아왔다.

한때 신돈(辛旽)의 질투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던 그가 고려 말 사원에서 차를 향유하는 풍모를 살펴볼 수 있는 ‘상당’이란 시를 지었다. 이는 선승의 차 생활을 엿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구나 그가 차를 끓이는 선방의 정황을 담담하게 그렸다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그가 “거하게 취해 취향(醉鄕)에 누웠더니(陶然臥)”라고 한 구절에서 취향(醉鄕)은 바로 당나라 왕적(王積)의 ‘취향기(醉鄕記)’에서 그가 그려낸 가상세계이다. 바로 편애와 증오, 즐거움과 분노가 없는 이상세계를 그려냈다.

이런 이상의 세계는 고려의 문인 김극기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유감(有感)’에서 “만약 취향에 들어가지 않는다면(若非入醉鄕)/ 어느 때나 구속과 핍박이 그칠까(拘迫何時休)”라고 읊은 것이 그렇다. 그러므로 태고화상의 시에서 그린 세계는 차별이 없는 부처님의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천자가 그에게 보낸 칙서는 아마 공민왕이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묻기 위해 칙서를 내려 그를 가까이 두고자 했던 것이니 왕사로 책봉한 일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구나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밤, 다관을 뚫고 나온 그윽한 차 향기는 선방을 가득 채웠을 터이다. 바로 선승의 일상은 이처럼 일미선이 구현된 공간이며 그야말로 불성이 자재(自在)한 시공간(時空間)일 것이다.

예부터 찻물이 끓는 소리를 송풍(松風)으로 은유했다. 물 끓는 소리와 차 향기, 그리고 선방과 선승이 어우러져 펼치는 차의 세계는 자재(自在)함 그 자체이다.

한편 이색(李穡 1328~1396)의 ‘차를 마신 후 감회를 읊다(茶後小詠)’는 차를 마신 후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은 병에 맑은 샘물을 길어다가 (小甁汲泉水)
오래된 묵은 솥에 노아차를 다리니(破烹露芽)
귓속이 갑자기 맑아지고(耳根頓淸淨)
코끝엔 신령한 기운 통하노라(鼻觀通紫霞)
잠깐 새에 흐린 눈이 밝아져서(俄然眼淸消)
외경에 조그만 티도 보이질 않네(外境無纖瑕)
혀로 먼저 맛보고 목으로 삼키니(舌辨喉下之)
기골은 바로 평온해지고(肌骨正不頗)
방촌의 마음 신령하여(靈臺方寸地)
또렷한 생각, 삿됨이 사라지누나(皎皎思無邪)
어느 겨를에 천하를 언급하랴 (何暇及天下)
군자는 의당 집을 바로 해야 하거늘(君子當正家)

앞의 글은 ‘목은시고’ 권6에 수록된 시다. 작은 병에 길어 온 샘물은 차를 끓이기에 손색이 없는 명천(名泉)일 터. 이 물은 차의 신묘한 세계를 온전하게 드러낼 것이다.

더구나 노아차처럼 명품의 차를 오랜 세월 사용했던 묵은 솥에 끓인다고 하니 이 솥은 그가 늘 찻물을 끓였던 익숙한 다구이다. 좋은 물과 차, 그리고 그에 적합한 다구(茶具)까지 모두 갖춘 이색의 차 살림은 소박하고 검소한 듯 하지만 차의 본령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춰야 비로소 나타난다.

이렇게 잘 다린 차를 마신 후 그가 느낀 몸의 변화는 바로 귀가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끝에 전해진 차향을 자하(紫霞)라 노래했다. 바로 자하 신령한 기운을 말한다. 그러니 이는 코끝에 전해진 차의 싱그럽고 환한 난향(蘭香)이 심폐로 퍼지면 이미 온몸과 마음은 청정 그 자체로 속세의 여진(餘塵)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그러므로 밝은 눈으로 본 대상은 편견과 불평등이 사라졌고, 대상 그 자체로 본다는 것이니 바로 정견(正見)을 실현한 것이다. 더구나 혀로 차 맛을 느끼고 이어 목으로 넘어가는 향기로운 차는 사람의 심신을 변모시키는 에너지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니 몸과 마음 어느 구석도 불평등과 편견, 아집, 아상(我相)이 사라졌으니 “또렷한 생각, 삿됨이 사라지누나(皎皎思無邪)”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를 향유하는 까닭이며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로부터 얻는 공력(公力)인 셈이다.

그러므로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沖止, 1226~1292)는 ‘병중언지(病中言志)’에서 차를 즐기며 수행하는 승려의 걸림 없는 삶을 노래했다.

승방에 일없어 고요하니(一室靜無事)
세상이야 어지럽든 말든(任他世亂離)
나이 들자 이내 게을러지고(年衰更懶散)
병이 깊어 노는 일도 귀찮네(病久謝遊嬉)
텁텁한 차는 갈증을 해소할 만하고(茗聊씞渴)
향기로운 푸성귀 요기하기 족하네(香蔬足療飢)
이런 깊은 맛을(箇中深有味)
장차 아는 이 없어 좋아라(且喜沒人知)

위의 글은 ‘원감국사가송’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수행자의 소박한 삶과 음다의 중요성을 잘 서술한 다시(茶詩)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원감국사는 어떤 수행을 실참(實參)했던 인물이었을까. 그의 속명은 우원개로 북암노인이라는 자호를 썼다. 초명(初名)은 법환, 뒤에 충지로 개명했다. 출가하기 전 경서(經書)를 읽어 사원시(司院試)를 마쳤고 춘위(春)에 나아가 장원한 것은 그의 나이 19세 때이다.

금직옥당(禁直玉堂)에도 올랐던 관료로, 29세 때 원오국사 극근(圓悟國師克勤)에게 출가했고 후일 수선사의 6대 국사가 된 수행자이다. 그가 차를 마시며 수행했던 행선(行禪)의 여정이야 말로 다 헤아릴 수 없겠거니와 수행자의 넉넉한 살림살이를 잘 나타낸 〈병중언지(病中言志)〉는 수행자의 다시로는 더할 나위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텁텁한 차는 갈증을 해소할 만하고(茗聊씞渴)”라고 한 말은 이미 좋고 나쁨이란 분별심이 사라진 수행의 경지를 그린 듯하며 욕심이 사라진 수행의 참맛은 먹는 행위마저 자재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그는 “향기로운 푸성귀 요기하기 족하네(香蔬足療飢)라고 노래했으리라. 이런 걸림 없는 삶이란 불가뿐 아니라 도교의 이상에서도 유가의 유생들이 실현하고 싶은 동경의 세계였다. 이는 수행자나 독서인(讀書人), 그리고 신선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공통된 열망이며 동경의 세계였다. 그런데 그가 ”이런 깊은 맛을(箇中深有味)/ 장차 아는 이 없어 좋아라(且喜沒人知)“고 하였다. 그가 말한 이 뜻을 꼼꼼히 생각하며 화로에 찻물을 올려야 하리.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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