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불논단] 잊혀진다는 건 쓸쓸하다 
[현불논단] 잊혀진다는 건 쓸쓸하다 
  • 주경 스님/ 수덕사 부주지
  • 승인 2020.10.13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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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연로해 증조부묘 납골키로
속가 형제와 선산·토지 처분 결정 
자랐던 고향의 흔적 사라짐 ‘섭섭’

〈열반경〉 자주 나오는 ‘靈地’ 용어
부처님, 영지에 주로 머물며 포교

영지는 고향이자 역사이며 집이다
아파트가 고향이 되어버린 시대에
다음세대는 어떤 영지서 번영할까

올해 초에 조상님의 납골 관계로 작은 형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산소를 오르는 산길이 거칠고 험해서 앞으로는 증조부모님의 묘를 돌보기 어려우니 화장을 해서 납골로 모시면 어떨까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시골의 산과 토지들도 처분 가능한 것은 처분해서 정리하도록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하였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렇게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고 자라온 고향의 흔적들이 사라져가는구나’라는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적지 않았지만, 현실은 또한 현실인 것. 가족들 중에 누가 고향으로 돌아가 살면서 지킬 사람도 없고 맡길 사람조차도 없는 상황이 직면한 현실인 것이다.

몇 년 전 인근에서 상당한 부농이었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대를 이어 내려온 가문이며 농지와 주택, 조상의 묘소들이 있었다. 자녀들은 다들 총명해서 대학공부를 마쳤고 외지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남겨진 부인은 치매로 시골에서 혼자 살 수가 없었다. 그 자녀들이 모두 모여서 논의를 했고, 결국 어머니를 자녀들 중 한 명이 모시기로 하고, 그 토지와 주택을 모두 처분하여 나누기로 하였다. 지역에서 제법 단단한 기반을 가졌던 한 가문이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과 그들 자녀들에게 토지와 역사로 전승되어 온 조상과 고향은 기억에서조차 점점 사라져 갈 것이다. 

〈열반경〉을 읽다보면 ‘영지(靈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밧지족의 영지, 베살리의 영지들, 보가나가라의 영지 등 부처님께서는 영지에서 주로 머물며 지내신다. 부처님께서 거쳐 가는 마을 이름들도 여러 곳이 나열된다. 베살리, 반다 마을, 핫티 마을, 압바 마을, 잠부 마을, 보가 나가라 등 당신이 이전에 지내셨던 기억들과 마지막 발길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기록되어있다. 

‘아난다여! 베살리 마을은 좋은 곳이다. 우데나 영지는 좋은 곳이다. 고타마카 영지는 좋은 곳이다. 삿탄바 영지는 좋은 곳이다.’ 

영지는 신불(神佛)의 영검이 있는 신령스러운 땅이라는 뜻이다. 대대로 마을을 지켜온 조상신과 토지신, 산신 등의 신령과 불보살님과 같은 성현들께서 머물고 지내신 땅이 바로 영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영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밧지 족이 그들의 성 안팎에 있는 밧지 족의 영지를 경애, 존중, 숭배하고 공양하며, 아끼고 봉납 드리는 적합한 제식을 폐지하지 않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밧지족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

2500년 전 부처님께서 지나치셨던 그 마을과 영지의 이름들이 아직도 분명하고 〈열반경〉을 읽는 불자들의 가슴에 선명한 영상으로 떠오른다. 영지는 고향이다. 조상의 혼이 서려있고 그 역사가 녹아있는 마을이며, 토지이며, 무덤이며, 집이다. 

우리 세대까지는 아쉽지만 조상이 살아온 마을이름과 토지를 지켰으며 그 조상의 역사와 흔적을 안고 살아왔다. 그 힘으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세대는 어떠할까! 산부인과를 고향으로 알고 아파트 동과 호를 마을로 알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어떤 영지에 의지해서 쇠망하지 않고 번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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