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유학 본체론에 불교 핵심 수용
불교사상, 송대 이학(理學)에 큰영향
가장 근본적인 이(理)는 하나의 태극
왕양명, 불교논리와 선종 사상 융합
삼본체·양지본체론, 선종과도 비슷

그림, 강병호

 

송명시대는 선종이 범람하면서, 유학자들도 잇달아서 불교의 핵심이론 및 사상을 받아들였다. 특히 전통유학의 형이상학적인 본체론의 구축에 대해서 특색을 갖춘 이론 및 사유형태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교적 영향이 컸던 사상체계로서 장재(張載)의 기본론(氣本論), 정주(程朱)의 이본론(理本論), 육구연(陸九淵)·진헌장(陳獻章)·왕양명(王陽明) 등의 심본론(心本論)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주희의 철학적인 이론체계가 가장 완벽하다고 하며, 원대로부터 정주이학(程朱理學)은 관방의 기본적인 의식형태로 정의되면서, 명대에 이르러서는 점점 형식에 치우친 위선 및 교착상태로 정체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안으로 풍부하게 비축했던 사상적 범람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점차 생기를 잃어 갔다.

송대의 이학(理學)은 불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화엄사상 및 선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 점은 중국사상사에서 이미 공론화된 관점이다. 이학이 화엄사상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은 아니고 바로 선학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특히 선학의 각 파 가운데서 화엄사상과 가장 근접해 있는 조동선이 그 예가 된다. 특히 그 가운데서 정주이학(程朱理學)의 많은 학설적 관점은 조동선의 ‘편정회호(偏正回互)’와 유사한 이론의 흔적이 많다. 정이(程?)는 〈정씨이전서(程氏易傳序)〉에서 “은미(隱微ㆍ미묘)에 이르는 것은 이(理)이고, 현저(顯著ㆍ뚜렷하다)에 이르는 것은 상(象)이지만, (이것은) 체용일원(體用一源)으로 현저(顯著)한 사물과 미묘(微妙)한 사물 간의 관계는 불가분이다”고 했는데, 여기서 ‘미(微)’는 곧 유은(幽隱), 미묘(微妙) 등의 뜻이고, 현(顯) 명현(明顯)은 현저(顯著)의 뜻이다. 즉 정이는 미묘한 이(理)와 현저한 상(象)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틈새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무형의 이(理)는 물상(物象)을 통해서 그 의의(意義)와 공능을 현시(顯示ㆍ뚜렷하게 나타나 보이는 것)했으며, 유형지물(有形之物)은 무형의이(無形之理)에 근본을 둔다는 것이다. 정이(程?)의 이러한 사상적 논리체계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화엄사상인 사법계의 이사(理事)관계, 선종에서 미오(迷悟) 범성(凡聖) 내지 진망(眞妄) 본말(本末) 동정(動靜) 등의 대립적 구조를 통한 불이(不二)관계인 체용일체와 너무도 흡사하다.

한편 정이가 말하는 ‘체용일원(體用一源)설’은 바로 조동선의 ‘편정호회(偏正回互)’ 학설의 핵심인 ‘오위군신(五位君臣)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오위군신(五位君臣)설’은 바로 체(본질ㆍ理)와 용(用ㆍ현상, 사물ㆍ事)의 원융한 통일을 가리키며, ‘군신합도(君臣道合)설’의 이상 경계를 실현한 것이다. 곧 ‘체용일원(體用一源)’은 체용관계의 통일을 말하며, 곧 즉체즉용(섦體섦用)으로, 체(體)를 여읜 용(用)이 없으며, 용도 또한 체를 여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화엄에서 이사상즉(理事相卽)인 불가분의 상관관계와 같은 맥락의 논리이다.

주희가 제시한 체용일원(體用一源) 및 이일분수(理一分殊)는 일이(一理)와 만물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명제이다. 사상적 근원은 화엄사상 및 선종에서 기인했다. 즉 이법계(理法界)와 사법계(事法界)를 설할 때 이(理)는 전변(全遍ㆍ전체), 사(事)는 분변(分遍ㆍ부분) 이다. 이른바 이이분수(理一分殊)는 천지간에 하나의 이(理)가 있다고 설하면서, 이(理)는 천지 만물 간에 능히 체현(구체적으로 이루어진 형상 혹은 물체)할 수 있으며, 곧 각각 개체인 하나하나의 사물 속에 자기만의 고유한 이(理)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희는 이러한 관점을 태극(太섐)설을 가지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즉 가장 근본적인 이(理)는 다만 하나의 태극(太極)이며, 태극은 하나의 완정된 총체이기 때문에 분할하거나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없다. 만물은 그저 태극이 분별한 총체의 체현일 뿐이다. 이른바 “각각의 사물에 하나의 태극이 있다(物物有一太極)”는 학설이다. 즉 모든 사물의 존재 근거는 태극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송대의 유학과 불교 발전 및 형성 과정에 관한 역사적인 흐름과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송ㆍ명대 유학의 기본적인 사상은 전후로 해서 형성된 장재(張載)의 기학(氣學), 정주이학(程朱理學ㆍ이정과 주희)과 육왕심학(陸王心學ㆍ육구연과 왕양명) 등 삼대 유파가 있다. 송명이학의 심성론 형성과 발전에서 이학은 각 시기의 발전과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북송시기의 다양한 학술활동 또는 조정에서 다량으로 배출한 유학자들도 한몫 했다. 불교방면에서 오대 송 초 때 법안종 선사인 영명 연수의 삼교일치의 주장은 선구자적 안목으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불교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선교일치 선정일치(禪淨一致) 및 삼교일치의 사상이다. 이후 사상계는 서로 앞을 다투어 삼교일치를 주장했다.

주희가 주장한 성즉리(性섦理)와 왕양명이 주장한 심즉리(心섦理)가 기본적으로 같지 않다. 곧 “성즉리(性섦理)에서 이(理)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곧 각자의 사물이 이(理)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심즉리(心섦理)에서 이(理)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사람의 심중에 있다고 한다. 성즉리(性섦理)는 심(心)을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으로 나누어서, 심(心)이 이(理)의 교량과 동력의 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심(心)과 성(性)을 분리했다. 심즉리(心섦理)는 심(心)과 이(理)를 일체(一竟)로 보았고, 곧 심(心)이 곧 성(性)이며, 동시에 심(心)은 곧 이(理)이라고 여겼다. 이 두 가지를 완성해 가는 실천적인 방법 또한 같지 않다. 성즉리(性섦理)는 “격물치지(格物致知), 궁물급리(헨物及理ㆍ사물을 궁극해서 이치에 이르는 것)”해서 사물에서 진리를 탐구해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심즉리(心섦理)는 사람의 본심(本心)을 나타내는 과정으로 곧 양지(良知)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불교논리 및 선종사상을 융합한 왕양명(王陽明)의 심학의 탄생은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 형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양명의 심학은 ‘심’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시작으로, 그는 ‘심’을 최고의 본체로 승격시켜서, ‘심즉리(心섦理)’를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사고의 방향은 곧 ‘심즉성(心섦性), 성즉리(性섦理)’이다. 즉 성(性)으로써 심(心)과 이(理)를 소통해서, 심(心)을 지선(至善)의 성(性)으로 확정한 바탕에서, 심(心)은 곧 이(理)의 본체성(本體性)를 구비했다고 여기고, 동시에 성(性)은 지각(知覺)하는 마음에 합일할 수 있으므로, 성(性)은 지각의 특성을 갖추었다고 했다. 이것이 곧 그가 주장하는 ‘양지(良知ㆍ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혜, 天道에서 부여해준 지혜)’설이다. 이 ‘양지설’은 주희 철학에서 말하는 심리(心理)를 둘로 나누는 모순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또 육학(陸學ㆍ象山學派)의 이리위심(以理爲心ㆍ이로써 심을 삼는다)이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부분을 전면적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왕양명의 이러한 심본체(心本體)의 사상적 체계를 구축한 것은 육조대사의 본심론(本心論)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혜능은 심(心)을 염정(淨染)으로 이분화하는 것을 반대했고, 중생심과 불심(佛心)의 합일을 강조했는데, 혜능은 중생의 본심에 불성이 있다는 착안에서, 곧 중생즉불(콎生섦佛), 불즉중생(佛섦콎生)이라는 결론을 돌출해 냈다. 곧 ‘번뇌즉보리, 보리즉번뇌’와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관점을 왕양명이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즉 유학에서는 성인을 이루고, 불교에서는 성불을 이루는 도리를 사람들의 내심에 안치한 것 등이 같다고 하겠다. 또 왕양명은 하택종의 ‘영지심체(靈知心體)’론을 흡수해서 본인의 ‘양지본체론(良知本體論)’의 사상을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택이 말하는 영지심체(靈知心體)는 일종의 신령스러운 영묘지혜(靈妙智慧)를 가리킨다. 이 영지묘혜는 수연(隨緣)하면서 생기(生起)하는 만법의 능력을 갖추었고, 즉체즉용(섦體섦用)으로 체용일원(體用一源)의 상태이다.

왕양명의 양지본체(良知本體)론도 또한 체용(體用)일체를 말한다. 양지(良知)는 시비(是非)의 규범이 되면서, 능히 시(是)를 알고 비(非)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같이 양지(良知)는 입법의 원칙, 행동의 원칙, 이성적 도덕적 법칙이 된다. 한편 감성적 시비 호악을 포함하기도 하며, 이 감성은 도덕적 주체의 활동에 대한 자각성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이 점은 주희의 외재적 강제성을 띤 이본체(理本體)론 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한다. 이렇듯 본체론의 전변은 필연적으로 닦아야 할 수양 과정과 이론도 다를 수밖에 없다. 수양의 공부론에 대해서 왕양명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했는데, 이 지행(知行)의 범주도 전인(前人)들과 같지 않다. 즉 지(知)는 다만 주관 형태의 지(知)를 가리키며, 지(知)를 구하는 과정은 포함하지 않으며, 행(行)은 궁행(躬行ㆍ몸소 실천하는 것) 밖을 제한한 것을 가리키면서 또한 심리행위를 가리킨다.

이 관점은 불교의 ‘일체중생개유불성’과 매우 유사성이 있으며, 또한 선종의 돈오설과도 사뭇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혜능은 전통불교의 삼학(계정혜)을 간소화해서 정혜불이(定慧不二)를 주장했다. 반야지혜로 자심을 본체를 관조해서, 곧 ‘본성이 곧 부처이다(本性섦佛)’라는 관점으로 돈오설의 출발점을 삼았다. 즉 복잡한 계급점차의 수행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본성이 부처라는 직관적 수행법을 강조한 것이다.

혜능은 “본성시불성(本性是佛性ㆍ본성이 불성이다), 이성무별불(離性無別佛ㆍ성을 떠나서 다른 부처가 없다)”고 하면서, “마땅히 알라 어리석은 사람 혹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불성은 본래 차별이 없다. 다만 미오(迷悟)가 같지 않은 까닭에, 지(智)가 있고 우(愚)가 있다”고 했다. 그는 본성이야말로 불성이며, 성불할 수 있는 근원의 자리라고 보았다. 때문에 미(迷)하면 중생이요, 오(悟)하면 부처라는 것이다. 즉 중생과 부처의 차별은 곧 미오지차(迷悟之差)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왕양명 역시 “심외무물(心外無物ㆍ마음 밖에 다른 경계가 없고), 심외무리(心外無理ㆍ마음 밖에 이(理)가 없다)”를 강조해서 심학(心學)사상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요지해서 사물의 진상(廬相)에 도달해야 하며, 따라서 자기의 심성양지(心性良知)를 지속적으로 반조하고 탐구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는 고루한 전통유학의 영역을 초월해서, 대담하게도 불교사상 및 선종의 사상을 융합해서 중국 유학의 새로운 심학을 창조했으며, 후세 유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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