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58) 한국명상총협회 경영위원장

삼성그룹 입사 후 퇴사 미국유학
국제변호사 자격취득 임원 재입사
삶의 부침 해결 108배가 명상으로
불자 부인 인연으로 명상에 입문

미얀마 법률고문하며 명상 체계화
매일 ‘법화삼매참법기도’ 1독 명상
한국명상총협회 경영위원장 맡아
한국명상의 대중화·세계화 포부
“한국명상을 한류 문화 중심에…”

 

이용태 한국명상총협회 경영위원장은…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교(West Virginia University)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삼성전자 해외법무그룹장 및 특허팀장(상무), 삼성 SDI 법무실장(전무), 서울반도체 준법지원실장(부사장), 미얀마 연방정부 재정기획부 법률 고문, 특허법인/종합법률 가산 등을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지식재산학과 교수로 일하는 한편, 명상을 통한 불교 전법을 위해 (사)한국명상총협회 경영위원장 겸 (사)한국참선지도자협회 감사로 봉사하고 있다.

 

2600년 전, 인간은 ‘마음’이라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됐다. 몰랐던 스스로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깊은 성찰과 각고의 노력이 나은 뜻깊은 사건은 260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수많은 삶에서 뜻깊은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본다는 것, 자신의 가장 깊고 고요한 곳에 다녀온다는 것, 그것은 분명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하고 특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이 남긴 분명하고 선명한 법(法)은 구하고자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많은 방법론과 결론들이 있어 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마음의 문제는 다시 인류의 특별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명의 속도에 지치고 환경의 부작용으로 아픈 시대, ‘나’없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인류가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스스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다시금 인류는 ‘나’가 있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2600년 전의 뜻깊은 사건에 다가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나 찾기’는 붓다가 남긴 깨달음의 다름 아니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보았던 것처럼 2020년의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나’를 보았고, 누군가는 ‘나’를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나’를 보기 시작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을 만난다. 한국명상총협회 이용태 경영위원장이다. 그는 왜 한국명상총협회의 경영위원장이 되었을까. 그리고 좀 더 일찍 명상에 눈뜬 그의 방법론과 결론은 무엇일까.

 

명상의 시작 108배
2010년, 오십을 바라보는 이 위원장은 어느 날 108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왜 108배였는지 자신도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문득 108배였다.

“주위에서 운동도 된다고 하고, 또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고 해서 시작을 했죠. 처음엔 숙제처럼 했어요. 밥을 먹고 회사에 가는 일처럼 했어요. 삶에 부침이 없을 수 없잖아요. 저에게도 삶에 부침이 일기 시작했어요.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속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번뇌라고도 하죠. 회사에 가면 어느새 마음은 회사에 없고, 집에 돌아오면 또 마음은 집에 없었죠. 해결해야 할 일, 해야 할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불편한 일, 불편한 사람 …, 마음속이 쓰레기통 같았어요.”

이 위원장은 불심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이 위원장은 108배가 문득 떠올랐다고 말했지만 그의 108배는 ‘문득’이 아니라 ‘인연’이었다.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이던 이 위원장은 다른 임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좀 더 빠른 길이었다.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근심의 씨앗이었다. 특별함으로 인한 인과였다. 조직 내에서 근심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임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날이 갈수록 무거웠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 위원장은 졸업과 동시에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위원장의 삶에 그림자는 없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신입사원 전체 연수를 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자신을 본다. 자신보다 월등히 우수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자신이 한 없이 작게 느껴졌다. 이 위원장은 연수를 마치고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떠난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는 확실한 ‘나’로 살고 싶었다.

마침내 이 위원장은 국제변호사가 되어 그룹의 임원으로 복귀한다. 그렇게 특별한 길을 걸었던 이 위원장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마주하게 된 근심들은 그 특별함으로 인한 인과였다.

“108배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108배를 하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느 날부터 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생각에서 점점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이 위원장은 근심으로 가득 찼던 쓰레기통을 비우기 시작했다. 108배를 하는 15분 동안 몇날 며칠을 고민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오늘 해야 할 일, 내려놓아야 할 일, 받아들여야 할 일 등 오랫동안 얽혀 있던 일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때가 첫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명상이라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때였어요. 지금에서 생각해볼 때 아마도 그 때가 명상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이자 처음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경험은 ‘집중’이었어요.”

 

오래된 미래, 미얀마 행
이 위원장이 108배를 시작한 지 5년이 흘렀을 때였다. 이 위원장은 다시 한 번 중요한 인과와 마주한다. 이 위원장은 삼성그룹을 떠나게 된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5년 동안 108배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과 마주했다. 쌓이면 쌓이는 대로,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덜어내는 시간을 보내며 마음이 떠안고 있는 실존의 문제들과 나란히 걸었다. 30여 년간 몸담아온 회사를 떠나는 일이 작은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 역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근심 중의 근심이었지만 이 위원장에게 이제 근심의 위력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이 위원장은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는 미얀마 정부의 법률 고문역을 맡고 미얀마로 떠난다. 그의 오래된 미래였을까. 그는 1년 동안의 미얀마 생활을 통해 그 동안의 시간을 ‘명상’이라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길로 연결시킨다.

이 위원장은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온전히 혼자였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이 위원장에게 동기였고 기회였다. 허기 앞에 놓인 식사 같은 것이었다. 이 위원장이 식사 같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는 짐작이 간다.

이 위원장은 그 시간에 본격적으로 ‘명상’을 자신의 주제로 받아들이고 자기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과 함께 명상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씨앗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목화씨와 같았던 그 씨앗은 이 위원장이 부인을 통해 알게 된 참불선원의 각산 스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 위원장은 가끔씩 참불선원 법회에 참석해 각산 스님의 ‘명상’을 접한 바 있다. 참불선원의 법회는 대부분 참선법회로 진행되는데 가끔이었지만 법회에 참석해 명상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얻은 것이 많았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던 이 위원장에게 각산 스님은 ‘법화삼매참법기도’를 권했고, ‘명상’을 시작할 수 있는 길도 조금씩 열어주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그 지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이 위원장이 미얀마로 떠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더 큰 결실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미얀마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자기 전에 각산 스님이 일러주신 대로 명상의 시간을 가졌어요. 물론 법화삼매참법기도도 매일 했지요.”

108배와는 또 다른 시작과 과정이었다. 108배를 통해 경험했던 시간은 ‘절(拜)’이라는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찾았다면 미얀마에서의 시작은 ‘앉는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고요였다. ‘앉는다’는 생각은 각산 스님의 조언이었다. 고요와 만나는 것을 명상이라고 했을 때, ‘앉는다’는 시작은 이 위원장에게 새로운, 본격적인 명상을 시작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생각이었다.

“만약 예전의 108배가 없었다면 각산 스님의 지도나 미얀마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있었더라도 결과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은 예전에 108배를 시작했을 때처럼 또 다른 모색을 시작했다. 이 위원장이 아쉬웠던 것은 각산 스님의 지도를 통해 명상에 제대로 입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각산 스님의 말씀대로 앉았다. ‘앉는다’는 것은 예전에 108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08배가 움직임 속에 ‘나’를 두는 것이었다면 앉는다는 것은 정지한 움직임 속에 ‘나’를 두는 것이었다.

그때처럼 처음엔 ‘앉는 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이 없었다. 108배를 시작했을 때에도 그랬다.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절을 했었다. 절을 하면 무언가 보이겠지.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면 해결되는 게 있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이 크면 클수록 ‘나’는 보이지 않았다. 앉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앉으면 금방 고요해질 줄 알았다. 고요해지면 그 때처럼 무언가와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108배를 할 때, 어느 날부턴가 절하고 있는 ‘나’를 잊었고, 그때부터 편안한 마음에 들 수 있었던 것처럼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어느 날부턴가 앉는다는 생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앉았다’는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앉아있는 것이 그저 앉아있는 것일 뿐이었어요. 절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은 맥락이죠.”

그때부터였다. 이 위원장은 이용태만의 명상을 시작한다. 스승의 지도도 점검도 받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이 위원장의 고요한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국명상의 대중화 세계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한류라는 문화현상을 만들어낸 것처럼 참선과 국내외 수행법을 아우르는 통섭명상을 통해 새로운 한류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명상의 실천체계를 확립하고, 지도자 양성 및 관련 단체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겠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명상총협회가 창립됐다. 각산 스님을 초대 회장으로 선임한 협회는 창립총회에서 한국 전통 참선수행법에 기반을 둔 통섭명상을 바탕으로 명상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도모했다. 명상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맨 앞줄에 이 위원장이 섰다. 미얀마에서 돌아온 이 위원장에게 각산 스님은 ‘경영위원장’이라는 소임을 부탁했다. 이 역시 의미 있는 인과였다.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야 하는 일이었다. 이 위원장은 명상 분야와 관련 있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국명상총협회와 함께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산 스님이 그동안 연구해온 명상교육 자료들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와 관련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한국 명상의 대중화와 세계화가 그의 가장 큰 계획이다. K-POP,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처럼 한국 명상을 한류문화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우리 전통 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참선수행법과 국내외의 수행법을 아우르는 통섭명상을 세계화하는 것이다.

 

코로나 치료제 백신, 명상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인사들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지금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명상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코로나로 인해 육체적 시련은 물론, 전에 없던 정신적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예측한 자료는 2023년에 이르면 정신질환이 가장 무서운 질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인류의 우울은 지금까지의 우울과 완전히 다른 시련입니다. 기존의 우울이 고연령층이나 특정 계층에서 겪어야 하는 정신적 어려움이었다면,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오늘의 어려움은 젊은 세대에서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한창 역동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간을 고립시키는 코로나는 그야말로 힘겨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의 가장 중요한 치료제와 백신은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은 세계 각국에서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명상’의 원류는 결국 ‘부처님’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그때 모든 게 다 이야기됐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결국 부처님 시절에 정리된 이야기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교명상과 전혀 상관없이 명상을 시작한 사람들의 입에서 결국 ‘위빠사나’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 사태로 하 수상한 이 시절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것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고요한 시간 위에 앉는다. 그에게 고요한 시간이란 무엇을 위한 시간일까. 이용태의 명상은 무엇일까. 그는 “명상은 실참”이라고 말했다. “명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실참을 거친, 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각지에서 많은 숫자들이 코로나에 쓰이고 있다. 오늘, 우리,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2600년 전의 뜻깊은 사건을 다시 떠올려본다.

“명상은 실참”이라고 말하는 이용태 한국명상총협회 경영위원장이 명상하는 모습.
이 위원장은 미얀마 정부 법률고문역으로 1년간 근무하며 명상을 체계화 했다. 사진은 미얀마 근무시절 모습.
참불선원에서 명상 강의하는 이용태 경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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