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수선화 같았던 수행자
매화와 수선화 같았던 수행자
  • 대원성
  • 승인 2020.09.26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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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법정 스님 2

 

 

 

 

 

 

 

 

 

 

 

 

<서신 1>

연꽃모임 껍데기들 동반한다니 잘 한 일입니다. 대원성 체면을 생각하더라도 어디 안 나가고 있어야겠지요. 봄이라서 집 비우고 어지간히 돌아다니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한테도 선량한 거사님한테도 신경을 쓸 줄 믿습니다. 요즘 우리 불일의 뜰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은은한 꽃향기를 발하고 축대 밑에서도 수선이 쏙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비가 좀 왔으면 좋겠는데 봄 가뭄이 너무 심합니다. 그럼 산에서 만날 때까지 더욱 더 예뻐지십시오. 목소리도 좀 톤을 낮게 하고요.

- 4월 14일 불일암에서 합장

 

<서신 2>

오늘 引路王(인로왕) 보살 노릇 하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날씨도 좋고 山色(산색)도 좋아 다행이었습니다. 껍데기들이 적어 유감스러웠지만. 김두현 거사님과 해운대 집에게 淨財(정재) 감사히 받았다고 말씀 전해주십시오. 지금쯤 선암사에 닿아 참배하겠습니다. 귀로 편안하기를 빕니다.

- 4월 29일 불일암에서 합장

어느 해, 연꽃모임이 3사 순례를 가기로 했을 때였다. 부부동반으로 간다고 스님께 미리 소식을 드렸더니 너무나 잘 한 일이라며 반기셨다. 스님은 늘 거사불자가 적은 것을 걱정하셨다. 그래서 평소 보살들에게 남편과 함께하는 신행생활을 강조하셨고, 거사불자가 많아지기를 바라셨다. 그래야 좀 더 불교의 저변이 튼튼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불교를 생각하시면서도 각자의 집안일도 강조하셨다. 내가 워낙 여기저기 쉼 없이 돌아다닐 때라 조금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 잘 챙기라는 말씀에 마음이 훈훈했던 기억이 난다.

연꽃모임이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순례를 가거나 먼 곳의 법회에 갈 때에는 많은 회원들이 움직여야 했다. 많을 땐 버스 2대가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을 인솔하자니 자연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스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실 때마다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라고 당부하셨다. 왜 아닐까. 고요함에 익숙하신 스님이 보시기에는 마음이 쓰이고 일러주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서신 2’는 우리(연꽃모임)가 불일암에 다녀간 후에 쓰신 편지다. 부부동반으로 가기는 했지만 남편들의 참여가 생각보다는 적었다. 스님이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편지에서 아쉬운 마음이 보인다.

매화가 은은한 꽃향기를 내고 축대 밑에서는 수선이 얼굴을 내밀던 불일암. 매화 같고 수선 같았던 스님. 지금도 봄마다 불일암에는 매화가 은은하고 수선이 축대를 바라보겠지만 스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도 다시 봄이 오는 날에는 불일암에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스님은 계시지 않겠지만 매화 향기 속에서, 수선의 얼굴 속에서 왠지 스님의 모습을 뵐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한참 기다려야겠지만 봄이 기다려진다.

불일암을 찾은 연꽃모임 거사들과 함께한 법정 스님(중앙).
불일암을 찾은 연꽃모임 거사들과 함께한 법정 스님(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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