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스승 향훈과 체취 책속에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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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일 기자
  • 승인 2020.09.25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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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사 서문집

동명스님, 보관중인 자료 모아 스승 서문집 발간
학명·만허 스님 교유한 친필엽서 공개 눈길 끌어
중앙건의문, 내장사 대웅전상량문, 전등회청규 등
​​​​​​​한국불교 근현대사 조명하는 사료적 가치 충분해
동명 엮음 / 나라연 펴냄 / 5만원  

“한 생을 살면서 가슴 깊이 울림을 남기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인연의 종류는 다종다기 하겠지만, 출가인으로서 가장 큰 인연은 바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스승, 해안 스님은 나에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큰 바위같은 스승이셨다. 스님께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사짓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를 하는 것이 가장 법에 맞는 일이며,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마음먹고 7일만 참구한다면 누구나 깨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서울 전등사 회주 동명 스님의 스승 사랑은 깊고 넓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본인 이야기 보다는 스승 자랑으로 시작해서 스승의 가르침으로 끝난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진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일까. 동명 스님은 스승의 발자취들을 한데 모아 문집을 펴냈다. 은사인 해안 스님(1901~1974)의 유묵과 서필을 모은 〈해안선사 서문집〉이 바로 그것이다. 해안 스님이 일생 동안 직접 남긴 글들을 모아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책을 펴낸 소감을 적은 머리말에는 구구절절 제자 동명 스님의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해안 스님은 동 경봉 서 해안이라 하여 청정승가의 공경을 받으며, 내소사에 오래 주석하시다, 1969년에 서울 수유동 인가 주택에 법당을 만들어 불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실참수행을 직접 지도했다. 이것이 오늘날 전등선림의 출발이었다.

이번 서문집은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해안 스님이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목격하며 수행자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역사의 증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큰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선농일치를 실천하며 조선불교 정체성을 지킨 학명 스님(1867~1929)이 내소사 중흥주인 만허 스님에게 보낸 친필 엽서 등은 한국불교 역사를 조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로 꼽힐만 하다. 만허 스님에게 득도한 해안 스님은 1918년 학명 스님에게 ‘은산철벽을 뚫으라’는 화두를 받기도 했다. 학명 스님이 만허 스님에게 보낸 한 편의 글과 세 장의 엽서는 모두 한문으로 작성됐는데, 1910년대 중반쯤에 학명 스님이 만허 스님에게 쓴 것으로 추정된다. 엽서에 찍힌 우체국 소인을 보니 ‘4 2 20’이란 숫자가 보이는데, 여기서 ‘4’는 년도, ‘2’와 ‘20’은 월일(月日)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추청한다면 ‘4’는 대정(大正) 4년인 1915년인데, 이는 해안 스님이 내소사에서 만허 스님에게 출가한 이듬해이다.

스승 해안 스님은…
1901년 전북 부안서 태어난 스님은, 1914년 내소사서 만허 선사에게 득도했다. 이후에는 광성의숙, 백양사 지방학림, 불교중앙학림, 중국 북경대 등 국내외에서 내외전을 두루 공부했다. 1925년 귀국 후에는 계명학원을 설립하고 순회 포교사로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사업과 전법활동에 나섰다. 또한 월명선원서 수선안거 이래 36하안거를 성만했으며, 김제 금산사 주지, 서래선림 조실, 불교전등회 대종사, 대원정사 조실 등을 역임했다. 1974년 음력 3월 9일 내소사 선래선림서 세수 74세, 법랍 57년으로 입적했다.

편지서 학명 스님은 만허 스님에게 “늙은 단풍이 석양에 외로이 앉았으니 아무런 재미가 없소. 선법을 전도된 근신기 0를 모두 마시어, 봄빛이 다시오니 석녀가 노래하고, 일어나 춤추지 않고, 많고 적은 참 즐거움이 변하여 화장찰해를 이루는데, 하물며 대지 만상이 허공에 솟아오르지 못하니 어느 때에나 쉴 수 있으리오?”라고 보냈다.

이에 대해 동명 스님은 “해안 스님께서는 당신의 은사이신 만허 스님과 법사이신 학명스님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크셨다는 걸 알기에 두 분 스님께서 교류하시며 보낸 세 장의 작은 엽서들을 이 책에 실어 자료로 남기고 싶었다”고 엽서를 기록한 이유를 밝혔다.

이외에도 〈해안선사 서문집〉에는 대은 스님(1899~1989)과 탄허 스님(1913~1983)의 글을 비롯해 상좌와 재가불자에게 보낸 서신도 실었다. 또한 1945년 금산사 주지 당시 제안한 ‘중앙건의문’과 1958년 정읍 내장사 대웅전 상량문, 전등회 청규 등 해안 스님의 친필 원고 초본을 수록했다. 이와 함께 해안 스님의 서필 작품, 제문과 발원문, 상좌와 신도들에게 전한 전법게송 및 사진 등을 게재했다.

이번 책을 펴낸 동명 스님은 “비록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이지만 나의 스승, 해안 스님 앞에 나는 언제나 열세 살 소년일 수 밖에 없다. 해안 스님은 나에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큰 바위 같은 스승이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언제나 다정다감하신 큰 어른이셨다”고 회고 했다.

실제로 해안 스님이 상좌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곳곳에서 다정다감하고 애틋한 제자 사랑이 느껴진다. 추석을 하루 앞두고 동명 스님에게 보낸 서신에서 해안 스님은 “변산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추석을 맞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학비를 제대로 못 보내어 학창 생활에 곤란이 많을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되니 너에게 미안한 마음 금(禁)할 길이 없다. … 혜산(慧山)은 내려가고 철산(鐵山)과 나는 여기서 추석을 같이한다. 부디 몸 건강에 주의해라.”

상좌 및 신도와 함께 사진촬영한 동명 스님(왼쪽서 첫번째)과 해안 스님(왼쪽서 두번째).

해안 스님은 또한 제자들과 대중을 위해 7미터에 달하는 ‘보은불사 제문’을 직접 써 대중 앞에서 읽으며 불심을 불러일으키고 공부 인연을 짓도록 했다. 또한 일반 불자들에게 불명을 하나씩 지어주며 붓글씨로 정성스럽게 써놓았다. 이런 흔적들 중 동명 스님이 보관중인 자료들을 이번 책에 수록했다. 불명을 선물한 인원만 족히 4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동명스님은 “불명 내용이 너무 좋고 그 뜻이 깊고, 멋이 있어서 정성스럽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글을 써 주셨지요. 그런 점에서 너무나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회고했다. 한편 동명 스님은 지난해 10월 내소사 지장암서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탑을 재현한 ‘해안선사 심인탑’을 조성했다. 이어 올 3월 〈해안선사 서문집〉 제작을 완료하고 추모다례 때 봉정식을 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하면서 서문집만 이번에 공개했다. 

제자 동명 스님은…

1962년 내소사로 출가해 1966년 해안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972년 통도사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75년 해인사 승가대학을, 198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종회의원, 개운사 주지, (재)행원문화재단 상임 이사를 역임했다.

1998년 전등사를 맡은 이래 주지 소임과 전등선림 선원장으로서 시민선방을 만들어 마음을 열어주는 참선 지도를 깊이 있게 실천해 오고 있다. 현재는 전등사 회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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