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미얀마 왕조 정치전통과 민주주의

미얀마 시내에 게재된 8888민주화 운동 기념사진. 미얀마 민주주의는 종교적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미얀마인에게 불교는 삶의 철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통치의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불교의 꽃을 피웠던 바간 왕조 시기 이후로 미얀마 왕들에겐 이상적인 왕의 상(相)이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는 것이다. 전륜성왕에게 통치의 기본적인 기준은 부처님의 법(法, Dhamma)에 있다. 전륜성왕의 의무는 부처님의 법을 현실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성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는 복지를 제공하고,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백성들에게 도덕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사회적 학습 등을 행하는 것이다.

통치의 기본적인 기준은
부처님 법을 현실에 적용
‘시왕법’을 기반으로 통치
지혜·내면의 힘 길러야


미얀마 왕들이 전륜성왕이 되고 싶어 했던 역사적 증거는 바간을 비롯한 미얀마 전역의 파고다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바간 왕조의 알라웅시뚜(Alaungsithu) 왕은 현생에서는 전륜선왕이 되기를 발원했고, 내세에는 미륵불이 되기를 원했다. 알라웅시뚜 왕도 다른 왕들과 같이 파고다를 많이 건립했다. 그 중 쉐구지(Shwegugyi) 사원이 유명한데, 사원의 비석에는 알라웅시뚜 왕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pha yar tal hlu dan ya chin akyo kyaunt kaung chin mingala tway ya par lo ei. kyee myat tae net bya mar a nay nae mway phwar lar poh lae ma lo chin par bu. htat pi bayin a nay nae mway phwar lae poh lae ma lo chin par bu. bayar phyint poh thar su pan pr ei. (파고다를 세우는 공덕을 통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브라마나 위대한 신으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또 다시 왕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직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미얀마의 왕은 〈자타카(Jataka)〉에 나오는 시왕법(十王法)을 토대로 정치를 해야 했다. 미얀마 왕조의 정치전통은 전륜성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왕조의 정치는 절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왕이 지켜야 할 열 가지 의무는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었다. 왕이 지켜야 했던 열 가지 의무는 보시(布施)·지계(持戒)·영사(永捨)·정직·유화(柔和)·고행(苦行)·호의(好意)·비폭력(非暴力)·인욕(忍辱)·불상위(不相違)이다. 미얀마 지도자의 중요한 통치의 근원이었던 시왕법은 미얀마 현대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있어 군부정권의 방해를 막아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무고한 미얀마 국민들의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군부정권은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지 않은 80년대에 국가 문을 걸어 잠근 후, 미얀마 민주화를 외치는 국민들을 계층에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사살했다. 국민들의 교육수준을 낮추기 위해 학교를 폐쇄하였고 해외에 학살소식이 전해질까 두려워 외국인에 대한 배척을 심하게 했다. 군부정권은 민주주의의에 대하여 ‘미얀마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불교와 위배되며 서구의 개념이라 미얀마에는 필요하지 않다’라는 프레임을 통해 끊임없이 거부했다. 이 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현실적인 리더였던 아웅산 수찌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군부정권의 논리에 대하여 반박했다.

알라웅시뚜 왕.

아웅산 수찌는 〈자타카〉의 시왕법을 통해 민주주의가 미얀마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군부정권의 논리에 대해 반박했다. 또한 부처님이 가르친 쇠퇴와 몰락의 네 가지 원인을 통해 미얀마의 퇴보에 적용하여 논리를 전개했다. 첫째는 상실한 것을 회복하는 일에의 실패, 그 둘째는 파괴된 것의 수복에 대한 태만, 셋째는 공평한 경제활동의 필요성 무시, 넷째는 공덕심과 교양이 없는 사람의 등용이다.

이것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국민이 지닌 민주적인 권리가 군부의 독재정치로 상실 되었을 때 민주주의로 곧바로 회귀하지 못한 점 △도덕과 정치의 가치가 한없이 저하되어 가는 것을 힘을 모아 극복하려 하지 않은 점 △경제는 군부정권의 사리사욕을 위해 운영된 점 △나라는 지성과 존엄성이 없는 인간들에 의해 지배된 점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쇠퇴 일로를 걸어온 역사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권리 행사가 ‘서양’의 개념이 아니라 미얀마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불교에서도 찾을 수 있는 점이라는 것을 아웅산 수찌는 강조했다.

군부정권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에 핵심인 ‘인권’에 대해서 또 다시 미얀마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인권’의 개념을 비난했다. 아웅산 수찌는 전통적으로 미얀마 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나라를 이룩할 수 있는 주체는 사람으로 되어 있으며, 사람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통해 반박했다. 우리는 개개인의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올바른 의사와 열의를 통해 진실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까지도 교화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석존은 계급사회를 허물고 개개인의 안에 모두 같은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였다. 또 연기적 세계관과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를 중요시했다.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권개념은 불교 사상과 위배되지 않다고 군부정권의 논리를 재반박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어머니이자, 실질적인 리더였던 아웅산 수찌는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의 정신적인 변화를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외적인 변화보다는 내적인 변화에 중요성을 둘 수 있었던 것은 불교 교리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자신의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진정한 혁명이란 정신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발전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이나 가치관을 변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지성에 의하여 확신함으로써 탄생됩니다. 풍요로움만을 목표로 하고, 단지 시책이나 제도의 변경을 지향하는 혁명에서는 진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신의 혁명이 없는 곳에서는 낡은 질서의 악을 빚어낸 권력이 살아 남아서, 개혁과 재생의 과정에 끊임없는 위협을 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진실에 맹세를 하고 희생을 치르며, 욕망·적의·무지·공포·로 인한 타락에 정하기 위하여 투쟁을 관철하는, 일치된 강한 결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수단인 동시에 목표이기도 합니다. 민주제도에 입각하여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를 이룩하려는 국민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무기력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왕법을 근원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 지도자는 지혜와 내면의 힘을 겸비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수행이 되지 않은 채 불교의 가치를 정치에 적용하면 올바르게 실현 될 수 없다. 아웅산 수찌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기반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미얀마 왕조의 오래된 이상적인 정치모델인 전륜성왕과 시왕법을 토대로 민주주의 리더의 자질과 민주화 운동을 정당화 하였다. 미얀마 민주주의는 단순히 서구의 민주주의에 대한 모방이 아니다. 미얀마의 정치적인 전통과 현대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미얀마식 민주주의를 이루어 냈다. 

미얀마 사람들은 평화와 안전을 그늘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미얀마 속담에는 “나무 그늘은 참으로 시원하다. 부모의 그늘은 보다 더 시원하다. 스승의 그늘은 더 한층 시원하고 왕의 그늘은 더욱 더 시원하다. 그러나 어떤 그늘보다 시원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을 논하는 현대에도 미얀마 사람들은 정법(正法)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한시하지 않고 삶의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미얀마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의 흐름은 불교로 단 한번도 현재까지 맥(脈)이 끊겨 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고 종교적이라며 비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미얀마를 모르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를 넘어 그들에겐 삶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며 문화 그 자체이다. 우리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각자 오래된 역사와 문화적인 차이로 하나의 가치가 그 나라에 맞게 수용된 점을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양곤대 박사과정>

쉐구지 파고다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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