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닦음의 길 22

불교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법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책도 보지 않은 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합송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나라 불자들이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千手經)〉이었다. 그렇게 긴 글을 어떻게 암송하는지 궁금해서 한 분에게 물어보니 2, 3년 정도 매일같이 독송하면 저절로 외워진다는 것이었다. 특히 천수다라니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을 보고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문은 뜻을 생각하지 않고 외워야 효험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음절이나 문장을 반복해서 외우는 것을 주력(呪力) 수행이라 한다. 주력은 글자 그대로 주문(呪)에 초월적이고 신비한 힘(力)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문을 간절한 마음으로 외우게 되면 자신이 지은 모든 업장을 털어내고 깨달음을 얻거나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력은 진각종(眞覺宗)이나 진언종(眞言宗), 총지종(摠持宗) 등의 밀교 종단에서 중시하는 수행법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한 주문으로 ‘옴 마니 반메 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등이 있다. 주문은 진언(眞言, mantra)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아주 긴 주문은 다라니(陀羅尼)라고 한다. 다라니는 붓다의 모든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해서 총지(總持)라 부르기도 한다.

주문에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고대 인도인들은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찬양하는 과정에서 주문을 활용하였다. 또한 병을 치료하거나 재난을 물리치기 위한 의식으로도 사용하였다. 바라문교의 성전인 〈베다(veda)〉에는 각종 신들을 찬양하는 수많은 주문들이 실려 있는데, 특히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는 주문만을 별도로 모아놓은 책이다. 사람들은 신을 향해 외치는 주문 안에 어떤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주문을 곧 신의 음성이자 우주의 에너지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처럼 주문에 초월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믿게 되자 그들은 신 보다 오히려 주문 자체를 신성시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옴(aum)’과 같은 주문은 그 자체로 우주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주력 수행은 대승불교에 이르러 대중들을 교화하는 방편으로 수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의상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에는 “일체중생이 대비주(大悲呪)를 외우고 보살의 이름을 불러서 다 같이 원통삼매(圓通三昧)의 바다에 들기를 발원합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여기에서 대비주란 바로 ‘나모 라다나 다라야 야’로 시작되는 천수다라니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신라 당시에도 주력 수행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력 수행은 종파와 관계없이 중요한 수행법으로 실천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력을 통해 불교의 본질인 깨침에 이를 수 있을까?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꺼져가는 선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경허(鏡虛, 1849~1912) 선사는 제자인 수월(水月, 1855~1928) 선사에게 천수다라니를 수행하도록 지도하였다. 일자무식이었던 수월 선사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력 수행에 정진한 결과 마침내 깨침에 이르고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한 선지식으로 우뚝 세게 된다. 선사들이 주력을 중시한 이유가 다 있었던 셈이다. 주력은 그 자체로 깨침에 이르는 중요한 수행체계였던 것이다.

주문은 불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실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진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려 하지 말고 무조건 외우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의 주문에 해당되는 주기도문은 한글이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만약 불교의 진언이 우리말이라면 그 뜻을 모를 수 있겠는가. 인도어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요즘은 주문이 거의 우리말로 번역되어 그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모르고 외우는 것보다 의미를 새기면서 외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왜 주문을 외우는지, 그것이 나의 실존에 어떤 의미인지를 성찰하고 주력 수행을 하자는 것이다. 문제의식과 간절함, 이는 주력을 포함한 모든 수행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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