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춘]맷돌과 풍로·철병 등 다양한 茶具 활용
[박동춘]맷돌과 풍로·철병 등 다양한 茶具 활용
  •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09.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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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고려시대 차도구
예술미 잘 구현한 청자 다완
고려왕실에서 사용된 기록도
음다에서 빠질 수 없는 맷돌
출토화강암으로 제작되는 등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기도
청자 음각 파도물고기무늬 완, 고려, 높이 4.5cm 입지름 1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 음각 파도물고기무늬 완, 고려, 높이 4.5cm 입지름 1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시대의 다구(茶具)로는 차 맷돌(茶磨), 주자(물 주전자), 풍로, 다완, 은 탕관, 철병, 돌솥 등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청자 다완((茶碗, 찻 사발)은 고려인의 감수성과 예술미를 잘 구현한 찻그릇이다.

12세기 고려 왕실에서 사용했던 다구에 대한 기록은 서긍(徐兢 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상세히 수록해 두었는데, 특히 〈기명(器皿)〉조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근래에는 차 마시기를 제법 좋아하여 차와 관련된 여러 도구를 만든다. 금화오잔(金花烏盞), 비색소구(翡色小췛), 은로탕정(銀爐湯鼎)은 모두 중국 것을 흉내 낸 것들이다(…)관사 안에는 붉은 찻상을 놓고 그 위에 다 차를 마실 때 쓰는 도구를 진열한 다음 홍사건(紅絲巾)으로 덮는다.

윗글은 선화 5년(1123)에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고려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그림과 글로 엮어 휘종에게 올린 사행보고서의 일부 내용이다. 당시 고려 왕실에서 사용하던 다구로는 금화오잔, 비색소구 같은 다완 종류와 물을 끓이는 은으로 만든 화로와 솥, 그리 찻상과 찻상을 덮어 두는 붉은 천으로 만든 덮개용 천 등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긍이 언급한 금화오잔은 이 시기 중국에서 유행되었던 토호잔, 검은색 다완이  고려에서도 생산되어 사용되었고, 특히 비색소구는 청자 다완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 고려 왕실에서는 청자 다완이나 흑색 다완을 사용하여 흰 다말을 선호했던 시기에 예술미를 한껏 드러낸 다완이 유행되었던 정황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한편 12세기 말에서 13세기에 고려 문인이 남긴 시문에는 이 무렵 사용했던 다구를 언급한 글이 눈에 띄는데, 이는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승원의 차 맷돌(僧院茶磨)〉과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차 맷돌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며(謝人贈茶磨)〉 등이 그것이다. 차 맷돌은 미세하고 고은 입자의 차 가루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이는 연고차(硏膏茶)의 출현 이후 등장한 다구로, 대개 화강암으로 만든 차 맷돌이 출토되었다.

그렇지만 고려에서는 청자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왕실이나 승원에서 청자로 만든 차 맷돌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튼 차 맷돌은 고려 시대에 음다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다구인데, 이규보의 〈차 맷돌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며(謝人贈茶磨)〉는 차 맷돌의 소재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가 노래한 차 맷돌의 모양과 소재는 다음과 같다.

돌 쪼아 바퀴 하나를 만들었으니(琢石作孤輪)
(차 맷돌)돌리는 덴 한쪽 팔만 쓰네(旋煩一臂)
그대도 차를 마시면서(子豈不飮)
나에게 보냈는가(投向草堂裏)
내가 유독 잠 즐기는 걸 알기에(知我偏嗜眠)
내게 보낸 게로구려(所以見寄耳)
갈수록 향기로운 가루 나오니(桔出綠香塵)
그대 마음 더욱 고맙구려(益感吾子意)

사놔사지 차 맷돌.
사뇌사지 차 맷돌.

윗글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 권14에 수록된 것인데, 이 시에는 차 맷돌이 어떤 소재로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바로 ‘돌 쪼아(琢石)’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는 청주 소재 사뇌사에서 발굴한 차 맷돌이나 월남사지에서 발굴된 차 맷돌이 대부분 출토지역에서 생산되는 화강암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고려의 차 맷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국, 일본의 현존 차 맷돌과는 소재와 모양이 다른 형태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뇌사와 월남사지에서 발굴된 차 맷돌은 수 맷돌 부분이 오판 화형으로 어깨 부분이 약간 둥근 형태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의 차 맷돌은 원통형이며 오석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그러므로 고려의 차 맷돌은 소재나 디자인이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고려의 다구는 고려적인 색채를 함의하여 차 문화를 일궈낸 시대였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고려 시대 차 맷돌에 대해 이인로(李仁老 1152~1220)도 〈승원다마(僧院茶磨)〉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승원의 점다(點茶)가 우선 물을 끓이고 차를 가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드러낸 자료이다. 그가 노래한 승원에서 차를 가는 정정황은 다음과 같다.

차 맷돌 천천히 돌아((風輪不管蟻行遲)
월부가 돌자 옥가루가 날리네.
(月斧初揮玉屑飛)
법희란 본래 실로 자재한 것(法喜從來眞自在)
맑은 하늘에 우레 치듯 (차 맷돌이)울리자
흰 눈이 날리는 듯(晴天雷吼雪醉醉)
 
윗글은 〈보한집〉 중권에 수록된 내용인데, 승원에서 차를 내는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처럼 묘사했다. 그러므로 차를 갈 때 차 맷돌이 돌아가면서 내는 굉음이 마치 우레가 치는 듯하고, 차 가루가 맷돌 틈 사이로 떨어지는 광경을 ‘흰 눈이 날리는 듯(雪醉醉)’하다고 하였다.

흰 눈처럼 하얀 차 가루는 연고차 시대에 유행했던 백차(白茶)로, 차의 흰 거품을 찻잔 가득 피워내 마시는 차를 말한다.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진 시랑의 고시에 차운하여 올리다〉에는 “만약 그대가 시 읊어 주기를 기다린다면(若奉賢俟킷)/ 흰 소금과 솜 같은 차 거품 모두 꺼져버리리(鹽絮皆陳舊)”라고 하였다.

그가 흰 다말(茶沫)을 흰 소금이나 솜에 비유한 것이 종래의 문인들이 흰 다말을 흰 구름이나 하얀 눈이라 표현한 것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흰 거품이 가득한 차는 점다한 후 바로 마셔야 진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지적처럼 시 읊기를 기다린다거나 혹은 다른 일로 차 마시는 일을 지체한다면 부드럽게 향기로운 차의 향과 맛을 잃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차를 향유하는 사람은 그 시점의 적의함을 잘 파악하는 것이 요긴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고려 시대에 물을 끓이는 도구로 철병을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철병은 금속으로 만든 주전자로 주자(注子)라고도 부른다. 청자로 만든 주자와 청동 주자가 유물로 전해지는데, 이규보의 〈남쪽 사람이 보낸 철병으로 차를 끓여 보다〉는 철병의 모양, 용도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기에 당시 탕병의 형태를 엿 볼 수 있다. 〈남쪽 사람이 보낸 철병으로 차를 끓여 보다〉 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센 불이 강한 쇠 녹여 내어(猛火服悍鐵)속을 파 둔하고 단단한 것 만들었네(媒作此頑硬)긴 부리는 학이 돌아보는 듯(喙長鶴仰顧)불룩한 배는 개구리가 벌떡거리는 듯(腹脹蛙怒?)자루는 뱀 꼬리 굽은 듯(柄似蛇尾曲)모가지는 오리목에 혹이 난 듯(項如鳧頸)입 작은 항아리처럼 우묵하고(窪却小口췏)다리 긴 솥보다 안전하네(安於長脚鼎)내 문원의 재주는 없으나(我無文園才)공연히 문원의 병을 얻었네(徒得文園病)오직 낙노를 부르는 것만 생각하고(唯思喚酪奴)이미 주성에게 중독된 것은 끊었네(已止中酒聖)비록 양자강의 물은 없으나(雖無揚江水)요행히 건계의 차가 있네(幸有建溪茗)사내종을 불러(試呼平頭僕)맑은 우물물 길어와(敲汲寒氷井)벽돌 화로에 손수 (차를)달이니(塼爐手自煎)밤 누각에 등불 반짝이네.(夜閣燈火烱)(…)

앞의 이 시는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전집〉 권3에 수록된 것이다. 철병의 생김새가 속을 파 텅 빈 곳을 두어 물을 끓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주구(注口) 부분이 마치 학이 돌아보는 듯 굽었고, 손잡이 부리는 뱀 꼬리가 굽었다는 점을 상세히 드러냈다. 특히 구연부, 즉 아가리는 입이 작은 항아리 같다고 하니 그 모양새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겠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문원은 누구일까. 바로 사마상여(司馬相如 BC179~117)를 말한다.

특히 부(賦)를 잘 지어 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거문고 연주에 능했는데, 임공(臨蟠)의 부호 탁왕손(卓王孫)의 딸 문군(文君)이 그의 옥처럼 준수한 외모와 거문고 연주에 매료되어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야반도주하여 평생을 함께했다고 전한다.

글 솜씨가 특출했던 그는 평소 소갈병을 앓았다고 하는데, 무제 때 효문원영(孝文園令)에 임명되었기에 문원이라 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차는 갈증을 해소하는 효능이 있다. 그러니 이규보가 “공연히 문원의 병을 얻었네(徒得文園病)”라는 말은 차를 좋아하여 차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건계차는 송대의 명차로 어원에서 생산되는 차였다. 송대의 문장가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은 〈건계신명(建溪新茗)〉에서 “남국 그늘진 계곡 따뜻해지니(南벌溪陰暖) 이른 봄, 차 싹이 돋았으리(先春發茗芽)”라고 하였다. 그만큼 명차였던 셈이다. 이런 명차를 고려의 문인도 향유했던 것이니 이들의 차에 대한 감상안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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