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교공감시대

온·오프라인 혼합 세계
맞춤형 설법으로 공유를
젊은층의 접근도 필요해

법문, 교리공부한 지식
타인 전할 용기 역량도
실제 배양의 기회 제공

21세기의 초반에 세계는 많은 전환점에 직면해있다. 이미 시작된 글로벌 세상, 인터넷과 IT의 발달로 국경이 없어지고, 서로 온라인으로 넘나들고 있다. 전염병도 국경 없이 글로벌화되어 전 세계가 같이 겪어야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다종교시대에서 저마다 자기종교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이때 시대적 전환점의 경계선에서, 불교포교의 한 차원 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SNS로 빠르게 전할 수 있는 불법을 위한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새 시스템을 구가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두 축인 말과 글은 SNS의 핵심이다. 불교커뮤니케이션으로 수행자의 설법스피치와 재가불자의 포교스피치를 함께 세워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길 희망해본다.

21세기는 현실의 나와 온라인상의 나, 즉 아바타로서 누가 먼저일지도 모르게 혼합되어 살아가게 된다. 사회적 연결과 자아와 타아의 욕구가 새롭게 드러나는 패러다임의 변화된 세상이다. 그 이전, 서구자본주의의 한계점에 도출되어 사상과 정신의 빈곤을, 동양의 사상과 철학, 정신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흐름이 있어왔다. 서구인들은 동양의 그 무언가를 파헤쳐 가져가 자기네 것으로 재빨리 재포장하여 시장에 내놓고 있다. ‘원조는 우리인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마케팅과 홍보, 광고, 현실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서양종교 즉 일국(一國)적 근대화기획으로 채색된 종교에 끼어 맞추는 식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상품의 재탄생으로 동아시아공동체에서의 불교적 소통과 연대적 실제상들이 파편화되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활용하지 못하면 쓸모 없어지고, 남이 가져간다. 구슬도 꿰야 빛이 나는 법이다. 불교를 옛날사람들이나 고집하는 종교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보여져도 안 된다. 서양인들이 불교의 오롯한 정신을 가져다 그들 문화에 끼워 맞춰 학문의 포장으로 다시 우리에게 수출하듯이, 그들의 비열한 심보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적극적인 개발과 변화, 능동적 발전모색과 열린 마음 등이 있었는지 먼저 봐야 할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시대에 맞는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커다란 문명변화의 초입에서 불교를 인류 문명의 선두로 맞이해야함은 우리의 몫이며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첫 번째, 출가수행자의 설법스피치는 시대에 맞고, 세대에 알맞은, 그리고 지역, 체제, 상황, 분위기 등 다각도의 대상층을 위한 맞춤형 설법으로 그들과 공유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시대와 세대, 지역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존재하는 진리이다. 특히 젊은 층을 향한 스피치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며 설득, 위로, 감동, 감성적 표현으로 함께 해야 한다. 현대의 엄청난 시대적 사회변동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적절하고도 적합한 소재와 스토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승려보수교육으로 설법스피치교육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고, 승단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사회 속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다. 실용학문으로서의 부처님말씀을 사회에서 움직이게 하고, 우리말의 혼탁한 비어와 속어, 욕설, 비방, 폭언 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부처님말씀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불교와 말의 진실 된 관계를 꽃피워 글로벌포교를 위한 연구와 준비, 실행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명상, 요가, 선, 사찰음식 등을 통한 불교사상과 동양철학 등에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명상이나 선, 사찰음식 등에 참여한 사람들은 알맹이만 가져갈 뿐, 불교라는 껍데기는 벗어던지고 가버린다. 이러한 기회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을 불자로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를 향한 올바른 표현과 스피치로 불교를 알릴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신 못 차리게 빨리 앞당겨진 비대면 교육, 화상교육은 스님들 역시 맞닥뜨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와버렸다.

화상 스피치교육에 있어, 화면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어색함, 쑥쓰러움을 먼저 만나게 된다. 따라서 화상에서의 나 자신과의 자연스러움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과 만남, 대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때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대화를 시도하고, 유튜브를 통한 나의 모습을 어떻게 펼쳐 포교를 위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지를 점검한다. 누구든지 화면을 통한 나의 모습과 목소리에 힘들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색한 첫 만남을 통해 닦아나가고, 훈련하고, 더 좋은 모습과 음성으로 보시한다는 마음을 펼쳐야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경영학자인 피터드러커 (Peter Druker,1909 ~ 2005)는 이미 2000년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어떻게 변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한 바 있었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대신하여 물은 질문 ‘21세기에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잘 살 수 있습니까?’하는 질문에 그는 서슴지 않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표현 능력이며, 현대의 경영이나 관리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좌우된다”라고 일갈하였다. 이젠 종교도 경영, 관리, 서비스, 사람관계, 커뮤니케이션과 직결되어 그 중요성을 직시해나가야 한다. 자기표현능력은 거의 전부를 덮을 정도의 중요도를 발휘하고 있다. 불교를 알리고, 불교내용을 알리고, 불교적 삶을 전해, 부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안내해야 한다. 모두가 힘들고 두려움 속에서 정신이 메말라가고, 피폐해가기 쉬운 요즘에 부처님말씀을 전하는 한마디를 통해 천지가 개벽하고 마음의 불꽃을 피우는 설법이란 그 중요성이 무한대라고 본다. 설법스피치훈련으로 안과 밖을 닦고 개발해나가는 모습도 부처님을 향한 사랑 그 자체이며 중생구제를 위한 방편, 노력, 행동, 보시 그 모든 것일 수 있다.

두 번째 재가불자의 포교스피치는 스님의 설법스피치를 협조하는 스피치로 시작하면 거의 부담이 없을 것이다. 저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익히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냥 거기서 그치고 마는 것에 안타까움이 많았다. 요즘엔 각 사찰마다 크고 작은 불교대학들이 있어, 배움의 장이 넓어져 희망적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각각에게 하나의 아상을 키우는 격은 아닌지 반드시 점검하고 되돌아봐야만 한다. 끊임없이 머리로만 부처님말씀이라는 지식과 이론을 채워나가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워서 남 줘야 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러나 배워서 듣고 순간 환희심이 난다해도 그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배우고 익힌 부처님말씀을, 나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내가 배운 것을 알아가고, 아는 만큼 전하기 위해 말을 한다’는 것은 배움 그 너머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행동이다. 따라서 재가불자는 배운 것을, 아는 것을, 들은 것을 한마디라도 전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단, ‘내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는데…’ 하면서 지식을 자랑하거나, 남과 대결하려는 마음이라면, 아니 배운 만도 못하다.

배움을 무기로 삼아, ‘저 스님이 하신 말씀이 틀렸다. 저 사람이 한 말이 옳지 않다’는 식의 자기알음알이에 대한 고집과 상이 만들어지면 그것 또한 옳지 않은 방법이다. 재가불자는 자기가 들은 스님의 법문 중 한 글귀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용기, 그 신선한 용기를 갖자는 것이 포교스피치의 핵심이다. 따라서 재가불자의 스피치교육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사찰 + 그 사찰의 스님법문 + 스님법문 중의 가슴에 와 닿는 한마디’만을 말로 전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 신심이 기초가 되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무수한 경전의 내용과 풀이, 많은 곳에서 공부한 내용들이 우리의 머리를 꽉 채워, 이것이 독성이 된다면 부처님의 제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불자도 자기 자신과의 진솔한 만남을 위한 순간 즉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솔직한 나와의 만남, 거기서 나오는 대화를 가져야 한다.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바로 공덕이고 기도이며 복밭을 가꾸는 일이다.

각자의 본분에 맞게 출가 수행자와 재가불자의 각각의 스피치는 윈윈의 힘으로 포교진작의 장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불교스피치는 교육과 훈련으로 자신감과 적극성을 갖추며, 방송과 언론을 통한 포교활동에 더욱 진취적인 효과를 낸다. 불교취약계층과 적극적인 만남(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소통의 문을 열어)을 형성하여 보다 사회구제에 적극성을 띨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사각지대를 위한 포용성과 각종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위안과 안심을 펼치는 사회구제행동으로 넓혀나간다. 이는 글로벌 시대로 나아가는 가운데 그 핵심이랄 수 있는 다종교시대에서 불교의 위상을 드높이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종교로 우뚝 서게 한다. 이 모든 포교행위는 이고득락離苦得樂, 중생요익衆生饒益이고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활동성을 뿜어내는 일이다. 입을 열면서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적극적인 행동력으로 진취성을 갖추는 계기를 마련해야한다.

이는 ‘공감뉴런 Empathy Neurons’이론에 기초해 앞으로는 인간은 서로 공감유대를 지향하여 이타적 존재가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국제적 관계에서도 자기만을 생각할 수 없는, 자기만 생각해서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임을 경험하고 있다. 타자와 공감하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에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세계는 종교성이 우선으로 서야하며, 그 중에서도 살상과 유혈이 낭자한 종교적 패러독스 속에서 불교만이 평화와 자비, 사랑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로서 우뚝 서야 한다. 불교적 해법을 만 천하에 알리고 이에 참여하는 포교와 전법행을 불교적 커뮤니케이션의 연구와 교육, 실행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바퀴는 굴러가라고 만들어 진 것이며, 굴러가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법, 진리를 수레바퀴로 상징화하는 이유는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불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이 곧 전법이며 포교이며 가장 큰 보시이자 기도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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