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9월 2일 지정예고
실제 고승 재현 유일 조사상
조사과정서 ‘건칠’기법 확인
가슴의 ‘흉혈’까지 표현 눈길

국보로 승격·지정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의 모습. 현존하는 유일한 조사상이다.

실제 고승을 재현한 유일한 조사상인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고려시대 고승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93일 밝혔다. 또한 15세기 한의학 서적 간이벽온방(언해)’17세기 공신들의 모임 상회연(相會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2건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보로 승격·지정 예고되는 보물 제999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이하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까지 활동한 고승인 희랑대사(希朗大師, 생몰연대 미상)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으로 스승인 희랑 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은 학승이었으며,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줬고, 왕건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기도 했다.

건칠희랑대사좌상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祖師像·僧像)으로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한국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건칠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국보로 승격예고된 해인사 건칠회랑대사좌상의 가슴 부위. '흉혈(胸穴)' 표현돼 있다. 희랑대사는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었는데 설화에 따르면 다른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내 모기들에게 피를 보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고승의 가슴 구멍이나 정수리 구멍은 스님의 도력을 의미한다.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조선 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해인사의 해행당, 진상전, 조사전, 보장전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됐던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이덕무(1741~1793)<가야산기(伽倻山記)>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 있어 전래경위에 대해 신빙성을 더해준다.

또한 지정조사 과정에서 이뤄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과학 조사 결과,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얼굴과 가슴, ,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어서 조각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데 참고가 된다.

건칠희랑대사좌상의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胸穴)의 유래는 해인사 설화에서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며, 보물 제1000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건칠기법이 적용된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 후기에 조성된 조사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면서 우리나라에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건칠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 예고한 보물 제999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간이벽온방(언해)’·‘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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